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찍한 아역에서
끔찍한 파격까지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어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 <네온데몬>이 개봉했다. 파격적인 포스터 디자인만 보더라도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추측이 가능하다. 한 모델 지망생 소녀가 놀라울 정도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이를 시샘하는 다른 모델들이 그녀를 해코지하는 이야기다. 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니, 역시 소녀의 폭주를 다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캐리>(1976)가 떠오르기도 한다.
<네온데몬>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소녀', 그러니까 이제 막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될 것 같은, 새로운 시작의 문턱에 서서 덜덜 떨고 있는 '제시'라는 주인공을 연기한 엘르 패닝이다.
위 스틸컷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저렇게 죽은 것처럼 분장을 하고 화보 찍는 모습이다. 여주인공의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파괴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엘르 패닝이 연기하는 주인공 제시에게서는 반대로 감히 인간이 파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홀로 아무런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의 온갖 현란한 기교와 장식적인 디자인, 조명이 모두 엘르 패닝의 새하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엘르 패닝이 도대체 어떤 배우기에 저 나이에 영화 전체를 감싸는 은근한 매력을 뿜어내는지 궁금할 것 같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모르는 게 많은 배우, 엘르 패닝에 대해 알아보자.
<섬웨어>와 <슈퍼에이트>의 소녀
1998년생인 엘르 패닝은 공식적으로는 만 3살에 데뷔했지만 실제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첫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섬웨어>(2010)다. 국내에선 개봉을 안해서 어떤 연기를 펼쳤는지 대중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엘르 패닝은 이 영화로 '영 할리우드 어워드'에서 올해의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그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블록버스터 <슈퍼에이트>(2011)에서 '앨리스' 역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녀는 더이상 아역배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여줬다. 이 영화로 그녀는 '새틀라이트 어워드', '스크림 어워드', '틴초이스 어워드', 'MTV 무비 어워드' 등에 후보로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엘르 패닝은 이 영화에서 철없는 십대 소년들이 세상에 막 눈을 뜨고 영화라는 매체에 눈을 뜨게 해주는 여신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연기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뮤즈나 다름없었다. 마치 지금의 그녀의 모습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이 <섬웨어> 출연 전에 길에서 절 마주치면 대부분, '다코타 패닝 아니냐?'고 물어왔어요. 전 그때마다 '아니다, 그녀의 동생이다'라고 답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길에서 저를 보면 '와우, 엘르 패닝 맞지?'라고 말해요.
영화의 배역 설정 때문에 엘르 패닝은 이렇게 귀여운 좀비(?)로 등장하기도 한다. <슈퍼에이트>를 아직 안 본 관객들은 사진만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들이 영화를 찍는데 그녀가 맡은 역할이 좀비로 변하기 때문에 분장을 한 것. 저렇게 가려도 미모가 가려지지 않는 단점을 증명했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사실 엘르 패닝의 연기 경력은 만 3살 때부터 시작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언니인 다코타 패닝의 대표작인 <아이 엠 샘>에서 언니가 맡은 루시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면서 배우에 입문하게 된 것.
이상하게도 그녀는 이후 다른 영화 배역에서도 유독 언니랑 엮이는 역할이 많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TV시리즈 <테이큰>(2002)에서 다코타 패닝의 아역을 연기한 것을 계기로 <이웃집 토토로> 영문 더빙판에서 언니와 함께 자매 역할(엘르 패닝은 동생 메이)로 목소리 출연했고, 역시 언니가 출연했던 <샬롯의 거미줄>에서는 언니가 연기한 캐릭터의 미래의 손녀로 등장했다. 하지만 본편에서는 삭제됐다.
엘르 패닝의 어린 시절 출연작만 한정해서 보면 언니보다 확실히 시선을 강하게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그녀가 언니를 따라잡아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연기 생활을 독하게 밀어붙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언니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면서 배우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맞지만, 언니인 다코타 패닝이 <아이 엠 샘>, <맨 온 파이어> 등의 굵직한 영화에서 확실하게 눈도장 찍을 때 그녀는 묵묵하게 뒤에서 제 갈 길을 갔다.
