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우슈비츠’를 부정한다
당연히 똥이 무서운 건 아니다. 괜히 마주쳐봐야 옷만 더럽힐 게 뻔해서, 그저 피하는 것일 뿐…… 반유대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어빙이 명예훼손 혐의로 자신을 고소하기 전,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의 태도가 그랬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 있다고 말하는 이들과 논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어빙의 비열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아우슈비츠 부정론자들과 논쟁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주변 사람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그녀가 어빙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밝히자, 한 동료는 이렇게 반문한다. “왜 그런 사람을 상대하세요? 이런 일 중 90%는 심지어 소송도 안 해요”(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만원을 정신분석해서 글을 한 편 써보겠다고 했을 때, 다들 그랬다. ‘뭐하러요?’).
아마도 치우기보다 피하는 것이, 똥 앞에서 자신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손쉽고도 훌륭한 방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다들 피하기만 하면 똥은 치워지지 않는다. 혹은 그 구성 성분이 분석되어 정체가 (즉 그것이 고작해야 냄새 고약한 진짜 똥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도 않는다. 대체로 학자들에게서 저와 같은 태도를 발견할 때가 많은데, 이성적이지 않은 논쟁에 휘말려 들지 않고, 학문적 자율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은 물론 고결한 태도다. 그러나 누군가는 나서서 그것이 똥이라고, 치워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성의 언어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슈비츠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에 맞서, 이전투구가 될지도 모르는 소송을 진행하기로 작정한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의 결심은 훌륭해 보인다. 하긴 “아우슈비츠가 뭐가 흥미로운지 모르겠군요. 전 여러분께 무미건조하게 말하겠습니다. 상원 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의 차 뒷좌석에서 더 많은 여자가 죽었겠군요.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말이죠”라고 떠들고 다니는 이 흉한 입을 누군가 틀어막긴 막아야 했으리라. 그 일을 자청한 데보라는 참 용기 있는 유대인 여성 역사학자다.
나는 ‘아우슈비츠 부정론’을 부정한다
그런데 저런 장한 결심을 할 때, 데보라가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영리하게도 어빙이 그녀를 영국 법원에 고소했다는 사실, 그리고 영국의 법에 따르면 (기이하지만) 명예훼손은 원고가 아닌 피고가 본인의 무죄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사실…… 그러니 싸우기로 작정한 데보라는 이제 영국 법원에서 자신의 책에 어빙에 대해 쓴 구절들이 명예훼손이 아니라 사실임을 밝혀야 한다. 그 구절은 이랬다. “역사적으로 옹호할 수 없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 증거를 왜곡시킨 히틀러 당원.” 어빙이 증거를 왜곡해 아우슈비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데보라가 결국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우슈비츠의 존재 자체다.
그게 어려운 일이겠냐고? 누구나가 다 아우슈비츠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믿지 못하겠지만 ‘김 군’이 ‘광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우슈비츠에서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유대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보라의 처지는 좀 아이러니한 데가 있다. 그녀는 영화 초입 강의 장면에서 자신의 입으로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진심이에요, 질문이에요. 어떻게 증명할까요? 사진 증거로요? 이 방이나 밖에 있는 누구도 유대인이 가스실에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없어요. 왠지 알아요? 왜냐면 독일인들이 어떤 사진도 못 찍게 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알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한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증거는 뭐죠? 증거는 어딨죠? 그건 얼마나 확실하죠?”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실물로서 다시 증명해야 한다는 이 아이러니, 감독은 마치 이 아이러니를 극대화시키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이, 영화 한복판에 실존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풍경을 공들여 길게 배치해 놓는다. 이른 새벽 안개에 잠긴 수용소, 철망과 유품들과 무너진 가스실과 시신을 태우던 굴뚝들, 여기 이렇게 버젓이 아우슈비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 어떤 실물 증거도 남겨놓지 않은 그것의 존재를 말이다.
게다가 이 (법적이자 역사적인) 싸움에서 질 경우의 파장도 예상해야 한다. 8명의 전문가 증인들과 함께 재판 준비를 시작하면서, 데보라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김 군’을 찾아보기로 작정할 때, <김 군>의 감독도 그랬으리라). “이렇게 생각해봐요, 만약 우리가 지면요? 홀로코스트가 없었던 일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용인되고 문제 되지 않게 될 판결로 남겠군요.” 재판은 판례를 남기기 마련이고 만약 이 재판에서 진다면 아우슈비츠는 부정된다. 그렇다면 이 재판에 영국 최고의 역사 전문가들과 변호사들이 합류하게 되고, 스티븐 스필버그(<쉰들러 리스트>를 만든)를 포함, 4,000여 명의 재정적 후원자들이 생겨나게 된 사정도 이해가 된다. 이 재판은 이제 아우슈비츠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희대의 재판이 되었다.
