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2015),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의 폴 페이그 감독과 <왕좌의 게임>의 에밀리아 클라크가 만난 로맨틱 코미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개봉했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2016년 크리스마스에 우리 곁을 떠난 뮤지션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명곡들을 대거 사용해 화제를 모았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Andrew Ridgeley)가 결성한 듀오 왬!(Wham!)부터 마이클의 솔로 작업까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라스트 크리스마스>과 함께 보면 좋을, 조지 마이클의 음악을 사용한 또 다른 영화들을 소개한다.


"I Want Your Sex"

<비버리 힐스 캅 2> (1987)

1987년 북미 흥행 1위에 빛나는 <비버리 힐스 캅 2>는 해롤드 팔터마이어(Harold Faltermeyer)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을 빼곡히 배치하는 전작의 방향을 따라간다. 코리 하트(Corey Hart), 밥 시거(Bob Seger), 제츠(The Jets), 제임스 잉그램(James Ingram) 등의 트랙이 수록돼 차트를 휩쓸었다. 가장 큰 수혜를 누린 건 조지 마이클의 솔로 데뷔 싱글 'I Want Your Sex'다. 대저택에서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기던 엑셀(에디 머피)은 빌(저지 라인홀트), 존(존 애쉬턴)과 함께 스트립쇼가 열리는 바에 도착하는 시점에 쓰였다. 공간의 방탕한 분위기와 마이클의 끈적한 노래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가운데, 엑셀은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며 형사들을 바에 잠입시킨다. 1986년 6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왬!을 해체한 조지 마이클은 '퀸 오브 소울'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의 듀엣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을 내놓으며 솔로 활동에 시동을 걸었고, <비버리 힐스 캅 2> 사운드트랙을 통해 첫 솔로 트랙 'I Want Your Sex'를 발표했다. 발표하자마자 빌보드 싱글차트 2위(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에 밀렸다)를 기록한 이 싱글을 수록한 마이클의 데뷔 앨범 <Faith>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고, 전세계 2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

<쥬랜더> (2001)

시작부터 "지루박!(Jitterbug)"을 읊조리며 시작하는 왬!의 'Wake Me Up Before You Go-Go'는 세상 모든 사람을 흥겹게 만들 수 있는 명곡이다. 가히 흥의 치트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덕분에 <웨딩 싱어>(1998), <미녀 삼총사>(2000), <해피 피트 2>(2011), <싱>(2016) 등 수많은 영화가 '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사용했다. 이 노래를 가장 재미있게 사용한 영화는 뭐니뭐니 해도 벤 스틸러의 '약빤' 코미디 <쥬랜더>가 아닐까? 신인 헨젤(오웬 윌슨)에게 최고의 남자 모델상을 뺏긴 쥬랜더(벤 스틸러)는 모델 친구들과 놀면서 기분을 풀려고 한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틀어놓고 뉴욕 한복판을 달리며 오도방정을 다 떨던 쥬랜더 무리의 민폐는 주유소에서도 계속된다. 주유하고 세차하면서 뮤지컬 영화라도 찍는 것마냥 난리를 치던 와중, 자기 얼굴이 찍힌 잡지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걸 보고 상심하던 쥬랜더는 친구들이 기름을 뿌리고 놀다가 어이없게도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목격한다. 당연히 방도는 없다. 주유소가 폭파하고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 스타벅스 컵!) 친구들은 모두 죽는다.


"Freedom! '90"

<내니 다이어리> (2007)

뉴욕 거리에 조지 마이클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영화가 또 있다. 스칼렛 요한슨의 로맨틱 코미디 <내니 다이어리>다. 갓 대학을 졸업해 본가에 돌아온 애니(스칼렛 요한슨)는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집을 구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뉴욕 상류층의 보모로 들어간다. 엄마와 나름 감동스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바로 화면이 바뀌면 친구 라이넷(앨리샤 키스)의 차를 타고 마이클의 'Freedom! '90'를 따라부르는 애니가 보인다. 라이넷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오픈카에서 춤을 추면서 자유를 만끽한다. 'Freedom! '90'은 <Faith>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마이클이 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에 수록된 트랙이다. 뮤직비디오에 자신이 출연하지 않고 모델들을 대거 출연시키면서 비즈니스로부터 자유로운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노래의 의미를 강조했다. 제목에 '90'이 붙은 이유는 1984년에 발표했던 왬!의 노래 'Freedom'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다.


"Last Christmas"

<케빈에 대하여> (2011)

<케빈에 대하여>는 엄마의 지옥을 지독하게 펼쳐낸 영화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던 에바(틸다 스윈튼)는 갑작스럽게 아이를 갖게 되고, 억지로 케빈을 낳은 뒤 일과 양육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빠듯한 생활을 이어간다. 문제는 어릴 때 엄하게 키웠던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의 반항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진다는 것. 집안 가득 찬송이 흐르던 크리스마스에 자기를 졸졸 따르는 동생한테 저능아냐고 말하고 그 애 머리에 대고 진공청소기를 켜는 짓을 하던 케빈은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다가 걸려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에바를 쏘아보면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맞이한 크리스마스가 호락호락하게 끝날 리가 없다. 시뻘건 원피스를 입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에바는 가만히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한 남자의 대시를 받고 밝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하지만, 그는 "네가 뭔데 그렇게 도도하게 굴어? 누가 너 보면서 침이나 흘릴 것 같아?" 하며 조용히 쏴붙인다. 왬!의 크리스마스 캐롤 'Last Christmas'의 그 찬란한 멜로디와 노랫말을 완전히 진창에 처박아버리는 듯한 쓰임이다.


