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일요일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대 화제작 중 하나인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부터
야외무대인사,
'아주담담' 토크,
<너의 이름은> GV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부산의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가장 뜻깊은 행사는
아무래도 팬들을
지척에 두고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던
'아주담담'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주담담 '빛의 작가, 신카이 마코토'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장형윤 감독과 신카이 마코토가
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진중한 작품 세계와는 달리
신카이 마코토의 멘트는
위트가 넘쳤습니다.
덕분에 아주담담 라운지는
통역을 거치기도 전에
일본어에 능통한 팬들이 터트리는
웃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은 진지합니다.
소년과 소녀의 닿을 수 없는
사랑에 집중했던 이야기들은
웃음보단 눈물이
분명 더 어울렸죠.
그런데 <너의 이름은>은
사뭇 다릅니다.
초장부터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너의 이름은>은 남자와 여자의 몸이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성별이 바뀌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기에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죠. 일단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내가 여자가 돼 있다, 그때 제일 처음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데, 역시 가슴을 만져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애초부터 가슴을 몇 번이고 만지는 걸 개그로 삼아야겠다 싶었죠. 그러나, 단순히 여러번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게 감동으로도 이어지는 묘사도 있으니 그런 부분도 유심히 봐주시길 바랍니다.
신카이 마코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까만 하늘 가득 채워진
'별'이 아닐까 합니다.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신카이 월드'를 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표상 중 하나죠.
그에게 별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손에 닿지 않는, 멀리 있는, 빛나는 그 무언가인 것 같습니다. 동경하는 대상, 때로는 여성일 수도 어쩌면 도쿄일 수도 있고요. 저는 어려서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도쿄라는 곳이 너무나 동경하는 곳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때 인기가 없었습니다. 운동도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동경을 받기보다는, 전혀 다른 삶을 존경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거 같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아주 강해서, 별이라든지 첫사랑이라든지 손이 닿지 않는 걸 동경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장형윤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의
그것과 비슷한 정서가
엿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사랑이란 감정의
강렬함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신카이 마코토의 대답은
(정서의 유사성보다는)
두 사람이 걸어온 행보가
비슷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숲>을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섹슈얼한 묘사가 많아서 고등학교 때는 거기만 찾아서 읽었죠. (좌중 폭소) 대학생이 돼서 다시 읽어보니까 너무나 훌륭한 이야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좋아하게 돼서 여러번 읽고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접점을 찾는다고 한다면, 그의 소설 역시 초기에는 명확하다기보다 약간 알기 어려운 그러한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강한 이야기성이 있는 그런 글을 쓰게 됐다는 점일 거예요. 제 작품을 되돌아보면 아주 비슷한 루트를 걸어온 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초속5센티미터>(2007) 역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긴 하지만 애매모호한 게 사실이죠. <초속5센티미터>가 시에 가까웠다면, <너의 이름은>은 이야기가 확연히 강해진 작품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말처럼,
<너의 이름은>은 무엇보다
서사의 탄탄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꿈결 같은 비주얼을 자랑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
서사의 밀도에 대한
아쉬움이 따라다녔던 걸
떠올리면 아주 중요한
변화라 할 만합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히 '보완'의 의미를 넘어
그의 작품세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별의 목소리>(2002)는 제가 혼자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솔직히 그 시절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고, 영화든 책이든 여러 가지 작품들을 참고하고 그것들을 이어붙여보면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만들어오면서 문득 "이건 나의 오리지널한 표현이다"라고 할 만한 걸 발견할 때가 있었고, 이번에 선보인 <너의 이름은>은 온전히 "나의 세계다"라는 자신을 갖고 여러분들에게 소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흡입력은
비단 시나리오에서만
비롯된 건 아닙니다.
"희노애락이 모두 담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도 했다고요.
원래 종이에 그림콘티를 그리는데, 이번에는 비디오 콘티를 만들어서 제가 직접 목소리로 녹음을 했습니다. 러닝타임인 107분에 꼭 맞춘 비디오 콘티였죠. 그래서 그것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요즘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좋아할지, 눈물을 흘리게 될지 이런 부분 하나하나 관객들의 감정을 컨트롤하겠다는 마음으로 늘 관객의 기분을 떠올리며 비디오 콘티를 만들어나갔습니다.
<너의 이름은>은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보다
스케일이 넓어진 티가 역력합니다.
제작비는 3억7천만 엔.
일본 애니메이션의 평균치를
밑도는 수준의 금액이죠.
