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이리시맨>은 영화사 최고의 배우/감독 콤비 로버트 드니로와 마틴 스코세이지의 9번째 협업작이다. 1973년 <비열한 거리>부터 2019년 <아이리시맨>까지 드니로와 스코세이지가 함께 했던 작품들을 정리했다.


자니 보이

<비열한 거리>

Mean Streets, 1973

<비열한 거리>의 주인공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또 다른 페르소나로 언급되는) 하비 케이틀이 연기한 찰리다. 동네 마피아 두목인 삼촌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하면서도, 기도하고 회개 받길 원해서 친구 자니 보이를 보살피려 애쓴다. 로저 코먼, 브라이언 드 팔마 등의 감독과 작업하며 서서히 얼굴을 알리던 로버트 드니로는, 갚지도 못할 빚이 쌓여가는 와중에도 기분 내키면 주변 손님들의 술을 사준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대책 없는 도박꾼 자니 보이 역을 맡았다. <비열한 거리>를 통해 드니로는 처음 스코세이지와 연을 맺었고, 미국 영화계 전역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악의보다는 차라리 순진함이 먼저 보이는 자니 보이는 훗날 스코세이지와의 작품 속에서 드니로가 선보일 폭력적이고 미성숙한 남자의 시작점이었다.


트래비스 비클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로버트 드니로는 <비열한 거리>에 제작비를 지원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2>(1974)에서 젊은 비토 콜레오네를 연기해 알 파치노와 함께 말론 브란도의 빈 자리를 채웠다. <택시 드라이버>는 온전히 드니로를 위한 작품이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트래비스는 불면증에 시달려 한밤 중에 택시를 몰고 뉴욕 한복판을 누비면서 권태와 열등감만 키우던 와중,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고 거리에서 만난 소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1975년 초 이탈리아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1990>(1976)를 촬영 중이던 드니로는 미군 기지를 방문해 군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탐구했고, 2주 넘게 촬영 스케줄이 비었을 때 뉴욕에서 돌아와 하루에 15시간씩 택시를 몰면서 트래비스의 고독과 자괴를 추체험했다. 뉴욕 출신이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중서부 지방의 사투리를 익혔고, 깡마른 몸을 만들고자 16kg을 감량했다. 1972년 대통령 후보 조지 월러스의 암살을 계획했던 아서 브래머의 일기를 반복해서 들었던 드니로는 훗날 도널드 트럼프를 두고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에 빗대어 비난했다.


지미 도일

<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1977

<택시 드라이버>와 <성난 황소> 사이에 놓인 <뉴욕 뉴욕>은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버트 드니로의 협업에서 거의 빈칸처럼 취급된다. <택시 드라이버>의 성공으로 예술적인 야심이 충만하던 스코세이지는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수정해가면서 즉흥적인 연출로 뮤지컬 영화를 완성했다. 뮤지컬 영화의 황금기인 1940년대의 형식을 따르되 결정적인 컨벤션이었던 해피 엔딩을 과감히 거부한 <뉴욕 뉴욕>은 전작들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지미와 노래하는 프랜신(라이자 미넬리)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계속되는 인연에 부부가 되지만, 프랜신만 재즈 스타로 승승장구하게 되면서 둘 사이는 점점 갈라진다. 드니로와 스코세이지의 협업작 가운데 그나마 사랑의 뉘앙스가 짙은 <뉴욕 뉴욕>에서 드니로는 뮤지컬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와 감독인 주디 갈란드와 빈센트 미넬리의 딸인 라이자 미넬리를 상대로 준수한 로맨스를 구현했다. 음악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답게 드니로 역시 색소폰을 배웠는데, 실질적인 연주력을 키우기보다 진짜 연주가처럼 보이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제이크 라모타

<성난 황소>

Raging Bull, 1980

<대부 2>를 촬영할 당시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자서전을 읽고 영화화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드니로는 코카인 중독으로 입원해 있던 스코세이지에게 얼른 회복해서 복서 영화를 같이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드니로의 고집은 결국 스포츠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스코세이지의 마음까지 돌려놓았다. <성난 황소>가 링 위의 경기보다는 의처증으로 인해 친형과 아내를 떠나게 만드는 라모타의 병적인 집착을 그리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함에도 불구하고, 드니로는 직접 라모타에게 트레이닝을 받아 미들급 복서로서 대회에 나가 세 경기 중 두 번을 이길 정도로 권투 실력을 키웠다. 한편, 복서로서 실패한 뒤 나이트클럽 코미디언으로 전향한 라모타의 외형을 위해 무려 27kg를 찌웠다. 촬영 전부터 같이 살면서 친분을 다졌던 드니로와 조 페시의 형제 호흡이 기막히다. 드니로는 <택시 드라이버>와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1978)의 명연에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무관에 그쳤지만 <성난 황소>로 드디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루퍼트 펌킨

<코미디의 왕>

The King of Comedy, 1983

<성난 황소>를 마친 후,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영화배우로서 은퇴를 고려하던 중이었던 로버트 드니로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 역을 맡아달라는 스코세이지의 청을 거절했다. 다음 작업이 코미디이기를 바랐던 그는 폴 D. 짐머만에게 <코미디의 왕> 시나리오 판권을 사서 <디어 헌터>의 마이클 치미노, <올 댓 재즈>(1979)의 밥 포시에게 연출을 권했지만 모두 무산됐고, 때마침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제작이 미뤄지면서 스코세이지와 드니로의 다섯 번째 협업이 성사됐다. 스스로를 재능 있는 코미디언이라고 믿는 루퍼트는 평소 열렬한 팬인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의 형식적인 호의만 믿고 망상을 키우다가 그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드니로는 자기를 쫓아다니는 스토커나 싸인꾼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리처드 벨저를 비롯한 코미디언들의 공연을 보면서 스탠드업 코미디의 호흡을 익혔다. 너무나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들에 처음엔 실소를 터트리다가 끝내 섬뜩함마저 느끼게 되는 루퍼트는 분명 처음 보는 스타일의 드니로였다.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에도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는 드니로의 아내 다이안느 애보트는 루퍼트가 좋아하는 바텐더 리타를 연기했다.


