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청룡영화상의 40번째 행사가 지난 11월 21일 개최됐다. 주요 부문 수상자에 관한 간단한 소개와 그들의 수상소감을 정리했다.


작품상 & 감독상

<기생충>

봉준호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100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명실공히 2019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군림했다. 다른 분야의 여러 수상자들이 “<기생충>이 받을 줄 알았다”며 수상소감의 운을 뗀 것만 보더라도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기생충>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을 독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두 부문을 한 작품이 모두 수상한 경우는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2002년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2004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2011년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전부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2006년 <괴물>과 2010년 <마더>가 연속으로 작품상을 받았고, 한국 자본으로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가 2013년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앞으로도 한국영화의 가장 창의적인 기생충이 되어 한국영화 산업의 영원히 기생하는 창작자가 되겠습니다.


여우주연상

조여정

<기생충>

<기생충>의 연교는 ‘심플’한 사람이다. 처음엔 괜히 문자 써가면서 까다롭게 구는 것 같지만, 한번 마음에 드는 사람은 무턱대고 믿는 편. 그때그때 기분을 표현하는 데에 경계가 없는 편이라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로지 자식을 잘 키우는 데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정작 아이에게 스킨쉽은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엄마의 느낌은 희박하다. 봉준호 감독은 <인간중독>(2014)을 보고 조여정을 캐스팅 했다. <인간중독>에서 조여정은 탄탄한 집안에서 자라 구김살이라곤 없는 숙진을 연기했다. 그는 장교 부인들 모임에서 남편과의 잠자리가 훌륭했다고 늘어놓다가도, 제 남편보다 직급이 낮은 이의 부인이 살짝 심기를 건들면 바로 제압해버린다. 평소 순진하고 친절해 보이다가도 즉각적으로 자기의 계급적 우위를 잊지 않는 미묘한 태도는 분명 준수한 연기력이 바쳐줬기에 가능한 균형이었다.

어느 순간 연기가 그냥 제가 짝사랑하는 존재라고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항상 연기를 짝사랑 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그 사랑은. 어찌 보면 그게 제 원동력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짝사랑을 열심히 해야지. 근데 오늘 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진 않겠습니다. (…) 정말 뻔한 말이지만, 묵묵히, 정말 묵묵히 걸어가보겠습니다.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열심히 짝사랑을 해보겠습니다. I'm deadly serious.


남우주연상

정우성

<증인>

한국 최고의 미남자로 손꼽히는 정우성이 거쳐온 캐릭터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인 경우가 많았다. 올해 설날 즈음 개봉해 소소한 성공을 거둔 <증인>의 순호는 달랐다. ‘민변에서 활동하다 출세를 위해 대형 로펌에 들어간 순호는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달린 사건을 맡게 되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소녀 지우(김향기)를 증인으로 세우려고 한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활동하고, 세월호 참사를 파고든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2018)의 내레이션을 맡은 정우성이 보여준 ‘좋은 사람’의 표상은 현실을 좇다가 결국 신념을 택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아마 누구보다도, 이 트로피를 손에 들고 있는 저의 모습을 집에서 TV로 보고 있을 한 남자, 제 친구 이정재씨! 함께 기뻐해주리라 생각하고요. 여러분과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여우조연상

이정은

<기생충>

이정은은 중반에 완전히 뒤집히는 <기생충>의 구조를 가로지른다. <마더>, <옥자>에서 단역을 맡아오면서 두텁게 쌓였던 봉준호의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다. 사무적이다 못해 도도해 보였던(“어떨 땐 사모님 행세를 할 때도 있어”) 말쑥한 차림새의 가정부 문광은 김씨 가족의 계략으로 쫓겨난 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인터폰에서 문광의 기괴한 얼굴이 떡 하니 보이면, 전반까지 코미디였던 <기생충>은 순식간에 스릴러로 변모한다. 그리고 김씨 가족, 박사장 가족, 문광 부부까지 파국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올해 후보로 오른 영화상에서 모두 수상하는 결과가 지극히 당연한 명연이었다.

