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한국 가요를 소비하는 ‘온라인 탑골공원’ 문화가 유행이었던 올해, 1990년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군림했던 홍종호가 유튜브 계정에 자신의 전작을 고화질로 업로드 했다. 200편을 훌쩍 웃도는 작품들 가운데 배우들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만 골라 소개한다.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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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Honey’

(1998.01)

박진영은 1998년 초 발표한 4집 앨범의 싱글컷 된 두 노래에서 90년대 최고 인기의 여성배우 둘에게 도움을 청했다. ‘십년이 지나도’는 고(故) 최진실이 내레이션을 보탰고, ‘Honey’의 뮤직비디오에는 고소영이 출연했다. 코미디언 정선희의 목소리가 돋보이는 오프닝의 “오 허니~ 음~~마!”를 연기를 하며 등장하는 고소영은 그 존재만으로 “그대를 처음 본 그 순간 난 움직일 수 없었지 / 그대 그 아름다운 모습 난 넋을 잃고야 말았지” 하는 노랫말을 완벽히 설득한다. 박진영과 ‘그녀는 예뻤다’를 작업한 바 있는 홍종호 감독은 블루와 브라운 톤으로 춤추는 박진영과 노래하는 박진영을 교차해 보여준다. 고소영과 박진영이 마주보고 춤추는 부분은 <펄프 픽션>(1994)의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의 댄스 신이 떠오르기도.


신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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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Take Five’

(1998.07)

서태지의 솔로 1집 포스터는 신세경의 커리어 맨 처음으로 언급된다. 아트 디렉터 전상일이 만든 비주얼과 함께 신비 마케팅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서태지는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발표 후 약 2년 반 만에 발표하는 첫 솔로앨범에서도 특유의 모호하고 의미심장한 아트워크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신세경은 포스터뿐만 아니라 앨범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밝고 희망적인 노래 ‘Take Five’ 뮤직비디오에도 얼굴을 비췄다. 종이비행기가 먼 길(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앨범 활동 당시의 모습이 중간중간 나온다)을 날아 폐허에서 홀로 있는 소녀에게 닿는다. 당시 9살이었던 신세경이 단 30초 만에 내뿜는 아우라로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뮤직비디오. 신세경은 문근영 김래원 주연의 <어린 신부>(2004)를 통해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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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Steal Away’

(1998.11)

모델에서 배우, 그리고 가수까지 안착한 박지윤. 1997년 ‘하늘색 꿈’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박지윤은 이듬해 90년대 말 최고의 히트메이커 윤일상이 작곡한 ‘Steal Away’를 내놓았다. 뮤직비디오는 당시 여러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신인 박정철과 박지윤이 연기한 드라마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드라마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클로즈업의 비중이 많고 이루어져 있고 내러티브가 들쭉날쭉이긴 하지만, ‘Steal Away’의 테마인 남자를 뺏(은 것 같지만 사실)긴 여자의 이야기는 전달된다.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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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Kiss Me’

(1998.12)

고소영이 출연한 ‘Honey’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던 박진영은 다시 한번 여성 배우를 뮤직비디오에 내세웠다.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1998년 여름 납량특집 드라마 <어느 날 갑자기>에서 스티커 사진기 귀신을 연기해 얼굴을 알린 신인배우 이나영이다. 괴물들과 사는 미치광이 박사가 숲속을 헤매는 미녀를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슈퍼스티션’(Superstition)을 샘플링한 음악에 맞춰 박진영과 댄스팀이 선보이는 화려한 춤사위로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춤의 비중을 좀 줄이고 이나영의 아름다움을 더 즐기길 바라게 되는 게 흠이지만. 여자 연예인들의 강점을 십분 활용할 줄 아는 박진영의 안목은 지난 12년간 원더걸스, 미스 에이, 트와이스, 잇지를 연달아 히트 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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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폭풍’

(1998.12)

