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면,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세종대왕. 현대도, 근대도 아닌 조선 초기 왕인데도 여전히 그가 한국인의 자긍심을 대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올곧은 성품, 고유 언어 한글 창제, 내 사람을 아끼되 쓴소리도 마다않는 리더십 등등. ‘구설수’가 아닌 업적으로 영화, 드라마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얼굴을 비추는 세종대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한석규, 송중기
12월 26일 개봉한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캐스팅부터 화제였다. 왜?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으로 열연한 한석규가 다시 세종대왕 역을 맡았기 때문.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선보인 한석규의 세종대왕은 파격적이었다. 성군이라서 대체로 차분하고 현명한 모습으로 그려진 여느 세종대왕과 달리,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욕쟁이에다 성질도 급한 편.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조차 한석규가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욕 뱉은 장면은 알 정도로 독보적인 캐릭터가 됐다. 사실 그의 욕설은 백성들과 정서를 나누려는 의도라서 묘한 감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뿌리깊은 나무> 속 한 명의 세종이 더 있단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세종의 젊은 시절은 송중기가 연기했는데, 왕의 자리에 올랐어도 상왕 태종(백윤식)의 냉혈한 같은 통치를 고통스럽게 느끼는 인물로 그려진다. 성군으로서의 기질은 있었으나 스스로의 부족함 또한 절감했던 것. 마침내 태종에게 맞서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성장통이 있었기에 세종의 캐릭터성이 한석규의 세종에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는 게 정평.
웹툰 <조선왕조실톡>
고기대왕
웹툰 작가 무적핑크가 <조선왕조실록>을 카카오톡 형태로 옮긴 웹툰. 조선 왕조 전체를 다루는 웹툰이나 인지도가 높은 세종대왕으로 첫 화(링크)를 열었다. 이 1화의 내용은 이젠 꽤 유명해진 ‘육식을 즐기는 편식쟁이’ 세종에 관한 것. 실록 곳곳에 세종이 고기를 즐겨먹었으며, 심지어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아버지 태종의 증언까지 남았을 정도. 그의 고기 편식은 실제로 육식을 즐겨서인지, 혹은 체질상 육류를 많이 섭취해야 했던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나 고기를 좋아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세종이 비만이었을 거란 추측도 여기서 비롯됐다.
게임 <문명 5>
자칭 ‘깨우친 임금’
인터넷을 즐긴다 하는 분들은 “~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라는 다소 문어적인 표현을 접해봤을 것이다. 이 문장은 게임 <문명 5>의 세종대왕에게서 비롯됐다. <문명 5>는 각 국가, 민족의 대표 지도자가 원어를 사용하고, 조선의 지도자 세종대왕 또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개발사에서 진행한 더빙은 언어만 한국어지, 특이한 억양이 더해져 이질감을 준다.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지도자로 등장한 세종대왕이 하필 이런 이상한 억양을 사용하니 아이러니한 결과. 사실 그런 이상한 말투 때문에 인터넷에서 유행한 것이니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 참고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던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라는 대사의 간디도 <문명 5>에서 나왔다.
“윤허하지 아니했다”
악덕사장?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유명해진 일화. 황희가 여러 차례 관직을 물러나고자 했으나 세종이 결코 윤허하지 않았고, 황희는 임금이 사망한 후에야 관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황희뿐만 아니라 조말생도 여러 차례 은퇴를 원했으나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고. 세종대왕의 이런 신하 사랑(!)은 비정규직, 최저 임금 등 최근 극심해진 노동환경 문제와 연결되면서 ‘악덕사장’이란 우스꽝스러운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세종대왕 본인이 국가 통치와 학문에 노력을 기울였던 걸 보면 신하들의 사표 반려도 신뢰의 증거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
주지훈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은 으잉? 할 수도 있다. 코미디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주인공이 세종이라고? 맞다. 주지훈이 연기한 충녕은 세종대왕 이도의 세자 시절 이름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이미 완성형 임금 세종이 아니라 장자가 아니라는 흠집을 지고 즉위해야 하는 충녕대군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왕자와 거지’라는 유명한 동화와 코미디 장르 특유의 표현 등 정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언제나 성군으로 그려지는 세종대왕 이도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해준다.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
윤두준
세종대왕에 대한 판타지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다. 다만 이쪽은 좀 더 멋있는 편.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는 조선시대로 타임워프한 고등학생이 세종대왕을 만나는 이야기. 한 줄로 요약하니 어째 교육용 드라마일 것 같지만, 고등학생이 하필 여고생이며 세종대왕도 하필 젊은 시절이란 점이 멜로드라마임을 상기시켜준다. 세종대왕은 기존 작품들보다 더 멋있게 나오는데, 일단 축구를 좋아한다. 역사 속 세종은 책벌레라서 격한 운동조차 즐기지 않았다고. 세종 역을 맡은 윤두준이 촬영 당시 K리그 홍보대사였고 축구를 잘하는 걸 반영한 듯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