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가 신작 <닥터 슬립>으로 극장을 찾았다. <닥터 슬립>은 38년 만에 돌아온 <샤이닝>의 속편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 등의 묵직한 수식어를 달고 있는 영화의 속편인 데다, 극 중 핵심 캐릭터였던 대니의 성인 시절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배우가 짊어진 부담감 역시 만만치 않았을 터.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이완 맥그리거는 2시간 30분의 긴 러닝타임을 ‘순삭’시키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슬립>의 개봉을 맞아 이완 맥그리거에 대한 이런저런 사실을 정리해봤다. 올해로 연기 인생 26년 차를 맞이한 그는 알고 보면 못 하는 게 없는 배우다.


# 인디부터 메이저까지,

온갖 장르 소화 가능한 만능 연기 신

이완 맥그리거는 스코틀랜드의 크리프라는 도시에서 자랐다. 이완 맥그리거에게 배우의 꿈을 불어넣은 건 그의 외삼촌인 배우 데니스 로슨. 아버지가 근무 중이던 모리슨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완 맥그리거는 이후 지역 극장의 무대 담당자로 일했고, 연극 기초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살 땐 런던으로 이주해, 데니스 로슨을 비롯해 대니얼 크레이그, 주드 로 등을 배출한 길드홀 스쿨 오브 뮤직 앤 드라마에 입학했다.

이완 맥그리거의 대표작만 모아도 이 정도!

이완 맥그리거는 길드홀 학교 졸업을 6개월 앞둔 시점부터 촬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립스틱 온 유어 칼라>가 그의 데뷔작. 첫 작품부터 주연을 따낸 것도 모자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이완 맥그리거는 이후 영국의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제 역량을 뽐냈다. 대니 보일 감독과 두 번째 협업이었던 <트레인스포팅>은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 데뷔 3년 만에 할리우드에 발을 디딘 이완 맥그리거는 이후 로맨스 <엠마>, 퀴어 연기를 선보였던 <벨벳 골드마인>, 뮤지컬 로맨스 <물랑 루즈>, 전쟁 액션 <블랙 호크 다운>,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판타지 <빅 피쉬>, 코미디 퀴어물 <필립 모리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계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 할리우드 입학 동료, 대니 보일 감독

<쉘로우 그레이브>

이완 맥그리거의 초기 필모그래피를 언급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사람, 바로 대니 보일 감독이다. BBC 프로듀서로 일하던 대니 보일은 1994년 <쉘로우 그레이브>를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주연으로 이완 맥그리거가 함께한 이 작품은 평단으로부터 신선하고 감각적이라는 평을 받았고, 이후 대니 보일 감독과 이완 맥그리거는 영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트레인스포팅>

<인질>

이들의 무대를 영국에서 전 세계로 넓혀준 영화가 바로 <트레인스포팅>. 개봉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춘 영화의 바이블로 군림 중인 <트레인스포팅>은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화면, 청춘들의 가슴을 쿵쿵 울리던 OST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대니 보일 감독과 이완 맥그리거는 이후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인질>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비치>

이렇게 영원히 절친일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는 일도 있었다. 대니 보일 감독이 차기작이었던 <비치>의 주인공으로 이완 맥그리거 대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선택한 것. 자신을 캐스팅할 것처럼 행동했던 대니 보일 감독에게 배신감을 느낀 이완 맥그리거는 10년이 넘도록 그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냈다. 두 사람이 화해한 건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대니 보일이 온갖 상을 휩쓸고 있었을 당시,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이완 맥그리거의 연설이 이들 사이 벽을 무너뜨렸다.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푼 두 사람은 <T2: 트레인스포팅2>로 뭉쳐 다시 환상의 호흡을 뽐냈다.


# ‘스타워즈’ 합류는 가족 내력?

<스타워즈> 시리즈의 오비완 케노비는 이완 맥그리거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다. 오비완 케노비는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스)의 스승이자 다재다능한 제다이로 어떤 상황에서든 올바른 길을 걷는 현명한 캐릭터다.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에서 오비완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는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의 오비완, 알렉 기네스의 말투와 걸음걸이 등을 참고해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웨지 안틸레스를 연기한 데니스 로슨

알고 보면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연이 짙었던 배우. 이완 맥그리거를 배우의 길로 이끈 그의 외삼촌, 데니스 로슨은 <스타워즈>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반란군 내 최고의 파일럿 웨지 안틸레스를 연기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캐릭터를 연기하면 한정된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단 사실을 미리 경험한 데니스 로슨은 이완 맥그리거가 <스타워즈>에 출연하지 않길 바랐다고. <스타워즈>에 출연한 삼촌을 보며 연기의 꿈을 키운 이완 맥그리거는 가족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연기에 더 많은 고민을 쏟았고, 그의 오비완 케노비는 팬들에게 합격점을 얻었다.

