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시즈부터 봉준호까지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카데미를 앞두고 다수의 화제작이 뉴욕영화제(이하 NYFF)를 찾았다. 올해로 제57회를 맞은 NYFF에서는 개막작으로 수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신작 <아이리시맨>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한 노조단체 대표였던 지미 호파 실종사건에 관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존 갱스터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이리시맨> 기자 시사회에는 미국 전역의 평론가들이 첫 상영에 참석하기 위해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 시어터를 가득 채웠다. 상영시간이 3시간30분가량인 덕분에 조금 이른 오전 9시에 시사회가 열렸으나, 기자들은 상영시간 2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극장 앞에서 줄을 서며 영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스코시즈 감독의 작품 속 얼굴로 친숙한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 하비 카이텔 등을 비롯해 40여년 동안 함께 작업하기를 꿈꿔왔다는 알 파치노도 캐스팅에 가세했다. 특히 이제는 70, 80대가 된 이 배우들이 ‘디에이징’(De-aging VFX) 테크닉을 통해 40~50대부터 노년까지 연기해 더욱 눈길을 모았다. 이 작품은 11월1일 뉴욕과 LA에서 한정 개봉한 후, 11월27일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아이리시맨>의 로튼토마토 지수는 100%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27일부터 10월13일까지 계속된 올해 NYFF에서는 총 29편의 장편 극영화가 메인 슬레이트 섹션으로 소개됐고, 13편의 장편다큐멘터리가 스포트라이트 섹션에서 소개되는 등 17일 동안 153편의 장·단편 작품들이 상영됐다. 영화제 센터피스 부문에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 작품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 로라 던, 레이 리오타, 앨런 알다 등 호화 배역이 출연한다. 폐막작으로는 에드워드 노튼이 각본과 감독, 주연, 제작을 모두 담당한 <머더리스 브루클린>이 소개됐다. 이 작품에도 역시 노튼을 비롯해 브루스 윌리스, 구구 바샤 로, 윌럼 더포, 알렉 볼드윈, 체리 존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두 작품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은 물론 과거에 초청됐던 영화인들의 작품이라 NYFF 특유의 ‘뉴욕 사랑’은 올해도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NYFF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국내 개봉도 했고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을 마쳤으나, <기생충>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기생충>은 NYFF 기간 중 뉴욕 프리미어를 가진 후 영화제가 끝나기 전인 지난 10월11일 뉴욕과 LA 극장 3곳에서 한정 개봉을 시작했다. 배급을 담당한 네온측에서 북미 개봉을 앞두고 토론토국제영화제부터 이어지는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펼치고 있어, NYFF 기간 중 SNS에서 봉 감독이나 <기생충>에 대한 기사를 다루지 않은 매스컴이 없을 정도였다. <기생충>은 현재 로튼토마토 99%의 신선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개봉 주말 스크린당 수익이 12만 5421달러를 기록해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스크린당 수익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개봉한 <라라랜드>의 뒤를 이어 3년 만에 두 번째 큰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 꼽히게 됐다. 이 기록은 올타임 스크린당 수익 랭킹 중 1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같은 <기생충>의 흥행을 보도하는 미국 내 평론가들과 미디어 관계자들은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부문에서 수상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에 이어 <기생충> 역시 외국어작품상 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부문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NYFF 기간 중 봉준호 감독은 2회에 걸친 <기생충> 일반 상영회에 출연배우들과 함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은 물론, 뉴욕 개봉을 앞두고 IFC 센터에서도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영화제 상영회와 IFC 센터 특별 상영회는 짧은 시간 내에 모두 매진됐다. 또 봉 감독은 영화제에서 매년 화제의 감독에게 마련하는 별도의 행사인 ‘디렉터스 다이얼로그스’에도 참석해 작품세계에 대한 심도 깊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외에도 눈길을 끈 작품들로는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다큐멘터리 <업> 시리즈 신작 <63업>, 켈리 리처드 감독의 <퍼스트 카우>, 타냐 시프리아노 감독의 다큐멘터리 <본 투 비> 등이 있다. 내년 초 미국 내 개봉예정인 <퍼스트 카우>는 리처드 감독의 차분하고 섬세한 극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독특한 스토리라인으로 아름답게 풀어가 평론가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본 투 비>는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시작된 성전환 수술 전문의 제스 팅과 그의 환자들을 다뤄 호평을 받았다. 특히 트럼프 정권의 방침으로 LGBTQ 커뮤니티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고, 이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보험혜택도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어 이같은 문제를 조명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이번 NYFF에서는 이미 타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더 휘슬러스>, 마르코 벨로치오 감독의 <더 트레이터>,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와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감독의 <바쿠라우>, 올해 초 사망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등도 소개돼 뉴욕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편 올해 NYFF에는 넷플릭스에서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 마티 디옵 감독의 <아틀란티크> 등을 출품했고, 배급사 키노에서 <바쿠라우>를 비롯해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시너님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의 <영 아메드>, 칸테미르 발라고프 감독의 <빈폴> 등을 출품했다. 반면 지난해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콜드 워>만을 소개하는 데 그쳤던 아마존의 경우 올해 아무 작품도 출품하지 않았다.
씨네21 www.cine21.com
뉴욕=글 양지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