지미 콘웨이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

마틴 스코세이지는 <코미디의 왕>의 연기가 로버트 드니로와의 협업작 중에 가장 훌륭한 연기였다고 평했지만, 오랫동안 그들의 콜라보레이션은 멈춰 있었다. 스코세이지는 그 원인을 <코미디의 왕>이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든 연기였던 탓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좋은 친구들>의 드니로는 분명 힘을 덜어낸 것처럼 보인다. 감정적인 동요는 (드니로가 조나단 데미의 <썸띵 와일드>(1986)에서 발견해 추천한) 레이 리오타가 연기한 헨리가, 폭발적인 에너지로 광기를 드러내는 건 조 페시가 맡은 토미가 보여주는 사이, 드니로의 지미는 영화 내내 완만했다. 그럼에도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한 드니로의 집념은 여전했다. 실제 헨리 힐에게 하루에도 일고여덟 번 꼴로 전화 해서 (지미 콘웨이의 바탕이 된 실존인물) 제임스 버크가 어떤 걸음걸이였는지, 담배는 어떻게 잡았는지, 심지어 주인공 3인방이 버크의 어머니와 식사했을 때 어떻게 케첩을 뿌렸는지까지 물었다. 헨리에게 돈 뭉치는 건네는 신에서 위조지폐의 질감이 싫어 실제 돈 5천 달러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건 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맥스 캐디

<케이프 피어>

Cape Fear, 1991

1991년 작 <케이프 피어>는 1962년 영화 <케이프 피어>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이전까지 스코세이지의 영화 속 드니로가 연기한 인물들이 선과 악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었던 데에 반해, <케이프 피어>의 맥스 캐디는 악 그 자체다. 14년 만에 출소한 맥스는 변호사 샘 보든(닉 놀테)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구속되게 만든 걸 복수하기 위해 그의 주변을 옥죄어온다. 영화사상 최고의 악역 배우로 추앙 받는 로버트 미첨이 연기한 원작의 맥스와 달리, 드니로의 맥스는 완전히 악밖에 남지 않은 소시오패스 살인마다. 샘에게 고용된 청부업자 세 명에게 린치를 당하고도 결국엔 그들을 다 때려눕히고, 얼굴이 불타고 배가 좌초되어도 살아남아 샘의 가족을 위협하는 괴물. 이를 위해 드니로는 지방을 3%로 줄인 몸 빼곡히 지워지는 문신을 새겼고, 5천 달러로 이빨을 갈아내 그 4배를 들여 복원시키는 공을 들였다.


에이스

<카지노>

Casino, 1995

로버트 드니로와 마틴 스콜세이지의 여덟 번째 협업작 <카지노>는 드니로와 조 페시와의 다섯 번째 협업작이기도 하다. 스코세이지의 <성난 황소>와 <좋은 친구들> 외에도 세르지오 레오네의 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와 드니로의 감독 데뷔작 <브롱스 이야기>(1993)까지 호흡을 맞춘 두 거장은 <카지노>에서 둘의 대화신 대부분을 즉흥연기로 해치울 수 있는 호흡을 자랑했다. 도박에 천부적인 재능을 선보여 마피아의 일원이 되는 에이스가 처하는 상황은 아름다운 아내를 의심하다가 관계를 그릇친다는 점에서 <성난 황소>, 점차 신분 상승하다가 돌연 망조가 든다는 점에서 <좋은 친구들>이 묘하게 겹쳐진다. 스코세이지의 갱스터 영화는 늘 중앙 조직에 가담하지 못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탓에 호화로운 인상이 드물었는데, '블링블링'의 기운이 넘치는 <카지노>에서 드니로는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 내내 70여 벌을 옷을 입고 나온다.


프랭크 시런

<아이리시맨>

The Irishman, 2019

새로운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다섯 작품을 함께 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24년 만에 로버트 드니로와 다시 만나 <아이리시맨>을 만들었다. 트럭 운전사 프랭크 시런이 우연한 기회로, 미국 사회를 쥐락펴락 하게 될 범죄 조직에 가담하게 돼 조직 내 실력자로 활약하는 20여년 간의 이야기를 3시간30분에 걸쳐 풀어놓는 대작이다. 드니로는 CG의 힘을 빌려 30대에서 80대까지 프랭크의 육체를 아우르면서 스코세이지 표 갱스터 영화의 작별인사와도 같은 뉘앙스까지 끌어안는 경지를 보여준다. 근 50년 동안 드니로가 선보인 파란만장한 캐릭터들이 있어 거대한 회한을 마주하는 나이든 갱스터의 얼굴이 비로소 완성된다. 여러 작품을 같이 한 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과 더불어, 처음 공연하는 안나 파퀸과의 불화하는 부녀지간의 케미가 아주 인상적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