21세기에 접어들어 전 세계 액션영화에는 큰 변혁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소룡의 <용쟁호투>(1973)를 거쳐 <매트릭스>(1999)와 <와호장룡>(2000)에서 정점에 달했던 쿵푸 액션의 유행은 매너리즘에 부딪쳤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실전 무술 기반의 안무가 일대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무술감독들이 전통무술의 실전적 가치를 재발굴하거나 군용 무술과 현대에 새롭게 창안된 신종 무술을 끌어들여 차별성을 꾀하는 등의 연구를 하게 되면서, 오늘날 액션영화의 무술 안무는 전에 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 영화 무술의 근간이 된 여러 무술 가운데 '영춘권', '홍가권', '칼리 아르니스', '시스테마', '크라브 마가', '케이시 파이팅 메소드' 등의 무술 특징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해당 영화의 응용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영춘권(詠春拳)
<엽문 3>

복건남파 권법의 일종인 영춘권(詠春拳)은 골목이나 흔들리는 배 위처럼 좁은 공간에서의 백병전을 전제로 한다. 즉 단교협마(短橋狹馬)라는, 짧은 거리에 곧게 지르는 직선 중심의 단타와 수기, 짧은 보폭을 특징으로 한다.

영춘권의 기원은 소림사의 오매사태로부터 연원한다고 전해진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에 소림사에 가해진 탄압을 피해 은거한 오매사태가 자신이 창안한 38품세의 기술을 엄영춘에게 전했고, 이것을 엄영춘이 다시 기본자세인 소념두(小念頭), 빈틈을 노리는 심교(尋橋), 곧게 나가 상대의 급소를 지르는 표지(標指)로 정리했다고 한다.

영춘권이 가장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엽문(1893~1972)의 대에 이르러서이다.(역사적으로 실재 여부가 분명한 엽문파 영춘권의 계보는 황화보에서 양찬으로, 양찬에서 진화순으로, 진화순에서 엽문으로 이어진다.)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물러가면서 국민당 정권의 경찰로 일하던 엽문은 본토의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건너간다. 생계를 위해 도장을 차린 엽문은 이때 황순량, 장탁경 등의 제자를 키워내는데 이때 장탁경은 친구였던 이소룡을 영춘권에 입문하도록 이끌었고, 훗날 이소룡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면서 그의 무술에 근간이 되었던 영춘권 또한 주목을 받게 된다.

또한 이소룡은 스승 엽문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아 틈틈이 도장에 들러 지도받는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영춘권을 대중적으로 인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엽문 3>

<엽문>(2008)과 <엽문 2>(2010)에서 엽문 역을 맡은 견자단은 엽문의 아들인 엽준 노사로부터 지도 받아 6개월간의 수련을 거쳐 영화의 액션을 완성했다. <엽문 3>(2016)에서는 무술감독이 홍금보에서 원화평으로 교체됨에 따라 발기술의 비중이 높아진 편.

<일대종사>(2013)의 양조위도 같은 시기에 영춘권 수련을 받았지만 엽준 노사로부터 게으르다는 혹평을 들었고, 영화상에서 보이는 액션 또한 영춘권의 전형적인 전투 기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영춘권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각색한 원화평의 <영춘권>(1994)에서는 양자경이 엄영춘 역을, 견자단이 양박주 역을 맡은 바 있다.

홍금보가 연출한 <찬선생과 조전화>(1978)에서는 왕호가 조전화 역을, 양가인이 양찬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패가자>(1983)에서는 홍금보가 양찬에게 영춘권을 가르치는 스승 황화보로 등장한다. 장철의 <소림사>(1976)에서는 적룡이 영춘권의 목인장 수련과 수기를 보여주는데, 이는 적룡이 당시 홍콩 영화계에 드문 영춘권 수련자였기에 가능했다.(적룡은 본토의 고로파 영춘권과 엽문파 영춘권을 모두 습득한 달인으로, 지금도 간간이 영춘권 수련자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셜록 홈즈>(2009)와 <셜록홈즈 – 그림자 게임>(2011)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사용하는 무술 또한 영춘권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 소설 중 단편 「빈 집의 모험」에서 홈즈의 무술이 일본의 ‘바리츠(Baritsu)’라는 가공의 무술로 언급되나 영화에서는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 영춘권에 기반을 둔 안무를 보여준다.