‘폭풍’은 이현도가 기타리스트 한상원과 함께 만든 3집 <Funk>의 타이틀곡이다. 뮤직비디오는 퍼포먼스, 드라마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김세훈 감독이 초호화 캐스팅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스타일로 연출한 조성모의 ‘To Heaven’ 뮤직비디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던 시기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방향이다. 당시 학교 폭력에 대한 문제점이 대두되던 때라 고등학생들의 방황과 탈선을 다룬 뮤직비디오가 우후죽순 발표됐는데, ‘폭풍’ 역시 그 유행을 살짝 건드린다. 노이즈의 멤버 홍종구에게 발탁돼 홍종호 감독이 만든 노이즈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 있는 고수와 이현도가 주연을 맡았다. 노는 애들의 계략으로 주머니에서 흉기가 나와 문책 받는 고등학생 시절에서 갑자기 성인이 되어 복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멀쩡한 어항을 깨트리더니만, 결국 패싸움 현장까지 가는 기괴한 전개가 6분간 진행된다.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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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 ‘Fever’

(1999.08)

미국에서 생활하며 PC통신에 올린 음원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한 조PD는 1999년 여름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1집의 전곡을 혼자 소화했던 그는 타이틀곡 ‘Fever’에 데뷔작 <꽃잎>(1996)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준 가수 경험이 전무했던 배우 이정현의 보컬을 맡겼다. ‘얼굴 없는 래퍼’라고 강조하듯 조PD가 랩 하는 모습이 희미한 형상을 보여주고, 묘기에 가까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감으로 찍어 뒤집은 신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이정현이 등장해 뮤직비디오를 완전히 장악해버린다. ‘Fever’가 나온 지 2개월 후 이정현은 가수로 데뷔해 ‘와’로 테크노 여전사로 불리며 20세기 마지막 해 한국을 정복했다. 각각 러시아와 이집트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평화’와 ‘너’ 를 비롯해, 이정현과 홍종호 감독은 총 4개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작업했다.


신민아 (& 윤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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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1999.11)

이제는 배우로 더 친숙한 윤계상은 2004년 드라마 <형수님은 열아홉>과 영화 <발레 교습소>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첫 연기는 따로 있다. 바로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뮤직비디오다. 1999년 초 박진영의 프로듀싱 아래 발표한 ‘어머님께’와 ‘관찰’로 준수한 신고식을 치른 god는 그해 말 2집 타이틀곡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발표했다. 어려서 보육원에서 만난 첫사랑에 대한 드라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뮤직비디오는 윤계상과 당시엔 아직 모델의 이미지가 강했던 (본명 양민아 시절의) 신민아를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사랑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장면들과 빗물에 씻겨 상처가 드러나는 반전까지, 호흡이 좋은 작품이다. god는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가 나오고 몇 달 뒤 예능 <육아일기>에 출연하면서 단숨에 국민적인 아이돌로 성장했다.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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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오랜 방황의 끝’

(2000.02)

‘돌아와’로 활동하던 클론 옆에서 메두사 같은 머리를 하고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던 김태영의 발라드 ‘오랜 방황의 끝’. 김건모, 클론, 박미경 등을 성공시킨 작곡가 김창환이 만든 미디엄 템포의 발라드가 2000년대 초 서울의 밤 풍경 아래 자꾸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향한 순애보를 그린 뮤직비디오가 상당히 잘 어울린다. <한명회>, <장희빈>, <허준> 등 사극 드라마로 특히 친숙한 임호가 출연해, 3년 후 김창환의 프로듀싱 아래 가수로 데뷔 하는 채연과 호흡을 맞췄다.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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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가니’

(2001.05)

박진영이 발굴한 첫 번째 가수 진주의 ‘가니’ 뮤직비디오는 딱 한 신의 롱테이크로 구성됐다. 비가 쏟아지는 밖으로 연인이 나가고 홀로 차 안에서 눈물을 그렁이는 김지수의 모습을 천천히 줌인 하는 게 전부다. 홍종호 감독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이미지를 전시하는 데에서 그쳤다면, ‘가니’ 뮤직비디오 속 김지수는 분명 뛰어난 연기가 먼저 보인다. 한껏 어두운 흑백 화면을 제외하면 그 어떤 장식도 없이 온전히 감정 연기로만 승부해야 하는 까다로운 형식을 완성시켰다. 남자 버전과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한 화면에 띄운 것까지 총 3개 버전이 만들어졌다. 홍종호 뮤직비디오의 최고이자 K팝 뮤직비디오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작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