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무서운 곳이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의 주인공 호다카(다이고 고타로)는 혈혈단신 도쿄로 상경하자마자 가부키초라는 유흥 거리의 만화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감독은 전작 <너의 이름은.>에 이어 무작정 도쿄로 떠나고 싶어 하는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번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날씨의 아이>는 세상의 형태를 바꿔버릴 아이들의 활약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 개봉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도쿄행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도쿄로 떠나던 날,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부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는 조금은 안이한 생각에 겁도 없이 도쿄로 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날씨의 아이>의 호다카도 겁도 없이 가부키초의 밤거리를 홀로 돌아다니다가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여러모로 위험한 도쿄에서 호다카는 우연히 뒷골목에서 권총을 줍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 히나(모리 나나)가 술집 종업원으로부터 안 좋은 일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의협심을 발휘한다. 전작들과 비교해보자면, 극중 호다카의 상황 설정은 확실히 이전과는 톤 앤드 매너가 다르다. 우연히 가부키초 뒷골목에서 권총을 습득하게 된 소년이 겪게 되는 폭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수몰된 도쿄에서 살아가야 하는 소년의 방향 잃은 분노가 작품 전체를 휘감고 돈다. 그런 와중에 만난 ‘맑음소녀’는 세계를 구할 수도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그 힘에 따른 어떤 책임을 져야 한다. 극중 호다카와 히나는 한번도 무언가를 가져본 것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들의 부모나 유년 시절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자립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이런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가상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무너진 도쿄는 어떤 의미일까. 그곳은 과연 삶의 터전일 수 있을까.
<너의 이름은.>의 흥행과 파급력을 보면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1997)을 만들었을 때 관객이 느꼈을 충격과 파급력을 종종 연결지어보곤 했었다.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냐”며 당시 오타쿠 관객의 반발이 심했다는 그 충격적 결말. 그땐 감독과 팬들이 그렇게 소통했겠지만, 이제는 작품을 즐기는 소위 ‘덕질’도 양상이 달라졌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 영화 속 배경 장소를 찾아 나서는 ‘성지순례’ 투어가 유행처럼 번진 때문인지, <날씨의 아이>는 일본 개봉과 함께 일찌감치 공식 홈페이지에 ‘방문 매너를 지켜달라’는 알림 글이 올라왔다. 오랜 시네필의 영화 감상법과 인스타그램 ‘갬성’을 지닌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만난 이벤트라 여기며 함께 젖어들기로 했다. <날씨의 아이>는 관객의 덕질 양상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디자인한 작품이다.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소비할지 잘 알고 있는 제작진의 기획력이 캐릭터 머천다이즈 상품 디자인, 한정판 카페 메뉴, 그리고 ‘성지순례’ 코스까지 모두 한 호흡으로 기획되었다. 이어지는 도쿄의 주요 공간 소개는 이런 작품 안팎의 의미와 재미를 복합적으로 지닌 곳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