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즈가 돌아왔다. 지난 시즌, 트레일러 공개 직후부터 로빈(딕 그레이슨)의 캐릭터 붕괴라는 이야기, 비주얼, 흑인으로 돌변한 스타파이어까지 잡음이 많았던 데 비해 2시즌 트레일러는 더 많은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디테일하게 다룰 것으로 보여 기대를 모았던 바 있는데.
국내 기준 넷플릭스를 통해 이달 초 공개된 <DC 타이탄>(TITANS) 시즌 2는 최근 시즌 3까지 제작이 확정되면서 DC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인 DC 유니버스의 유일한 독점 콘텐츠로서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여전히 호불호는 좀 갈리는 편이지만, 영화보다 드라마 더 잘 만든다는 DC의 저력은 시즌 2에서 더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전히 단점들은 보이고 있지만 단언컨대, 1보다 2가 낫다. 3은 더 낫기를 바라며 타이탄즈 얘기를 좀 해 보도록 하자.
- DC 타이탄(TITANS) 1시즌의 내용과, 2시즌의 스포일러 다소 포함하고 있다.
1)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전편은 솔직히 좀 중구난방인 느낌이 있었다. 타이탄즈가 히어로 팀인 만큼, 거기에 배트맨의 가장 대표적인 사이드킥인 로빈(딕 그레이슨)이 등장하는 만큼 설명해야 할 이야기는 차고 넘치게 많다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도브나 호프, 레이븐, 비스트보이, 스타파이어 등(물론 비스트보이의 분량은...) 캐릭터 자체의 근원에 대해서 풀어야 할 얘기가 많았다는 뜻이다.
물론 시즌 1에서는 레이븐의 아버지인 트라이곤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레이븐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딕 그레이슨이 로빈의 이름을 버리고 새롭게 각성하는 자아찾기 여행(...)이 스토리의 주된 축이었던 탓에 여타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은 그다지 포함될 수 없었던 것도 있다. 덕분에 타이탄즈의 여러 캐릭터들 중에서도 부각되는 캐릭터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쉬움은 시즌 2에서 보다 더 폭넓게 해소된다.
먼저 후반부에 잠깐 등장했는데도 매력어필에 성공한 도나(원더걸)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녀가 가진 고뇌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풀리고, 호크와 도브의 외줄타기 같은 연애 스토리도 좀 더 디테일하게 풀린다. 거기에 전 시즌이 레이븐 위주였던 데 반해 이제는 타이탄즈라는 팀 전체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졌다. 1시즌에서 좀 정신 없었을지라도, 설명이 대충 마무리되었으니 현재의 관계에 대해 더 풀어나갈 수 있는 셈이다.
2) 비주얼 개선
시즌 1의 아쉬움 토로(링크)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으로 들었던 게 스타일링이었다. 이건 뭐 텔레토비도 아니고, 총천연색 거기다 원색을 사용한 배우들의 스타일링에다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스타파이어의 블링블링한....비주얼은 필자뿐만 아니라 전세계 DC 팬덤에게 그다지 호평을 못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런 지적을 반영한 것인지 타이탄즈 멤버들의 스타일링이 대부분 개선되었다. 물론 브렌튼 스웨이츠(로빈: 딕 그레이슨 역)의 경우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가장 개성적이었던 그녀 스타파이어가 드디어 머리를 펴고 좀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나치게 번쩍였던 의상도 많이 정리되었고, 스타일리스트가 원했던 것이 개성적이면서도 외계행성 출신 티가 많이 나는 우주적 디자인이었다면... 처음부터 좀 이렇게 하지 그랬어? 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비중이 꽤 있는 편인 도브의 코스튬은 아직 좀 개선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너무 비둘기 그 자체인 것이었다), 새로 등장하는 히어로 캐릭터와 더불어 메인 빌런인 데스스트록의 비주얼 역시 촌스럽지 않고 원작이 잘 반영된 기깔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개선은 확실히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캐릭터 비주얼 때문에 시선을 강탈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3) '데스스트록' 슬레이드 윌슨, 그리고 구 타이탄과 신 타이탄
<저스티스 리그>의 쿠키영상에서 모습을 보인 바 있는 바로 그 저명한 빌런, 데스스트록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해 활약을 펼친다. 이외에도 슈퍼맨의 아치 에너미로 잘 알려져 있는 렉스 루터도 모습을 보이며, 닥터 라이트도 길게는 아니지만 등장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빌런들도 다채로운 액션신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데스스트록의 경우 DC 드라마 한정으로는 잘나가는 옆동네(...)인 CW버스(구 애로우버스) 쪽에서 높은 비중을 꿰어차는 데 성공하며 빌런으로 활약한 바 있는데, 인기순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CW버스에서는 인기몰이를 하는 데 성공했던 빌런 캐릭터였다. 물론 <애로우>가 장기방영 하는 동안 캐릭터 근원과 설명이 잘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왜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강렬한 근거가 제시되어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할 듯하다.
