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캣츠>가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졌다. 뮤지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조차 제목이나 넘버 ‘메모리’(Memory)는 익숙할 만큼 1981년 초연부터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 뮤지컬 팬들은 그동안 <캣츠>가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해했는데, 영화가 개봉하면서 ‘할 수 있다’고 잠정적 결론이 내려졌다. 이 포스트에선 영화 <캣츠>의 원작인 뮤지컬 <캣츠>가 어떻게 장수 뮤지컬이 됐는지 알아보겠다.
T. S. 엘리엇의 시
뮤지컬 <캣츠>의 핵심은 원작이 시란 사실이다. T. S.(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음악을 더한 게 뮤지컬 <캣츠>다. T. S. 엘리엇이 누군가. 문학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한 번쯤 들어봤을 시인이다. 그는 194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대표작 <황무지>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구가 유명하다. 그는 ‘시의 음악’이란 단어로 언어의 리듬감을 강조했으며, 스스로의 시에서도 압운을 맞추는 데 탁월한 시인 중 하나였다.
그런 시인의 시가 원작이니, <캣츠>의 리듬감은 여느 뮤지컬들과는 사뭇 달랐다. 음악을 거둬내더라도 가사에 담긴 운율이 탁월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캣츠>의 곡 ‘미스터. 미스토펠리스’(Mr. Mistoffelees)의 일부분을 조금만 살펴보자.(아래 영상의 25초부터)
He is quiet he is small he is black From his ears to the tip of his tail He can creep through the tiniest crack He can walk on the narrowest rail He can pick any card from a pack He is equally cunning with dice He is always deceiving you into believing that he's only hunting for mice |
(그는 조용하고 자그마하며 귀에서 꼬리 끝까지 새까맣지 작디작은 틈새로 기어다닐 수도 있고 좁디좁은 난간 위로 걸어갈 수도 있지 카드둥치에서 원하는 어떤 카드도 집어낼 수 있고 주사위 던지기에도 능란하다네 언제나 눈속임으로 당신을 믿게 만들지 그가 쥐나 쫓아다닌다고 말이야) |
이 짧은 구간에도 압운을 맞춰 리듬감을 유지하고 있다. 뮤지컬 작품의 가사를 쓰는 과정에서 운율은 필수지만, <캣츠>의 그것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시에서 비롯됐다는 것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갖는다. 한편 이런 언어적 특징 때문에 <캣츠>가 영어권 국가에 비해 비영어권 국가에선 인기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캐릭터의 군상극
<캣츠>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려는 관객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질문. “무슨 내용인데?”, 혹은 “주인공이 누군데?”. <캣츠>는 많은 인물로 무대를 채우는 대형 뮤지컬에서도 독보적인 군상극이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중점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과거와 관계를 암시하고, 관객에게 추측하게 하는 방식이다. 원작이 연작 시집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군상극은 <캣츠>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거론된다. 서사를 중요시하는 관객들에게 <캣츠>가 춤과 노래뿐인 뮤지컬이란 혹평을 받는 것도 이 특징 때문. 반대로 다양한 캐릭터와 장면 장면의 화려함으로 관객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캣츠>를 말할 때 그리자벨라를 기억하는 사람, 럼 텀 터거나 멍커스트랩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만큼 <캣츠>가 다양한 특징을 가진 고양이들을 소개하며 무대를 채운다는 증거인 셈.
배우를 지우고 고양이를 세우다
배우의 얼굴을, 연기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뮤지컬을 찾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캣츠>는 조금 다르다. 완전히 고양이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라면 <캣츠>의 무대에 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캣츠>의 배우들은 딱 보기에도 두터운 메이크업과 털 뭉치가 달린 의상 외에도 고양이스러운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별도의 신체 훈련을 한다고 알려졌다. 이런 원칙은 관객들이 품고 있는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지우면서 <캣츠>라는 작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일종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여느 대형 뮤지컬도 그렇지만, 격한 안무가 포함된 넘버들을 소화하는 배우들은 아크로바틱이나 현대 무용 등 신체 움직임을 극대화한 특기 하나 정도는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신체 움직임과 <캣츠> 특유의 고양이 모사가 만나면 그 무용이 더욱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고양이라는 외형은 관객이 가진 ‘배우가 인물을 연기한다’는 이미지를 넘어서게 한다. 다른 인물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를 관객이 만끽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
무대와 관객의 장벽 타파
이쯤에서 작품에 일조한 이의 의견도 들어보자. <캣츠>의 초연을 연출한 트레버 넌은 한 인터뷰에서 <캣츠>의 인기 요인을 “당시의 다른 뮤지컬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무대와 객석이 바로 이어지는 구조라서 둘 간의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 유효했다고. 이 무대와 객석의 교류는 배우을 숨기는 것처럼 관객이 극의 세계를 빠르게 흡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대와 객석의 높이차가 있는 극장에서 진행한 한국 공연도 고양이들을 가깝게 볼 수 있는 좌석을 ‘젤리클 석’이란 이름으로 제공한 바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