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이 나오기까지 그 기간이 길어지는 건 이제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스타와 감독이 영화와 TV라는 정해진 플랫폼에 올 인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저마다 난립하는 미디어들에 너도나도 뛰어들며 바쁜 스케줄을 한참 기다렸다 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혹은 소재 불황으로 안전하게 속편 카드를 꺼내들어 뒤늦게 제작되는 탓도 있다. 하지만 전편이 나온 지 정확하게 10년 만에 개봉되는 <좀비랜드: 더블 탭>은 위의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중간에 배우들을 모두 바꾼 TV시리즈가 기획됐다가 파일럿의 혹평으로 취소된 흑역사가 있긴 하지만) 오리지널 감독과 각본가, 주연들이 다시 뭉쳐 반갑게 관객들에게 근황 보고(?) 하는 느낌으로 제작됐다.
10년 만에 모두 성공해 돌아오다! 더블 탭
좀비물에 대한 상식과 편견, 컨벤션한 설정들을 뒤집으며, 묵시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고 인물의 성장과 대안 가족에 대한 얘기를 펼쳐냈던 이들의 생존 적응기는 세월이 지나 더 확장되고 발전됐다. 새로운 캐릭터들과 설정들이 추가됐으며, 좀비 생존 규칙도 유사 버전이 나오는 한편 변화되고 업데이트되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한결 여유로워졌으며, B급 무비 감성을 솔솔 풍기던 규모도 커지고, 재미도 업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이들의 위상은 그때와 현저히 달라졌다. 감독인 루벤 플레셔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스핀 오프인 <베놈>을 연출해 잭 팟을 터트렸고, 각본가 렛 리스와 폴 워닉 듀오는 구강(?) 활극의 지존에 오른 두 편의 메가 히트작 <데드풀> 시리즈로 귀하신 몸이 되었다.
무엇보다 주연 4인방이(물론 최연장자 우디 해럴슨과 최연소자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전편을 찍을 때도 노미니 배우였지만) 모두 오스카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되었다. 특히 1편에서 406호로 오디션을 봤다 덜컥 주연이 된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로 그들 중 가장 먼저 오스카 수상에 성공하며 상전벽해를 이뤘다. 이처럼 모두 다 성공해 다시 후속편에서 해후하기 힘든데 <좀비랜드>는 이 어려운 걸 해냈고, 이들의 10주년 기념작은 흥행과 비평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물론 이 영화에 컴백한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음악을 맡은 데이빗 사디 역시 반갑게 크레딧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영화음악가보다 'D. 사디'라는 음악 프로듀서로 더 유명한 그의 자극적이면서도 하이 옥탄에 가까운 사운드는 좀비 코믹물에 그럴듯하게 어울렸다.
너무나도 유명한 슈퍼 프로듀서 데이빗 사디
1980년대 후반 록 밴드 바크마켓에서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데이빗 사디는 90년대 중반부터 범위를 넓혀 작곡가 겸 프로듀서 그리고 믹서로 이름을 날렸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슬레이어, 루퍼스 웨인라이트,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마릴린 맨슨, 배들리 드론 보이, 울프마더, 오케이 고, 제트,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 나인 인치 네일, ZZ Top 등 이름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 작업에 참여했고, 그래미상도 3번이나 수상했다. 하드 락과 펑크, 일렉트로닉과 인더스트리얼, 얼터너티브까지 넘나들며 강력하고 단단한 소리들을 주조해 '하드코어 슈퍼 프로듀서'로 불릴 만큼 영향력도 쌓았다. 그런 그가 영화음악가로 변신한 건 2008년 <21>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부터다.
