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가 10월3일 개막했다. 올해도 무려 299편의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있다. 드라마가 중심이 된 BIFF 상영작들 가운데 ‘저를 봐주세요!’라고 외치는 듯한 장르영화들이다. 리스트만 보자면 마치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를 선호한다면 구미가 당길 듯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2019 BIFF를 장식한 독특한 장르영화 7편을 소개한다.


<잘리카투>(Jallikattu)

리조 호세 펠리서리 감독ㅣ인도ㅣ아시아영화의 창

<잘리카투>

첫 번째는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 인도에서 건너온 <잘리카투>다. 잘리카투(Jallikattu)란 인도 타밀 지역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 겸 놀이다. 맨손으로 광장에 풀어놓은 소를 제압하는 경기. 영화는 이를 모티브로 시골마을에서 물소 한 마리가 탈출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소를 잡기 위해 수많은 남자들이 달려들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동원돼 가히 난장판이 연출되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미쳐가는 사람들을 포착하며 인간의 폭력성, 광기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자극적인 장면이 빈번히 등장하지만 오락성보다는 메시지를 중시한 작품. 그 결과 <잘리카투>는 BIFF에 앞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아름답고 폭력적이다”라는 독특한 평과 “올해의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라는 극찬을 남겼다.


<럭키 몬스터>(Lucky Monster)

봉준영 감독ㅣ한국ㅣ뉴 커런츠

<럭키 몬스터>

다음은 아시아 영화를 이끌어갈 신예 감독들을 발굴하는 뉴 커런츠 부문을 장식한 국내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전공한 봉준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럭키 몬스터>다. 주인공은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맹수(김도윤). 그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위장 이혼까지 강행하지만 이혼 직후 복권에 당첨된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곤란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자신도 모르는 채 괴물이 돼간다. 이미 제목과 캐릭터 이름에서부터 내재된 의미를 전달하는 <럭키 몬스터>. 신예 감독다운 기발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BIFF 정한석 프로그래머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괴팍하고 변태적인 데뷔작”이라는 코멘트를 붙이기도 했다.


<소년, 소총을 만나다>(Boy Meets Gun)

유스트 반 헤이직 감독ㅣ네델란드ㅣ월드 시네마

<소년, 소총을 만나다>

마찬가지로 신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소년, 소총을 만나다>는 우연히 소총을 줍게 되는 철학과 교수 마르텐(엘코 스미츠)의 이야기다. 그는 아버지의 총으로 범죄를 일으킨 시몽(빅터 에이던스)의 총을 우연히 줍고, 이를 소유하게 된다. 이로 인해 범죄조직, 경찰들과 얽히며 곤경에 빠진다. 마르텐은 사전적 의미의 ‘소년’에서는 한참 벗어났다. 그러나 힘을 가지고 싶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의 속은 영락없는 소년이다. <소년, 소총을 만나다>는 이런 힘의 역학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요소, 빠른 전개, 음악 등으로 지루할 틈 없이 담아냈다.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Dogs Don't Wear Pants)

J. P. 발케파 감독ㅣ핀란드, 라트비아ㅣ월드 시네마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새빨간 스틸컷부터 이목을 끈다. J.P. 발케파 감독의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변태적인 성적 욕망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착취가 행해지는 끔찍한 영화는 아니다. 아내를 잃고, 우울감에 휩싸인 남자. 그는 마조히스트(신체적 고통을 통해 성적 쾌락을 얻는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적 취향을 발견하게 되고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 그러나 이는 사실 활력이 아닌 인생의 마지막 끈. 그 속에는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의식, 슬픔이 뿌리를 두고 있다. 논란과 비판을 부를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탄탄한 설정과 연출로 설득력을 가지는 영화다.


앞서 소개한 네 작품은 뉴 커런츠, 아시아영화의 창, 월드 시네마 섹션을 장식한 영화들이다. 그런데 사실 BIFF에는 아예 독특한 장르영화들만 모아놓은 섹션이 따로 있다. 심야 상영을 하는 미드나잇 패션 부문이다. 아래 소개하는 세 작품도 모두 미드나잇 패션에 선정된 것들이다.


<블러드 퀀텀>(Blood Quantum)

제프 바나비 감독ㅣ캐나다ㅣ미드나잇 패션

<블러드 퀀텀>

BIFF 상영작 가운데 시각적으로 가장 잔인한 영화가 아닐까. <블러드 퀸텀>은 호러의 세부 장르로서 빠질 수 없는, 좀비영화다. 아예 고어 요소를 내세워 러닝타임을 선혈로 가득 채운 작품. 술을 달고 사는 망나니 경찰이 되살아난 시체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내용이다. ‘좀비영화=생존기+인물들의 내부갈등’이라는 공식이 떠오를 수 있지만 <블러드 퀸텀>은 다른 차별점을 심었다. 영화는 좀비에게 면역이 있는 원주민, 종말론을 펼치는 난민 등을 통해 식민주의, 인종주의를 엮어냈다. 좀비가 닳고 닳은 소재일지라도,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퍼스트 러브>(First Love)

미이케 다카시 감독ㅣ일본ㅣ미드나잇 패션

<퍼스트 러브>

<이치 더 킬러>, <착신아리>, <크로우즈 제로> 시리즈, <악의 교전> 등 수많은 작품들을 배출하며 두터운 팬층을 쌓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 그의 신작 <퍼스트 러브>도 BIFF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 초청됐다. 전작만 봐도 알 수 있듯 <퍼스트 러브>는 당연히 풋풋한 첫사랑 영화가 아니다. 복서 레오(쿠보타 마사타카)가 마약에 중독된 첫사랑 모니카(오모리 나오)와 범죄 조직에 쫓기게 되는 이야기. 다카시 감독의 특색인 B급 요소, 정신 사나운 전개 등이 그대로 이어진다. 깊은 철학이나 메시지를 담진 않았지만 오락을 중시하는 관객들에게는 큰 만족을 줄 듯하다.


<비바리움>(Vivarium)

로칸 피네건 감독ㅣ아일랜드, 미국ㅣ미드나잇 패션

<비바리움>

마지막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주연을 맡은 <비바리움>이다. 적은 제작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고효율 작품.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실험을 위해 동식물을 가두는 상자(혹은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 <비바리움>에서 그 대상은 인간이다.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늘어져 있는 단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부부. 영화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탈출기를 담아냈다. <큐브>가 생각나는 SF 스릴러지만 더 넓은 무대를 배경과 부부라는 캐릭터 관계 설정으로 색다른 재미를 전달한다. 2019년 칸영화제에서 선공개돼 평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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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글 김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