그 결실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섬웨어> 출연을 전후로 갑자기 언니보다 키가 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겉모습이나 눈빛이 언니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갖게 된 것. 그게 결국 배우로서 자기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계기로 이어진 듯 하다. 그 시작은 어쨌든 <슈퍼에이트>에서부터였다.
스포츠계 혈통
엘르 패닝의 엄마는 프로 테니스 선수 헤더 조이, 아빠는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 외할아버지는 풋볼 선수 릭 애링턴. 이모는 ESPN 리포터 질 애링턴. 그리고 엘르 패닝은 다코타 패닝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녀는 아일랜드, 독일, 영국, 프랑스 혈통이 섞여 있고 가족들은 미국의 보수 개신교 연맹인 남침례회 소속이라고 전해진다. 가족들이 모두 스포츠 계열이다 보니 패닝 자매 역시 그 피를 이어받은 것 같다.
엘르 패닝은 연기 외에 노래도 잘한다고 알려졌는데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몸을 쓰는 것이 타고난 배우이며, 더 많은 영화에서 그녀의 몸 연기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예컨대 슈퍼히어로 시리즈 같은 영화에서 그녀의 슈트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상상은 잠시 후에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엘르 패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건 역시 패션이다. 십대 스타답게 온갖 패션지 화보를 점령 중이다. 여기서 그녀의 취향을 조금 엿볼 수도 있는데 그녀는 빈티지, 특히 1960-70년대 스타일의 옷을 선호하고 옷장에는 1950년대 스타일의 옷도 많다. 신발은 부츠를 즐겨 신고 바비 인형 드레스 갈아입히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입는 스키니진을 입는 걸 싫어한다. 때문에 치마를 훨씬 즐겨 입는다고. 이런 옷 취향만 보더라도 엘르 패닝이 얼마나 여성스러운 것을 선호하는지가 느껴지는데 특이한 건 '너드' 안경 수집도 좋아한다는 거다.
음식은 연어를 특히 좋아하고 축구를 즐기며, 발레와 피아노가 특기다. 미드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너무 좋아한다고. 영화를 볼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자신의 이름이 나올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언니인 배우 다코타 패닝이다.
과연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도
그녀를 보게 될까?
엘르 패닝이 슈퍼히어로 영화에 출연한다면? 그렇다. 그녀가 마블과 DC 중 어느 쪽이 더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상상해보건대 그녀는 <엑스맨> 시리즈의 진 그레이 역할이 어울릴 것 같다. 그녀와 진 그레이를 아는 이들이라면 이 만남이 얼마나 멋질지 상상해볼 수 있을 것. (로그는 이미 안나 파퀸이 아무도 넘보지 못하게 꽉 쥐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또 있었나 보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제작진 중 누군가가 엘르 패닝을 모델로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아트웍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영화 제작 초기 때 엘르 패닝 캐스팅이 논의됐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소피 터너로 결정됐다고. 아쉽다. 우리는 엘르 패닝이 코스튬을 입고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볼 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캐릭터 세계관을 확장 중인 마블로서는 엘르 패닝은 섭외 영순위 배우일 것이다.
앞으로 만나 게 될 그녀의 또 다른 배역은 어떤 게 있을까? IMDB에 따르면 그녀의 예정된 차기작은 벤 애플렉 감독의 <리브 바이 나이트>, 돈 시겔의 <매혹당한 사람들> 리메이크작, 로건 레먼과 함께 출연하는 <시드니 홀>,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신작 <How to Talk to Girls at Parties> 등이다. 또 프랑켄슈타인 원작자 메리 셀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어 스톰 인 더 스타즈>에서 주인공 메리 셀리를 연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그녀의 영화를 몽땅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