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첫 날 개봉한 <디어스킨>은, <아티스트>(2011)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 뒤자르댕과 최근 프랑스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로 손꼽히는 아델 하에넬이 출연한 프랑스 코미디다. <디어스킨>의 감독 캉텡 뒤피외(Quentin Dupieux)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미스터 와조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스터 와조와 함께 영화감독으로 출사표를 내민 뮤지션들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미스터 와조

Mr. Oizo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신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미스터 와조는 뮤지션과 영화감독의 커리어를 가장 활발히 이끌어가고 있는 아티스트라 할 만하다. 1997년 데뷔 EP를 발표하고 수록곡의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연출했으니 시작부터 음악과 영상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셈. 48분짜리 중편 <넌필름>(2001), 첫 장편영화 <스테이크>(2007)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러버>(2010)에서 모든 걸 폭파시킬 수 있는 타이어, <롱>(2012)에서 갑자기 없어진 강아지를 찾으러 떠나는 남자, <리얼리티>(2014)에서 투자 유치를 위해 영화 역사상 최고의 비명소리를 찾아야 하는 영화감독 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련의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 처음 정식 개봉한 뒤피에의 작품인 <디어스킨>(2019)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각본, 촬영, 편집까지 도맡았다. 현재 촬영 중인 신작은 트렁크에서 거대 파리를 발견해 그걸 키워서 돈 벌기로 마음먹는 두 친구의 이야기라고.


밥 딜런

Bob Dylan

1962년 데뷔해 파란만장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밥 딜런은 D.A.페네베이커의 다큐멘터리 <돌아보지 마라>(1967)의 주인공으로서 처음 영화와 연을 맺은 데 이어,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1973)에 배우로 참여했다. 주연을 맡은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된 그는 영화를 위해 희대의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를 포함해 영화음악을 전담했다. 1978년 공개된 <레날도와 클라라>는 밥 딜런이 홀로 감독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에 육박하는 이 작품은 콘서트 푸티지, 다큐멘터리식의 인터뷰, 딜런의 노랫말과 삶을 반영한 픽션이 뒤섞인 문제작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전면에 사용한 영화 <자브리스키 포인트>(1969)의 작가 샘 셰퍼드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당시 아내였던 사라 딜런, 옛 연인인 존 바이즈(Joan Baez), 시인 알렌 긴즈버그(Allen Ginsberg), 조니 미첼(Joni Mitchell)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배우로 참여했다. <레날도와 클라라>에 라이브 클립으로 포함된 1975년 콘서트 투어 영상은 작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마틴 스코세이지의 다큐멘터리 <롤링 썬더 레뷰>로 만날 수 있다.


프린스

Prince

주연과 음악을 맡은 영화 <퍼플 레인>(1984)이 제작비 대비 10배에 달하는 성공을 기록하는 사이, 프린스는 그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노래 'When Doves Cry'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프린스의 첫 영화 연출작 <언더 더 체리 문>(1986)이 발표됐다. 본래 마돈나(Madonna)와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메리 램버트가 감독을 맡기로 돼 있었지만, 그와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한 프린스가 직접 감독 직을 꿰찼다. 그는 당시 신인이었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와 호흡을 맞추며, 형과 함께 부유한 프랑스 여자들을 등처먹던 남자가 21살 생일에 5천만 달러를 상속 받을 여자와 사랑에 빠져 형과 삼각관계에 놓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Parade'라는 음반으로 발매된 사운드트랙은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영화 자체는 상업/비평적으로 실패를 기록했다. 1990년엔 모리스 데이(Morris Day), 더 타임(The Time), 조지 클린튼(George Clinton), 마비스 스테플스(Mavis Staples) 등 평소 친분 있는 뮤지션들을 대거 출연시킨 또 다른 <그래피티 브리지>를 연출했지만 이 작품 또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르자

RZA

래퍼/프로듀서 르자는 처음 영화음악을 맡은 짐 자무쉬의 <고스트 독>(1999)에 짤막하게 얼굴을 비춘 이래 리들리 스콧의 <아메리칸 갱스터>(2007), 주드 애퍼토우의 <퍼니 피플>(2009), 토드 필립스의 <듀 데이트>(2010)에 배우로 활약했다. 소림사에서 큰 영향을 받은 힙합 그룹 우탱 클랜(Wu-Tang Clan)의 수장답게 르자의 첫 연출작은 아시아의 무술을 향한 오마주로 가득찬 액션영화 <철권을 가진 사나이>(2011)였다. 슬래셔 영화 <호스텔>(2005)의 감독 일라이 로스와 시나리오를 쓴 이 작품은 르자가 직접 주연을 맡았고 러셀 크로우, 루시 리우, 데이비드 바티스타 등 나름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다. 2015년 제작된 속편에는 배우/각본으로만 참여한 르자는 아질리아 뱅크스, 질 스캇, 커먼 등이 참여한 <러브 비츠 라임스>(2017)와 테렌스 하워드, 에단 호크, 웨슬리 스나입스 등이 출연한 <컷 스로트 시티>(2019) 등 감독으로 더 활발히 커리어를 쌓고 있다.