19세기 서구의 권투가 현대 권투보다 중국 남파권법에 가깝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의외의 고증이라 할 수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활치료의 차원에서 영춘권을 수련해 깊이 빠져든 경우인데 <아이언맨 3>(2013)의 초반부에는 영춘권의 수련 도구인 목인장이 잠시 등장하며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2016)에서도 영춘권의 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이언맨 3>

홍가권(洪家拳)
<쿵푸허슬>

홍가권(洪家拳)은 광동 남파권법의 주종을 이루는 권법으로 남파 소림권의 달인 지선선사가 상인이었던 홍희관에게 무술을 전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창시되었다고 한다.
홍가권은 장교대마(長橋大馬)라 하여 북파권법처럼 동작이 크고 보폭이 넓으며 강맹한 발경이 특징이다. 때문에 단시간 내에 병사들을 훈련시키기에 적합한 무술로 선호되어 반청복명의 결사단체를 통해 널리 보급되었으며, 그런 홍가권의 위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든 건 황비홍의 수제자 임세영의 대에 홍콩에 도장을 세우면서부터였다.

1960~70년대 쇼브라더스 영화로 대표되는 홍콩 무협영화 무술의 거의 대부분이 홍가권에 바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의 감독, 제작자, 배우 모두 홍가권 수련자 일색인 경우가 많았기에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즉, 극 중에서는 다른 무술이라고 하지만 기수식 외에는 홍가권 일색이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장철(감독 본인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고수였다)과 유가영, 유가량, 유가휘 형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유가 형제의 경우는 아버지 유담이 임세영에게서 전수받은 황비홍의 직계 후계자 격에 해당한다.

<킬빌 2>

정작 홍가권의 대종사인 황비홍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연걸의 <황비홍> 시리즈는 홍가권의 실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연걸은 우슈 장권과 번자권을 주종으로 삼았고, 영화의 액션을 설계한 원가반의 무술 설계 또한 실제 홍가권과는 거리가 멀다.

주성치의 <쿵푸 허슬>(2004)을 보면 양복점 아저씨가 팔에 철환(鐵丸)을 걸고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때 선보이는 무술이 바로 홍가권의 투로 중 하나인 철선권. 실제로 배역을 맡은 조지릉 노사는 홍가권계에 손꼽히는 달인으로 미국에서 홍가권의 전파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전에도 하종도 주연의 <이소룡 전기>(1976)에서도 홍가권사로 등장한 바 있다.

<살파랑>(2006)에서 홍금보는 견자단의 종합격투기에 맞서 홍권의 격투술을 제대로 보여주며, 이는 <엽문 2>에서 엽문의 맞수로 등장하는 홍사부가 홍가권의 달인으로 묘사되는 바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킬빌 2>(2004)에서 우마 서먼은 파이메이로 분한 유가휘를 상대로 홍가권 투로의 하나인 호학쌍형권을 구사하며, 토니 쟈 주연의 <옹박 – 더 레전드>(2008) 또한 홍가권의 전투 기법을 의외로 잘 살려냈다.


다음 2부에서는 고대 인도의 무술 칼라리파야트(Kalarippayattu)가 필리핀으로 전파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칼리 아르니스(Kali Arnis)와 러시아의 격투기 시스테마(Система: Systema), 이스라엘 경찰에서 유래된 크라브 마가(Krav Maga), 스페인의 집시 출신 무술가와 영국인이 창안한 케이시 파이팅 메소드(Keysi Fighting Method)에 대해서, 그리고 이 무술이 사용된 영화 장면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영화평론가 조재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