<기생충>으로 주목을 받게 되니까 약간 겁이 나서… 사실은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다른 작품에 더 많은 시간을 몰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다른 작품에 더 몰두하면서, 서울에서 좀 벗어나서 있었어요. 제가 마음이 혹시나 자만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이 상을 받고보니까 며칠은 좀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남우조연상

조우진

<국가부도의 날>

1997년 외환 위기를 그린 <국가부도의 날>은 선과 악의 구도를 뚜렷하게 그어놓고 진행된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을 비롯한 IMF와의 협상을 막으려는 편이 선, 그걸 부추기는 재정국 무리는 악이다. 이를테면 조우진이 연기한 재정국 차관은 <국가부도의 날>의 빌런의 위치에 놓여 있다. 언제나 나른한 얼굴을 하고 상대방을 하대하면서 대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소신을 무조건 밀어붙여 끊임없이 관객의 속을 긁는다. 지난 작품들에서 무표정한 채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캐릭터를 선보여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조연배우로 떠오른 조우진의 장점이 더 단정하고 밀도 있게 활용됐다. 강한 인상을 남긴 <내부자들>(2015), <강철비>(2017), <1987>(2017) 등으로 여러 차례 조연상 후보에 올라 번번이 고배를 마셨는데, <국가부도의 날>로 드디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제가 이 분 빠트리면 안 되겠죠. 저를 늘 신나게 해주시고, 긴장되게 해주시고, 놀라게 해주시고, 힘나게 해주신 우리 사랑하는 혜수 누나. 정말 감사합니다. (…) 마지막으로 이 트로피를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있을 제 집에 있는 두 여자에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신인여우상

김혜준

<미성년>

<미성년>은 주리가 아빠의 외도를 훔쳐보는 오프닝부터 저마다 난처한 상황을 대면한 이들의 감정을 확연히 드러내는 솜씨를 단박에 보여준다. 그럭저럭 평범한 환경의 집에서 안전하게 자란 듯한 주리는 이 난국에 방어적으로 대처하기에 바쁜데 윤아(박세진)가 일을 괜히 크게 만들면서 갈등을 빚는다. 어지러운 상황에 떠밀리다가 너무너무 작은 몸으로 숨을 쉬고 있는 동생을 보고 한결 의연해진다. 주리 역의 김혜준은 단조로운 얼굴에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무책임한 중년 남자의 외도를 둘러싼 여성들의 커다란 상처와 실낱같은 연대를 가능케 한다. <벌새>의 박지후, <스윙키즈>의 박혜수, <사바하>의 이재인, <걸캅스>의 최수영이 후보로 모여 유독 치열했던 신인여우상 부문에서 수상한 김혜준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많은 위로와 에너지를 저를 보시는 분들이 받을 수 있도록 늘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는 그런 연기자 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지켜봐주세요.


신인남우상

박해수

<양자물리학>

유흥업계의 전설 이찬우는 세상 어느 곳에 떨어트려놓아도 살아남을 사람이다. 천부적인 붙임성과 순발력을 발휘하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해 “불법과 탈세 없는” 그는 연예계는 물론 재벌과 정치계까지도 얽힌 마약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박해수는 영화계 데뷔 6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은 <양자물리학>을 거의 원맨쇼와 같은 장악력으로 이끌어간다. 스크린과 차근차근 다져온 기본기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구워 삶는 ‘날티’부터 정의를 구현하는 이의 우직한 태도까지 안정적으로 소화하면서, 거창한 제목만큼이나 무리수 같은 설정에 얼마간 설득력을 부여한다.

제가 오늘 생일이에요. 오면서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위로하고 힘이 되고 치유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서 해왔습니다. 아직 더 갈길이 많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힘 받으라고 주신 상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신인감독상

이상근

<엑시트>

<엑시트>는 신인감독에게 향하는 최상의 반응을 얻았다. 일찌감치 대중영화의 바른 본보기라는 식의 극찬이 이어졌고 입소문을 통해 추석 연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사로잡아 940만 명을 동원하는 대박이 났다. 코미디에서 시작해 재난, 액션, 신파, 그리고 사회 문제에 관한 거북하지 않은 논평까지 적재적소에 담긴 만듦새는 고매한 평자들의 입맛까지 만족시켰다. 올해 신인감독상 부문엔 <미성년>의 김윤석, <벌새>의 김보라, <메기>의 이옥섭 등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힐 만한 작품을 (장편)데뷔작으로 내놓은 감독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근 감독은 그 높고 빽빽한 허들을 가뿐히 넘어섰다. 감사인사의 마지막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수 이승환에게 바치는 ‘성덕’의 면모까지, 여러모로 유쾌한 수상이었다.

<엑시트>에 좋은 음악을 만들어주셨던, 엔딩곡을 사용하게 해주셨던 이승환 가수님의 30주년 데뷔를 이 자리를 빌어 정말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