곧 오비완 케노비로 컴백할 이완 맥그리거를 만날 수 있을 예정. 올해 D23 행사에서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2021년 오비완 케노비의 솔로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타워즈> 촬영장에서 입으로 ‘우웅’ 소리를 내며 광선검을 휘둘렀다는 이완 맥그리거. 스턴트 배우들보다 광선검 기술을 더 빨리 익혔다는 그의 광선검 액션이 아직도 여전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보자.


# 사랑하는 것 : 모터사이클, 자선활동

<롱 웨이 라운드>

이완 맥그리거의 모터사이클 사랑은 유명하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촬영장에 출퇴근하며, 고가의 모터사이클을 구매하기 위해 출연료를 가불 받았던 적도 있었다고. 2004년 이완 맥그리거는 배우 친구 찰리 부어만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런던에서 중앙 유럽, 우크라이나, 몽골, 캐나다 등을 거쳐 뉴욕까지, 총 3960km의 거리. 여행 도중 그들은 곳곳의 유니세프 프로그램들에 참여했고, 이 과정을 필름에 담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 <롱 웨이 라운드>가 방영됐다. 같은 내용을 담은 책 <이완 맥그리거의 레알 바이크>가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은 2007년 또 다른 여행을 위해 뭉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의 여정. 2007년의 여행엔 이완 맥그리거의 형 콜린 맥그리거, 아버지 짐 맥그리거가 함께했다.

<이완 맥그리거: 콜드 체인 미션>

2012년 4월엔 <이완 맥그리거: 콜드 체인 미션>이란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완 맥그리거가 모터사이클, 보트, 비행기를 타거나 걸어서 인도, 네팔, 콩고 등의 외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전하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유니세프의 일원으로 함께한 프로젝트라고. 이완 맥그리거는 2004년부터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활동해왔으며, 꾸준한 자선단체 봉사활동으로 2013년에 영국제국훈장(OBE)을 받았다.


# 술, 담배 ㄴㄴ

<닥터 슬립>

1990년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기도 했던 이완 맥그리거는 2000년 11월에 술을 끊었다. 자신이 술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과감히 금주를 선언했다고. 함께 담배도 끊었고, 여태까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술을 끊고 새 인생, ‘닥터 슬립’으로 거듭난 <닥터 슬립> 속 대니와 겹쳐지는 부분이다.


#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제임스 본드 후보?

캐스팅될 뻔했던 영화들.zip

<로미오와 줄리엣> 머큐시오

굵직한 작품들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이완 맥그리거. <스타워즈> 시리즈를 비롯해 <물랑루즈> <트레인스포팅> <빅 피쉬>에 이르기까지 이완 맥그리거 없인 상상할 수 없는 작품이 수두룩하지만, 어쩌면 다른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도 있었다. 할리우드에 막 발을 들였을 무렵, 이완 맥그리거는 <로미오와 줄리엣> 속 로미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친구 머큐시오 역으로 오디션을 봤으나 좋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후 <물랑루즈>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바즈 루어만 감독과 함께 작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매트릭스>

<오션스 일레븐>

<어바웃 어 보이>

<매트릭스>의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이완 맥그리거에게 역시 제의가 갔던 역할. 당시 그는 <매트릭스> 대신 <스타워즈> 시리즈를 선택했다. <오션스 일레븐>의 멤버가 될 수도 있었다. 돈 치들 역으로 제안을 받았으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 촬영 스케줄이 겹쳐 함께할 수 없었다. 휴 그랜트의 로맨스 <어바웃 어 보이>나, 주드 로의 로맨스 <나를 책임져, 알피> 역시 이완 맥그리거를 주연으로 고려했던 영화들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이완 맥그리거를 만날 수도 있었다. 폴 러드가 연기 중인 앤트맨,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 중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캐스팅 후보엔 이완 맥그리거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어스 브로스넌을 이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고려된 배우이기도 했다. “<007> 시리즈 측에서 캐스팅 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매우 매력적인 역할이지만, 시리즈에 얽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거절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결국 다니엘 크레이그가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발탁됐다.


# 여자친구,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1995년 단역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캐버너 QC> 현장에서 미술부 스탭이었던 이브 마브라키스를 만나 결혼한 이완 맥그리거. 오랜 시간 할리우드의 대표 커플로 자리하던 이들은 2017년 별거에 들어섰고, 2018년 이혼을 택하며 남남이 됐다. 현재 이완 맥그리거는 동료 배우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연애 중이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스콧 필그림> <다이하드: 굿 데이 투 다이> <클로버필드 10번지>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배우다. 드라마 <파고>의 촬영장에서 만나 마음을 키운 두 사람은 이완 맥그리거의 차기작,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퀸의 황홀한 해방)>에도 함께 출연한다. 이완 맥그리거는 할리 퀸(마고 로비) 일당을 위협하는 빌런 블랙 마스크를,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할리 퀸과 함께 팀을 이루는 히어로 헌트레스를 연기한다.

드라마 <파고>

(왼쪽부터) <버즈 오브 프레이>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이완 맥그리거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