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오스트리아의 소설/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다. 작년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 역할을 하던 스웨덴 한림원 종신의원의 남편이 '미투 운동'에 고발되는 과정에서 파행에 놓여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아, 올해 두 명의 작가를 함께 발표하게 된 것. 올가 토카르추크는 데뷔부터 크게 주목 받기 시작해 이젠 폴란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고, 우리나라엔 희곡 <관객모독>으로 알려진 페터 한트케는 근래 꾸준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돼왔다. 영화화 된 두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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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

Olga Tokarczuk

스푸어

Pokot, 2017

토카르추크가 2009년 발표한 소설 <죽은 자의 뼈 위로 밭을 갈아라>를 바탕으로, 토카르추크와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와 영화감독의 협업. 자연의 순환과 점성술을 믿는 노년의 여성 두셰이코는 딸처럼 아끼면서 자연 속에서 풀어놓고 키우던 두 반려견을 잃어버린다. 주변에선 늘상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어느날부터 밀렵으로 많은 돈을 벌던 사람들의 시체가 발견된다. 감독 스스로 "블랙코미디 요소를 지닌 무정부주의적 페미니스트의 범죄 이야기"라고 밝힌 영화에서 범인이 누구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인간에 의해 자연의 주변부로 밀려나 어떻게든 연대를 이루고 생존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해당한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애도만이 남는다.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페널티킥 앞에서 선 골키퍼의 불안

Die Angst des Tormanns beim Elfmeter, 1972

골키퍼가 주인공이지만 축구영화는 아니다. 오프사이드인 줄 알고 슛을 허용한 골키퍼 블로흐는 이에 격하게 항의하다가 경기에서 쫓겨난다. 영화는 블로흐가 경기장을 떠나 이곳 저곳을 여행하는 동선을 따라간다.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고, 주크박스를 만지고, 신문을 읽고.. 이렇다할 것 없는 여정이 이어진다. 극장매표원과 데이트를 하다가 살인을 저지르지만, 이 순간은 특별한 '사건'이 되지 않고 그저 앞서 보아온 행동들의 일부처럼 보인다. 빔 벤더스 감독은 어릴 적 친구였던 한트케가 발표한 소설을 각색한 두 번째 영화로 이름을 알렸다. 사건보다는 정처없이 떠도는 과정 자체에 더 집중하는 벤더스의 로드무비 스타일을 일찌감치 보여준 작품이다.

왼손잡이 여인

Die linkshändige Frau, 1978

감독으로서 TV영화 <현재 사건의 연대기>(1971)를 연출한 바 있는 페터 한트케는 1978년, 2년 전 발표한 소설을 각색한 <왼손잡이 여인>을 발표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으로부터 당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된 '여인'은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자기만의 삶을 꾸리기로 한다. 다시 번역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여러 남자들이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을 모두 파티에 초대하지만, 결국 혼자 남는다. <왼손잡이 여인>의 주인공은 공허한 세상에서 고독한 실존을 자각하는 여자의 표본으로 기억됐다. 빔 벤더스가 프로듀서를 맡아 배우 루디거 보글러와 브루노 강쯔, 촬영감독 로비 뮐러 등 벤더스의 오랜 파트너들이 참여했고, 프랑스 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유도 짤막하게 출연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

Das Mal des Todes, 1985

페터 한트케가 자기가 쓴 소설로만 영화를 찍은 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을 영화화 했다. 한 여자가 거대하고 황량한 저택을 시간을 보내고,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남자와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풍경을 담은 실험적인 작품이다. 1시간을 살짝 웃도는 러닝타임 대부분 오스트리아 배우 마리에 콜빈의 모노드라마처럼 진행되던 영화 마지막엔 한트케가 직접 시인으로 등장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각색했지만, 한트케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로 손꼽힌다.

베를린 천사의 시

Der Himmel über Berlin, 1987

페터 한트케와 빔 벤더스 콤비를 대표하는 작품. 한트케가 이미 발표한 소설을 영화화 한 게 아닌, 또 다른 작가 리차드 라이팅거와 함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썼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이후 해외에서 작업해오던 벤더스는 고향에 돌아와 베를린을 내려다보는 천사 다미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베를린이 생겨날 때부터 그곳을 내려다보기만 했지만 감각할 수는 없었던 다미엘은 동료 카시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땅에 발을 딛는다. 그곳에서 천사의 날개를 달고 외줄을 타는 곡예사 마리옹을 보고 사랑에 빠진 다미엘은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니콜라스 케이지, 멕 라이언 주연의 <시티 오브 엔젤>(1998)로 리메이크 됐다. 속편 <멀고도 가까운>(1993)에는 한트케가 참여하지 않았다.

부재

L'absence, 1992

<부재>는 한트케의 (현재까지) 마지막 영화 연출작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공개되던 1987년 발표한 소설을 5년 후에 영화로 만든 것이다. 기존에 내놓았던 영화에서도 주요인물의 이름을 정하지 않은 채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었던 한트케는 성별도 인종도 고향도 나이도 다른 무명의 4인(노인, 여자, 군인, 도박사)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이 황무지를 여행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한트케의 연인(이자 1995년 부부가 되는) 소피 세민이 '여자' 역을 맡았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으로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배우들은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각자의 모국어를 구사한다. 프랑스의 대배우 잔느 모로가 조연으로 참여했고, 프랑스의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클레르 드니와 주로 작업했던 아녜스 고다르가 촬영을 맡았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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