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위드 러브 / 잭 역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를 경유한 로맨스를 만들던 우디 앨런.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네 쌍의 커플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병치시키며 유쾌한 리듬을 만들어 간다. 그중 제시 아이젠버그의 에피소드를 들여다보자. 삼각관계는 삼각관계인데, 완전히 맥 빠진 삼각관계 이야기다. 로마에 살고 있는 잭(제시 아이젠버그)과 샐리(그레타 거윅) 커플에 한 가지 변화가 닥친다. 미국에서 온 샐리의 절친 모니카(엘렌 페이지)가 집에 함께 묵기로 한 것이다. 사전에 샐리는 잭에게 여러 번 주의를 준다. 모니카가 박식하고 매력이 넘쳐서 남자에게 인기가 많으니, 잭 역시 반할 수도 있다는 것.
잭은 '나는 너(샐리)를 사랑하고, 다른 여자에겐 관심이 없고, (모니카가)예쁘기는 하지만 나에겐 매력이 없다'는 둥 수시로 철벽을 과시한다. 하지만 모니카는 잭이 좋아하는 작가의 시구절을 척척 읊는 것도 모자라, 도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들로 바른 생활을 자극한다. 사실 모니카는 마치 <오징어와 고래>에서의 월트를 보듯 허세의 전형에 가까운 캐릭터다. 그럼에도 잭은 예견된 수순처럼 모니카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든다. 말하자면 이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은 전지적 잭의 시점에서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응'인 셈인데, 우디 앨런은 고작 이 정도의 웃음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이 위험한 커플이 맞이한 마지막 국면은 더없이 깔끔하고 허탈해서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