나는 ‘나’를 부정한다
그러나 (엉뚱한 질문이지만) 유대인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는 이 재판의 전경에 나서 아우슈비츠의 존재를 밝히기에 적합한 인물일까? 그저 이 세기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법정 진술의 유효성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이상하게도 데보라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려고 할 때(‘그들에게 고통을 토로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혹은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그녀가 발언하려고 할 때, 되레 묘한 불안감과 반발심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변호사 리처드 램튼이나 앤소니 줄리어스가 “미안하지만 재판은 치료가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일을 절대 못 잊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만족을 주는 건 제 일이 아닙니다”, “양심이란 참 이상한 거예요. 문제는 가장 옳다고 느껴지는 것이 반드시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라고 말할 때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나로서는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장면은 이른바 ‘당사자주의’가 어떤 경우 역사적 폭력에 대한 기억의 일반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판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독은 의미심장하게도 데보라에게 이런 대사를 부여한다. “제 이름은 어머니가 주신 거죠. 민족의 수호자, 투사. 어머니는 항상 어떤 중요한 일이 생길 거라 하셨죠. 사람들이 저를 고를 거고, 선택받게 될 거라고. 이제 이렇게 됐네요.”
‘홀로코스트’라는 명명 (나는 일부러 이 말을 쓰지 않고 있다) 자체에 유대교적인 선민의식의 뉘앙스가 섞여 있거니와(이 말의 라틴어 어원은 holocaustum, ‘완전히 타버린 제물’ 곧 ‘희생제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자들이 그런 식의 종교적 제의에 바쳐진 희생물일 수는 없다. 그들의 죽음은 완전히 이유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의 저자 조르조 아감벤은 이 말을 사용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데보라는 스스로를 유대 민족의 운명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선지자로서 상상하는 듯싶다. 의식했건 의식하지 않았건 그녀는 이 재판을 유대인 당사자주의 입장에서 사고한다. 그러나 현명한 변호사 리처드 램튼은 의견이 다르다. 그가 잘 흥분하고 영웅주의적인 그녀에게 충고하는 것은 ‘자기 부정(self denial)’이다. 그는 데보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앉아서 입을 꾹 다물고 이기는 거죠. 자기를 부인하는 거죠.”
물론 램튼은 그 ‘자기 부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냉혈한처럼 재판을 준비하지만, 아우슈비츠에 누구보다 먼저 가서 (데보라는 그가 약속에 늦었고, 무례하다고 오해하지만) 새벽의 수용소 풍경을 참담한 얼굴로 둘러본 것도 그이다. 게다가 와인 한 병을 들고 데보라를 찾아가 그녀를 위로하고 설득할 때, 관객들은 그가 얼마나 데보라의 ‘양심’을 존중하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이성과 언어를 초과하는 이른바 ‘사건’으로서의 아우슈비츠 경험이 실은 법에 의해 판단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는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사건’의 처소가 아우슈비츠일 때, 아우슈비츠는 분명 ‘있었다’는 것이 먼저 증명되어야 한다. 그는 그렇게 믿는다.
당연히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에게 더 할 (‘하고픈’, 그러나 ‘할 수 없는’,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이 많으리라. 또 유대인에게 더 할 말이 많으리라(실은 팔레스타인 사태 이후 우리도 유대인들에게 할 말이 많지만). 당사자들이니까…… 그러나 만약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당위적으로나마 인류 전체의 기억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을 자민족의 고난 서사로, 신의 나라를 예비하기 위한 운명적 희생의 역사로 자기화하려는 욕망에 맞서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알랭 바디우가 유대교를 모든 민족의 종교로 보편화한 사도 바울을, ‘사건에 가장 충실했던 주체’로 꼽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현명한 램튼과 줄리어스가 그토록 데보라를 침묵하게 했던 이유는 그렇게 이해된다. 아니나 다를까 재판의 승리는 바로 데보라의 ‘자기 부정’ 덕분이었다(나는 언젠가 ‘이후 세대의 5․18 교육’에 관한 학술대회에서 이후 세대보다는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마이크를 놓지 않던 ‘당사자’를 본 적이 있다. 실은 다른 곳들에서도……).
나는 ‘판결’을 부정한다
데보라의 자기 부정 덕분에 재판은 승리로 끝난다. 어빙의 의도와는 다르게, 램튼이 그를 도발하고, 재촉하고, 꾸짖으면서 점차 판결에 이르게 되는 재판 과정은 마치 아우슈비츠에 관한 일련의 길고도 효율적인 교육 과정처럼 여겨질 정도다. 결국 똥은 그저 똥이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판정된다. 그러나 마지막 ‘부정’이 남아 있다. 망상광들이 흔히 그렇게 하듯이 어빙은 패배와 인정을 모른다. 그는 재판 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게 유리하게 나온 내용들이 많습니다. 전 분명히 변론은 더 잘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아우슈비츠 부정론자’에서 ‘판결 부정론자’로 이행해 간다.
그러나 그쯤 되면 그 이행이 ‘나치 이데올로그’에서 ‘광인’으로의 이행이기도 하단 사실이 누구에게나 자명해진다. 단지 어빙 본인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또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광기엔 원래 병식(病識)이 없는 법이니까…… 영화 말미, 이제 논쟁이 역사학으로부터 저 기이한 주체(들)의 정신병리학으로 옮겨가야 할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닐 줄 안다.
저자 | 김형중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동네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평론집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단 한 권의 책》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후르비네크의 혀》 등과 에세이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가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2008), 팔봉비평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