랍 좀비

Rob Zombie

랍 좀비는 이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만 한 음반을 백만 장 이상 팔아치울 수 있는 인기를 자랑한다. 그가 만드는 영화 역시 취향은 확고하다. 2003년 개봉한 연출 데뷔작 <살인마 가족> 이후 그의 영화 세계는 한결같이 호러의 자장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살인마 가족>은 책을 쓰기 위해 시골에 온 10대들이 할로윈 기간에 싸이코 가족에게 납치/고문 당하는 이야기로 2005년 <살인마 가족 2>, 2019년 <3 프롬 헬>까지 빌 모슬리, 시드 헤이그, 셰리 문 좀비 트리오가 그대로 출연하는 시리즈로 확장됐다. 랍 좀비의 아내 셰리 문은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에 주연을 맡았다. <살인마 가족> 시리즈를 만드는 사이 랍 좀비는 <할로윈> 시리즈 리부트, <로드 오브 세일럼>(2013), <31>(2016) 등 2년에 한번 꼴로 꾸준히 신작을 발표하면서 앨범보다 영화를 더 자주 내놓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마돈나

Madonna

이 기획에서 소개하는 아티스들이 대부분 뮤지션으로서든 배우로서든 커리어의 정점에서 연출에 도전하게 것에 비하면, 마돈나의 감독 데뷔는 꽤 늦은 편에 속한다. <수잔을 찾아서>(1985), <진실 혹은 대담>(1991), <그들만의 리그>(1992), <에비타>(1996) 등 꾸준히 배우로 활약해왔지만 처음 메가폰을 잡게 된 건 (공교롭게도 가이 리치 감독과 이혼한) 2008년 <타락과 지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마돈나는 제작사 '셈텍스'를 세워 직접 제작까지 맡았다. 룸메이트인 런던의 세 청춘들을 둘러싼 코미디인 <타락과 지혜>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많은 영화에서 끔찍한 배우였던 마돈나는 기어코 끔찍한 감독이 됐다"는 평마저 붙었다. 두 번째 영화 <W.E.>는 201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다. 미국 출신에 이혼 경험이 2번 있다는 이유로 왕실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월리스 심슨과 에드워드 3세의 실제 로맨스를 그려낸 영화였다. 안타깝게도 <W.E.> 역시 실패로 돌아갔고 '감독' 마돈나의 신작은 수년째 나오지 않는 상태다.


아이스 큐브

Ice Cube

전설적인 웨스트코스트 힙합 그룹 N.W.A.에서 가장 먼저 솔로로 데뷔한 아이스 큐브는 음악은 물론 영화계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흑인 문화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걸작 <보이즈 앤 후드>(1991)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CB4>(1993), <프라이데이>(1995), <아나콘다>(1996) 등 흥행작에 출연해 뮤지션보다는 배우로서 더 좋은 성적을 거뒀고, 제작사 '큐브 비전'을 설립해 <프라이데이>를 성공시켜 1998년엔 연출작 <플레이어스 클럽>을 만들었다. 밤에는 스트립 댄서로 일하면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 다이아몬드의 삶을 어둡지만 유쾌함은 잃지 않는 톤으로 그려내 반향을 얻었다. 이 작품 이후 <우리 동네 이발소에 무슨 일이>, <라이드 어롱> 시리즈를 제작/주연을 맡아 크게 성공시켰지만 아직까지 연출은 시도하고 있지 않았다.


스튜어트 머독

Stuart Murdoch

밴드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을 이끌면서 '감성'을 전달하는 데에 독보적인 감각을 선보여온 스튜어트 머독은 2009년 여성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God Help the Girl>을 발표해 호평 받고, 5년 후 동명의 영화 연출작까지 내놓았다. (머독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라 할 만한) 글래스고의 세 남녀가 밴드로 활동하는 이야기. <써커 펀치>(2011)의 에밀리 브라우닝,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한나 머레이, 밴드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의 리더 올리 알렉산더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한 예쁜 청춘영화였다.


데이비드 번

David Byrne

데이비드 번은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솔로 작업을 병행하는 가운데, 조나단 데미가 연출한 콘서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1984)의 무대 디자인과 안무를 담당하고, 'Once in a Lifetime'을 비롯한 토킹 헤즈의 뮤직비디오들을 연출하는 등 뮤지션 역할 너머의 영역에서까지 걸출한 재능을 자랑해왔다. 그리고 1986년, 영화감독으로서 데뷔작 <트루 스토리즈>를 내놓았다. 메이저 영화사인 워너 브러더스를 통해 배급됐지만 <스탑 메이킹 센스>의 큰 성공에 힘입어 창작 하는 데에 상당 부분 자유로웠던 덕분에 흥행에 구애 받지 않는 개성적인 블랙 코미디가 완성될 수 있었다. 번이 직접 연기한 카우보이 모자를 쓴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가상(!)의 공간 텍사스 타운에 사는 인물들을 따라가는 동안 영화 콘셉트에 맞춰 만들어진 토킹 헤즈의 음악이 넘실거린다. 2018년 말, 굴지의 예술영화 블루레이/DVD 업체 '크라이테리언'에서 복원판을 발표해 재평가 받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