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가 한국에 개봉했다. <고스트버스터즈 2>(1989) 이후 27년 만의 귀환. 그런데 ‘고스트버스터즈3’가 아닌 <고스트버스터즈>다. 기존의 이야기를 뒤엎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리부트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1984년 <고스트 버스터즈>
2016년 <고스트 버스터즈>

귀신 잡는 4인조라는 설정을 제외하곤 많은 게 바뀌었다. 1,2편을 연출한 이반 라이트만 대신, 작년 <스파이>로 쏠쏠한 성공을 거둔 폴 페이그가 감독을 맡았다. 전편은 레이몬드 역의 댄 애크로이드와 이곤 역의 해롤드 래미스가 함께 각본까지 썼다면, 이번엔 폴 페이그와 그의 오랜 동료 케이티 디폴드가 시나리오 작가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고스트버스터즈>(2016)가 ‘여성판 리부트’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 어니 허드슨의 주인공 자리를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등 코미디에 능한 여배우 넷이 차지했다.
   


무려 27년 만에 만들어지는 리부트라면 뭐가 달라도 크게 달랐어야 했을 터. 기존 시리즈의 주요 배역이 남자로 채워졌다는 점을 고스란히 비틀어 그 자리를 여자 캐릭터로 대체한 결정은 일찌감치 기대와 반발을 동시에 일으켰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파격적인 변화를 어필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만한 결단을 가능케 했던 동력은 꽤 뚜렷해 보인다. 현재 할리우드는 젠더 이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 제니퍼 로렌스, 패트리샤 아퀘트, 메릴 스트립 등 많은 배우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양성 평등에 대한 가치를 힘주어 말하고 있다. 굴지의 스튜디오들 역시 여성이 전면으로 나서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제작에 나서고 있다.
   

<너스 재키>


‘여성판 리부트’가 가능할 수 있었던 보다 실질적인 배경은 감독 폴 페이그의 필모그래피를 뜯어보면 더 명확해진다.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해 <더 오피스>,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등 시트콤의 연출을 맡으며 이름값을 단단히 다진 그는 2009년 드라마 <너스 재키>를 기점으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의사는 진단하고, 간호사는 치유한다”는 철학을 품은 재키는 늘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달고 살면서도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게을리 하는 법이 없다. <너스 재키>에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세태를 꼬집으면서도 주인공 재키의 씩씩함을 마음껏 응원하는 마음이 보였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히트> / <스파이>


<너스 재키> 시즌 2까지 만든 폴 페이그는 드라마를 잠시 접고 영화에 매진하고 있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 <히트>(2013), <스파이>(2015) 등 이제는 그의 뮤즈라 불러야 마땅할 멜리사 맥카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차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을 그려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폴 페이그의 강력한 장기인 코미디는 뚱뚱한 주인공을 소재로 삼더라도 일말의 거북함도 남기지 않은 채, 관객에겐 온전한 웃음을 전하는 신박함을 뽐냈다. 물론 그의 곁에 멜리사 맥카시와 더불어 로즈 번, 마야 루돌프, 산드라 블록, 크리스틴 위그 등 천군만마 같은 여배우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성과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2016년 판 <고스트버스터즈>는 매우 만족스럽다. '여성판 리부트'의 틀로 보자면 호감은 더 불어난다. 폴 페이그와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한 멜리사 맥카시뿐만 아니라,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세 명 역시 각자 다른 매력으로 활개치듯 영화를 누비고 다닌다. 마블 캐릭터 가운데 가장 마초성이 강한 토르를 연기한 크리스 헴스워스의 케빈은 이전 시리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했던 플러팅의 역학을 뒤집는 데에 충실히 봉사하는 캐릭터다. 다만 <고스트버스터즈>의 네 여자는 멍청한 데다가 무능력한 남자를 끝끝내 존중한다. 개봉 이전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던 남성 올드팬들의 날선 반응은 영화가 공개된 후에도 여전했는데, 이같은 비난이 긍정적인 의견을 가린다는 점이 못내 아쉽긴 해도, 기존 시리즈의 마초성을 뒤집어 보이겠다는 폴 페이그의 야심이 그만큼 제대로 먹혀 들어간 징후라고 본다면 살짝 위안이 된다. 그늘이라곤 찾을 수 없는, 유쾌하고 통쾌한 코미디다.

<고스트버스터즈> 메인 예고편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