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의 막이 열렸다. 강릉국제영화제는 문학의 도시로 알려진 강릉의 지역 특색에 맞게 문학과 영화를 결합시킨 프로그램들로 구성했다. 개막작 역시 이를 반영한 듯 새로운 방식으로 꾸며져 볼거리를 더했다. 따끈따끈한 강릉국제영화제 개막 현장을 전한다.


무성영화와 클래식 공연으로 채워진 개막식

<마지막 잎새: 씨네콘서트>

강릉 아트센터에서 열린 강릉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은 한 편의 연극 무대 같았다. 암전된 무대 위에 이번 개막식의 사회자를 맡은 김서형이 무대에 올라 짧은 독백을 읊었다. 김서형의 독백 대사가 끝나고 막이 열리며 오케스트라가 등장했다.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연주와 함께 무성영화 <마지막 잎새>가 상영됐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마지막 잎새>는 오 헨리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단편영화다. 영화 <마지막 잎새>는 영화를 연출한 최초의 여성 감독 알리스 기 블라쉐의 작품이다. 한국의 1960∼70년대 문학 작품을 각색한 문예 영화 상영 섹션 '문예영화 특별전'과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 여성 예술가들을 배출한 도시의 컨셉에 맞춘 섹션 '여성은 쓰고, 영화는 기억한다'라는 영화제의 두 컨셉이 잘 녹아들었던 개막공연 상영작이었다.

영화 <마지막 잎새>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쯤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 믿는 시한부 소녀와 그렇게 믿는 언니를 생각하며 앙상해진 나뭇가지에 나뭇잎들을 묶어 놓는 동생의 이야기를 그린다. 12분 남짓의 짧은 단편 영화였지만 클래식 연주가 더해지며 관객에게 보다 쉽고 풍부하게 영화의 감성이 전해졌다.


나문희 X 김수안 주연

개막작으로 첫 공개된 <감쪽같은 그녀>

개막 공연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개막작 <감쪽같은 그녀>가 상영됐다. <감쪽같은 그녀>는 12월 4일 개봉 예정으로 이번 강릉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신작이다. 이 날 레드 카펫 행사부터 개막식 현장까지 객석을 채운 관객들 대다수는 강릉 지역 주민들이었다. 지방에서 열리는 신생 영화제인 만큼 대중들을 고려해 접근성이 높은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장르의 한국영화를 개막작으로 선택한 것 같았다.

<아이 캔 스피크> 이후 쉬려했지만 선택한 작품

영화가 첫 공개됐던 자리니만큼, 나문희 배우와 김수안 배우, 허인무 감독이 상영에 앞서 짧은 무대인사를 가졌다.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그 해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감동을 선사했던 배우 나문희는 정작 <아이 캔 스피크>를 끝내고 잠시 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났을 때 <감쪽같은 그녀>를 만났고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부산행>, <신과함께-죄와 벌> 등에 출연했던 배우 김수안은 그새 또 몰라보게 성장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손녀라고 찾아온 아이

홀로 살고 있던 말순(나문희) 앞에 갓난 아기를 들처업은 아이 공주(김수안)가 나타나 손녀라고 말한다. 말순은 도망간 딸의 손녀들을 받아들이고 세 사람은 가족이 된다. 어려운 살림을 이어나가고 갓난 아기를 돌보는데 익숙한 어른스러운 공주는 할머니가 마냥 좋다. 그러나 언뜻 공주의 얼굴에 스치는 그늘은 어떤 사연이 있음을 암시한다. 공주는 할머니에게 '감쪽같지' 게임을 제안한다. 서로 속였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감쪽같지?'라고 묻는 게임이다. 상대가 정말 그 사실을 몰랐다면 그 비밀을 말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게임이다. 천진난만하게 할머니와 게임을 이어가던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속여왔던 비밀을 말하게 된다.

나문희와 김수안의 일상 연기가 빛났다

이 영화를 빛내는 건 단연 나문희와 김수안의 일상 연기였다. 시간이 지나 저렴해지기를 기다린 뒤 사 먹은 김밥 때문에 돌아가면서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웃픈 순간은 웃음을 자극했고, 말순과 공주가 서로를 생각해 일부러 모진 행동을 하는 모습에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다른 어떤 배우보다 나문희와 연기할 때 가장 편안해 보이는 김수안과 나문희의 연기합은 진짜 할머니와 손녀 사이처럼 보일 정도로 훈훈했다.

사랑스러운 감초 아역배우들과 깜짝 카메오들의 등장

<감쪽같은 그녀>의 웃음을 책임지는 건 아역 조연 배우들이다. 전학 온 공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같은 반 남자아이와 그 남자아이를 짝사랑해 공주를 질투하는 여자아이를 연기한 두 아역 배우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에 관객들은 빵빵 터졌다. 또한 <감쪽같은 그녀>에는 꽤 비중 있는 카메오 배우들이 깜짝 등장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했다.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 개봉 이후 영화를 보며 확인해 보길 권한다.


강릉 = 글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