현재 138억 엔의 수익을 넘기며
2016년 일본 개봉작 전체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할 만큼
거대한 성공에 비하면
턱없이 적어 보이는 제작비입니다.
실제로 감독을 포함한
스탭이나 주위 제작자들도
이 정도의 성공은 감히
예상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주된 관람층은 학생일 겁니다. 학교에서 붐이 되고 있다고 해요. 일본에서 8월26일 개봉했는데, 여름방학이 끝나기 딱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사실 이걸 히트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전략이 섰다면 한달 정도 먼저, 여름방학이 한창인 때에 개봉해야 했을 거예요. <신 고질라>, <원피스 필름 골드>, <도리를 찾아서>, <고스트버스터즈> 등 개봉 즈음에 경쟁작들도 대단했습니다. 아마도 극장 관계자는 신카이라는 잘 알지도 모르는 이름의 감독 작품보다는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을 걸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개학하기 일주일 전에 개봉해서 그 일주일간 영화를 본 학생들이 학교에 가서 입소문을 내줬다고 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좋은 시기에 개봉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연출, 각본, 작화, 목소리 등
수많은 공정을 직접 해냈다는
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그의 곁엔
수많은 조력자들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번 <너의 이름은>에는
더욱 특별한 스탭이
애니메이터로 참여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의 수많은 작화감독이었던
안도 마사시가 바로 그 주인공.
저희 스튜디오에 지브리 출신이 있는데, 하루는 그에게 안도 감독님 작화 좋아한다고 하니 "소개시켜줄까요?" 해서 정말로 그와 함께 일하게 되는 게 실현됐습니다. 정말 뛰어난 분입니다. 마치 수행자처럼 부지런한 분입니다. 보통 아침에 출근하면 앉아서 쉬거나 차를 마시거나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하는데, 안도 선생님은 출근해서 의자에 앉은 순간부터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거의 일어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죠. 저는 그분이 일하는 등을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 역시 이러지 않았을까?",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오른팔이었던 사람이 이 정도라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은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하고 두려움마저 느꼈죠. <너의 이름은>은 그런 작화감독을 비롯한 스탭들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관객석에서 나온 질문.
"영상 연출로 정평이 나 있는데,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인가요?"
에디터는 무심코
'빛이나 색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소리입니다. 첫 작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부터 최신작 <너의 이름은>까지, 그림 콘티를 작업할 때부터 소리 혹은 대사부터 떠올립니다. 대사도 직접 다 읽어보고, 발소리가 들어가야 하면 아이폰으로 녹음해서 그 소리를 집어넣어서 이 캐릭터가 어떤 리듬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어떤 기분으로 대사를 하고 있는지 소리로 먼저 설계해보는 것이죠. 소리와 음성만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림은 소리가 주는 감동을 지지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함에 있어서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 배경, 소재 등이
동원되는데, 그런 영감은 어디서 얻는지"
묻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해온 감독답게 역시
연애의 경험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도 있더군요.
덕분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별의 목소리>라는 초기작에 그녀로부터 메일을 받는 전파가 도달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설정이 있어요. 그걸 생각하게 된 계기는 그때 사귀고 있던 여성분이 메일에 대해서 답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너무너무 멀리 있어서 내 문자가 도달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다가 결국 그런 설정을 떠올린 셈이죠.
마지막 질문의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여고생이었습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
고등학생이 준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물었습니다.
최근에 고등학생과 대담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했습니다. 그때 쇼킹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감독님은 40대 아저씨인데 어떻게 여고생의 마음을 알 수 있냐"는 거였죠. (웃음) 그때 저는 "내가 여고생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여고생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서 이야기를 쓴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진짜 고등학생이었을 때, 고백을 했는데 그게 차인 아픔 혹은 여학생과 같이 하교하게 됐을 때 기쁨 같은 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고등학생이 생활에서 겪는 모든 감정 하나하나가 살아감에 있어서 보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일도, 슬프고 괴로운 일도 가능한 한 많이 맛보고 소중히 본인의 가슴 속에 간직하시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질이 될 것 같습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아직도
<너의 이름은>의 경이로운 흥행에
"어쩌다가 한번 잘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군요.
아직 차기작에 대해
결정된 바는 없지만,
다음도 다시 한번
<너의 이름은> 같은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시도해서,
자신의 작품이 성공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겸양과 의지가 동시에 담긴 말과,
그가 커리어 내내 보여준
작가적 집념이 분명
신카이 마코토,
한 사람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