어쨌든 <애로우>에서 획득한 인기와 지명도를 발판으로 빌런 솔로무비 제작도 지금의 DC에선 가장 가능성 있는 캐릭터 데스스트록이 <DC 타이탄> 2시즌에서도 등장한다. 자식들에게도 인륜 따위 없는 천하제일 나쁜놈인데, 로빈(딕 그레이슨)이 타이탄즈를 재결성하고 새로운 타이탄즈의 리더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복귀하여 구 타이탄즈는 물론이고 새로운 타이탄즈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4) 여전히 마지막화가 좀 문제이긴 하다
사견이긴 하지만... <DC 타이탄> 1시즌을 보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마지막화는 그냥 빼는 게 낫지 않겠냐고... 어찌저찌 해결된 것 같더니 다시 주인공 이하 등장인물들을 구렁텅이에 처넣어 놓고 시즌을 끝내 버리는 이 악독함 때문이었다. 2시즌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마지막화가 발암요소로 가득 차 있어 화딱지가 나는 게 사실.
모 통신의 정보에 의하면 DC 타이탄 1시즌은 원래 1화 더 편성되어야 했으나 '어른의 사정'에 의해 한 화 잘린 상태로 방영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잘렸던 1화가 2시즌에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새 모습 새 마음으로 2시즌을 맞이한 분들이라면 뭔가 다 마무리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그럽게 받아들이자. 2시즌 1화는 1시즌 마지막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2시즌의 경우에는... 타이탄즈 꼬맹이들의 양엄마 역할이자 레이븐의 상담의로서 따숩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왔던 우리의 공주님, 스타파이어가 갑자기 가정사 문제로 제기능을 못 하는 상황에 치닫는 바람에 데스스트록 대전에서도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 거기에 블랙파이어(스타파이어: 코리의 자매)가 다음 시즌 빌런이라는 것을 강렬하게 스포일러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이래저래 찝찝한 기분으로 끝난다(이거 완전 슈퍼내추럴). 아마 제작 확정된 3시즌 1화에서 죽을 듯..
5) 사이드킥의 반란
배트맨과 원더우먼, 슈퍼맨, 아쿠아맨 등 DC의 메인 히어로 팀인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사이드킥'들이 주인 <DC 타이탄>은, 비슷한 사이드킥 팀업을 다룬 <레전드 오브 투모로우>에 비해서는 보다 인지도 있고 인기있는 캐릭터들로 구성한 팀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사이드킥으로 시작한 자신의 이력과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고민하고 있으며, 이런 고민은 타이탄즈라는 팀, 그들에겐 어쩌면 가족과도 같은 공동체 속에서 차츰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떤 히어로물이건, 근래의 히어로(혹은 빌런도) 무비와 콘텐츠들은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메타휴먼 혹은 데미갓(혹은 진짜 신)들에게도 누구보다 인간적인 고뇌가 있으며, 이런 고민을 통해 보다 강해지는 과정을 그린다. 단편적으로는 너무나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고, 이런 면모들은 독자와 대중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드킥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공감대 형성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주인공이 아닌 삶, 누군가의 들러리(넷플릭스 자막은 사이드킥을 들러리로 번역했다)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답은 그들 자신이 찾아야겠지만.
6) 보다 넓은 세계로
그리하여 타이탄즈는 시즌 2에 이르러 진정 DC 히어로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할 수 있겠다. 시즌 1이 숨길 수 없는 저예산의 향기와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면, 시즌 2에서는 드디어 브루스 웨인(조금...늙은...브루스...)도 등장하고, 렉스 루터와 슈퍼맨, 아쿠아래드 등 DC 코믹스의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팬이라면 누구보다 익숙할 듯한 다양한 캐릭터가 활약을 펼치기 때문이다.
CW 버스 계열의 드라마들이 전세계 DC 팬들의 환호를 얻고 있고, 최근에는 대규모 크로스오버 프로젝트인 ‘인피니티 크라이시스’로 별도의 드라마들이 동일한 사건을 다루며 마치 코믹스의 빅 이슈에 따르는 캐릭터 개인 이슈를 다루는 것 같은 멋진 이벤트를 보여준 바 있다. 워너브라더스가 DC유니버스의 독점 콘텐츠인 <DC 타이탄>을 통해 궁극적으로 그리는 그림은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저스티스 리그> 이하 DC 확장 유니버스가 영화계에서 이뤄내지 못한 세계관 연계와 팀업 이벤트를 CW버스에서 대신 이룬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대규모 이벤트를 가능하게 하는 건 시리즈 각개의 완성도와 더불어, 관객을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하는 '재미있음'이다.
사실 저예산이어도,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가 나오더라도, 콘텐츠 자체가 재미있으면 관객은 외면하지 않는다. 재미있으면 무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DC 타이탄>의 시작이 조금 미약했을지는 모르나, 시즌 2에서 이뤄낸 장족의 발전(물론 마지막화는 예외)을 토대로 보다 넓은 세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벤트들을 드라마에서나마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간절히 바라본다.
희재 / PNN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