물론 그전에도 <코드명 J>나 <트위스터> <빅 대디> <디트로이트 락 시티>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파이더맨 2, 3> <그린 호넷> 등 수많은 사운드트랙에 간간이 참여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그가 (스코어를 포함해) 한 작품 전체를 총괄하게 된 건 <21>이 최초였고,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다. 메탈과 록 음악 열혈 팬이었던 루벤 플레셔가 이런 사디를 눈여겨봤고, 데이비드 에이어 역시 그와 여러 번 호흡을 맞추며 영화음악가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비록 작품 수는 많지 않고 그마저도 비슷비슷하게 락킹한 사운드로 도배해 좋은 평가를 얻진 못했지만, 대중음악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다져진 내공과 안목이 탁월한 삽입곡들의 조화를 이루고, 강렬한 흥분과 자극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운드 메이커임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하드코어 한 스코어, 대중적인 삽입곡
좀비 떼들에게 점령당한 황량하고 스산한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디스토션이 잔뜩 낀 기타 솔로에 인더스트리얼 비트, 혼란스러운 엠비언트 사운드, 불협화음의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데, 이런 메탈적인 색채감은 신명나는 학살(!)극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며 아드레날린을 마구 분비시킨다. 다만 영화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스코어인지라 트랙들이 굉장히 짧고 아방가르드하며, 단독으로 감상하다간 주의력 장애나 발작을 유도할 만큼 파괴적이고 자극적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속편 역시 이 기조에 충실하며, 여기에 미국의 전통적인 블루그래스 스타일과 엔니오 모리꼬네식의 보이스나 휘파람, 그리고 시타르 같은 음색들을 덧입혀 히피들의 세상이었던 60년대 유행한 스파게티 웨스턴스러운 분위기도 자아낸다.
그러나 <좀비랜드> 시리즈의 진정한 재미이자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다양한 범주의 삽입곡들에 있다. 1편 오프닝 크레딧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메탈리카의 "For Whom the Bell Tolls"를 필두로, 척 맨지오니의 "Feels so Good"과 밴드 오브 호시스의 "No One's Gonna Love You", 밴 헤일런의 "Everybody Wants Some", 폴 앵카의 "Puppy Love",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Oh! Sweet Nuthin’",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윌리 넬슨의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레이 파커 주니어의 "Ghostbusters" 그리고 호러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는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Don't Fear) The Reaper" 등등 전혀 다른 분위기, 다른 시대의 곡들이 혼재돼서 쏟아지기 시작하면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전편보다 여유로워진 속편의 삽입곡들
대망의 하이라이트인 놀이동산 대혈투에서 루벤 플레셔는 자신의 취향을 모조리 때려 부어 슬레이어와 데쓰, 디어사이드, 테러라이져, 볼트스로워, 카카스 등 대거 메탈 밴드 곡들을 배치하려고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눈물을 머금고 포기, 데이빗 사디가 작곡한 스코어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모두가 거물(!)이 되어서 돌아온 이번엔 전편에서 저작권료가 너무 비싸 못썼던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을 과감하게 오프닝에 사용하며 바뀐 위상을 맘껏 뽐낸다. 게다가 새로 등장하는 음유시인 버클리가 평화주의자들로 가득한 바빌론으로 향하며 밥 말리의 "Three Little Birds"와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레너드 스키너드의 "Free Bird" 등을 부른다면, 엘비스 프리슬리의 생가 그레이스랜드에 도착해선 텔러해시가 "Never Been To Spain"과 "Hound Dog"을 부른다.
우디 해럴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엔딩 크레딧에선 엘비스 프리슬리의 "Burning Love"를 직접 멋들어지게 불렀다. 가수 뺨치게 부르는 그의 숨겨진 솜씨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전편의 빌 머레이를 이번에도 기대했다면 영화 끝까지 앉아 있을 것을 추천한다. 이번엔 <고스트버스터즈>가 아닌 그의 또 다른 대표 코미디 <캐디쉑>의 케니 로긴스가 부른 주제가 "I'm Alright"이 잠깐 흐르며 웃음을 준다. 또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여전히 잘나가는 이들이 뭉친 세 번째 근황 보고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