"Careless Whisper"

<데드풀> (2016)

암 선고를 받은 웨이드(라이언 레이놀즈)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의 데드풀 피규어 밑에 있던 왬!의 앨범 <Make It Big>을 들고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이야!" 라고 말한다. 구태여 그룹 이름을 "왬!"이라고 강조해서 정정하고는 "이 앨범으로 느낌표를 붙일 자격이 생겼지"라고 덧붙인다. 지당한 말씀. 조지 마이클은 시작부터 위대하지 않았다. 왬!이 1983년 발표한 데뷔 앨범 <Fantastic>은 미남 듀오가 내놓은 음악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겨울 발표한 <Make It Big>은 팝의 정수라 부를 만한 명곡들로 가득했다. 'Wake Me Up Before You Go-Go', 'Freedom', 'Everything She Wants', 'Careless Whisper' 같은 걸작이 모두 그 앨범의 수록곡이었다. <Make It Big> 레코드를 가방에 넣은 웨이드는 "다음 생에 자기를 찾아 창밖에서 왬의 노래를 크게 틀게. 왬!!"라 말한다. 그리고 결국 약속을 지킨다. 영화 마지막, 빌런을 모두 물리친 그는 바네사와 키스를 나누다 말고 왬!의 불멸의 러브송 'Careless Whisper'를 틀고 더욱 격렬히 입을 맞춘다.


"Freedom! '90", "Father Figure", "One More Try"

<키아누> (2016)

고양이를 되찾기 위해 갱스터 노릇을 하던 렐(조던 필)과 클라렌스(키건 마이클 키)는 진짜 흑인 갱스터들과 함께 마약을 배달하러 간다. 렐이 주문자의 집으로 들어가고 클라렌스는 혼자 갱들과 뻘쭘하게 차에 앉아 있는데, 일행 중 하나가 대뜸 클라렌스의 휴대폰을 뺏어 음악을 틀자 조지 마이클의 'Freedom! '90'가 나온다. 클라렌스가 조지 마이클이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고 진짜 갱들이 듣는 노래라고 하자, 갱은 "그럼 얘 흑인이야?" 되묻는다. 그리고 클라렌스의 '구라'가 시작된다. 조지 마이클은 피부가 좀 밝은 편인데 리즐리라는 흑인이랑 놀았다가 솔로로 데뷔한 이후에 리즐리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 얘기를 듣고는 갱은 한술 더 떠 "그 새끼 죽인 거야?"라고 묻는다. 클라렌스의 대답, "아무도. 그를. 다시. 본 사람이. 없어." 갱들은 그제서야 살벌한 놈이라며 조지 마이클의 음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렐이 마약을 주문한 애나 패리스(그 배우 맞다!)의 집에서 한바탕 난리를 겪는 사이, 클라렌스와 갱들은 'Father Figure'를 들으며 조지 마이클의 성정체성과 관련한 농을 풀고, 'One More Try'를 들을 때는 다같이 떼창을 하고 있다. 조지 마이클과 왬에 대한 팩트를 경유한 키 앤 필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Father Figure"

<아토믹 블론드> (2017)

데이빗 레이치 감독은 80년대 말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액션영화 <아토믹 블론드>의 음악을 80년대 초반의 것으로 채웠다. 조지 마이클의 'Father Figure'는 예외다. 로레인(샤를리즈 테론)은 경찰이 들이닥치는 걸 예감하고 건물에 'Father Figure'를 최대치로 틀어놓는다. 풍부한 코러스 덕분에 종교적인 느낌마저 드는 발라드가 울리는 가운데, 새하얀 코트의 MI6 요원은 이렇다 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전깃줄 하나로 경찰들을 완전히 작살내버린다. 액션에 느린 템포의 음악을 붙임으로서 그 효과를 극대화 한 현명한 인용. 비단 액션의 쾌감을 살릴 뿐만 아니라, 천하무적의 여성 액션 히로인이 활약하는 모습을 '아버지 상'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수식하는 젠더 전복적인 의도도 재미있다.


"Faith"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야심찬 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70, 80년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를 향한 애정이 만발한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물론 레퍼런스로서 재현되는 영화, 곳곳에 터져나오는 음악까지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80년대에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에 조지 마이클의 음악이 빠질 수가 있겠는가? 이모의 장갑을 가지고 나갔다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 웨이드(타이 쉐리던)는 다음날 아침 할리데이 저널스로 향한다. 조지 마이클의 'Faith'가 함께 해서 그의 걸음걸이가 당차 보인다. 안내원 로봇은 언제나처럼 재수없게 그를 맞이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예감이 뚜렷하다. 그리고 정말 웨이드는 그 날로부터 성큼성큼 커다란 보폭으로 자기의 꿈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