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걸5: 측천무후 지유명도>는 10월 3일(목)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세상에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많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수두룩 빽빽일 것이다. 그렇게 흔한 머리 좋은 사람이라도 특출나면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무력이 곧 권력인 사회에서도 지략가는 스스로 무기가 되고, 법이 없는 시대에도 전략가들은 살아남았다. 하물며 그리 머리 좋은 사람이 권력과 불의에 맞섰으면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기록됐겠는가. 당나라 시대의 적인걸이 딱 그런 인물이었다.
적인걸은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의 재상이다. 역사에서 그는 유능하면서도 결코 옳지 않은 말은 하지 않았으며, 이치에 합당한 것은 목숨을 걸고라도 직언하는 성격이었다. 그가 등용한 인물은 모두 시대를 풍미했으니, 사람 보는 눈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훗날, 타고난 정치가인 적인걸에게 푹 빠진 건 희한하게도 중국인이 아녔다. 네덜란드 작가 로베르트 반 훌릭은 적인걸이 재상이 되기 전 활동했던 경력에 주목했다. 적인걸은 재상뿐만 아니라 대리승(사법기관의 관리직)으로도 활약했는데, 그의 판결은 일말의 부당함과 부조리가 없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고. 로베트르는 적인걸의 지력과 판단력, 측천무후 시대의 혼탁한 정치 환경을 접목시켜 「명판관 디 공」 시리즈를 집필한다.
로베르트 반 훌릭의 「명판관 디 공」 시리즈로 중국은 당나라 시대의 명탐정 캐릭터를 하나 얻게 된다. 2008년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로 시작된 ‘적인걸’ 시리즈 또한 적인걸의 명탐정 이미지를 빌렸다. 물론 영화 ‘적인걸’ 시리즈는 그 명탐정 이미지에 당나라 중국 배경에 맞춰 다양한 상상력을 끼얹는다. 불가사의한 사건과 판타지적 상상력이 가미된 트릭이 만나면서 ‘적인걸’ 시리즈는 무협 판타지로서의 재미를 선사한다.
<적인걸5: 측천무후 지유명도> 또한 기존의 시리즈처럼 무협 판타지적 수사극의 기틀을 그대로 가져온다. 적인걸이 이번에 맞닥뜨리는 사건은 ‘유령 병사’. 서도에서 유령 병사들이 행렬한다는 목격담과, 피부가 모래처럼 녹아 백골만 남은 희생자들이 이어진다. 측천무후(양공여)는 복역 중인 적인걸에게 사건을 해결하면 복직시켜주겠노라 약속하고, 적인걸(나립군)은 7일 안에 사건을 해결했다며 서도로 향한다. 연아(이약희), 아소(하문휘)와 함께 서도에 도착한 적인걸은 사건의 단서들을 추적하던 중 리와 월노라는 인물과 관련 있음을 알아낸다.
<적인걸5: 측천무후 지유명도>는 기본적으로 수사극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트릭이 너무 현실적이어도 이질감이 들기 마련이다. 이 영화도 그런 무협 판타지 수사극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트릭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로 사건을 뒤집는다. 비정상적인 사건을 목도한 적인걸, 이 비범한 인물의 지성이 어떻게 작동하며 배후를 짚어내는지에 주목하면 스릴러 못지않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제아무리 수사극이라 해도, ‘무협’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관객들은 우리가 봐온 다양한 무협스러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적인걸’ 시리즈가 비록 중원에서 벌어지는 협객들의 이야기는 아니나, 중국 영화 특유의 화려한 액션 스타일은 고스란히 가져왔다. 자신의 검 항룡간을 휘두르며 전투를 벌이는 적인걸이나 보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능수능란한 액션을 펼치는 리도 인상적이지만, 극중 적인걸을 보좌하는 검시관 연아의 액션도 보기 드문 여성 액션의 쾌감을 동반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적인걸5: 측천무후 지유명도>의 방점을 찍는 건 미술이다. 장르적 퓨전이라 해도 이 영화의 기틀은 사극. 특히 당나라는 중국 대륙 특유의 화려한 양식이 꽃피웠던 시절이다. 영화의 도입부 측천무후의 성을 시작으로 기방 ‘이명재’로 이어지는 비주얼은 붉은색과 금색의 대비로 웅장하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우중충한 청색 톤은 당나라의 찬란한 풍경과 대비돼 사건의 미스테리함과 무게감을 부각시킨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