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돌아간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영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시간여행 소재 영화 <빽 투더 퓨처> 시리즈는 영화 제목부터 시간여행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들린다. 듣기엔 시제가 뒤엉킨 이상한 말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남자가 그 과거 시점에서 "나 미래로 돌아가야 해"라고 외치는 이야기라는 뜻 아닌가.

'2015년 10월 21일'은 이 시리즈 팬들에게는 상징적인 날이다. 주인공들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실제 저 날짜로 떠나는 설정이 등장했기 때문. 그래서 작년 10월 21일에는 세계적으로 시리즈 관련 이벤트가 열렸다. 영화에서는 미래의 설정으로 상상해서 그려졌던 여러 요소가 실제 2015년에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튼 이 시리즈는 영화적 재미와 더불어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해준 영화다. 요즘 관객들은 체감하기 쉽지 않겠지만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영화가 여전히 사랑받으며 장르의, 나아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사례는 흔치 않다. 흥행과 명성, 모든 것을 얻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나눠보자.


2015년 10월 21일
빽 투더 퓨처 데이로 알려진 2015년 10월 21일 알림판. (출처: 위키피디아)
타임머신 '드로이안' 시간 조작 기판 모습.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총 3편으로 이뤄진 <빽 투더 퓨처> 시리즈는 애초 3편이나 만들 기획은 아니었다. 1편을 만들고 초대박 흥행 성공을 이끌자 연출을 맡았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각본가 밥 게일은 다시 합심해서 부랴부랴 3편 기획을 완성했다.

모든 이야기는 1985년에서부터 30년 전의 과거와 30년 후의 미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3편은 앞선 두 편의 이야기 굴레에서 조금 벗어나 100년 전 서부 시대로 떠난다. 흔히 시리즈의 상징처럼 미래를 다룬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3편도 서부극 장르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언급하는 장면 등 은근한 재미가 있다. 서부 시대로 되돌아간 브라운 박사의 캐릭터는 영화 〈밀리언 웨이즈〉에서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은 타임머신을 개발한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와 그의 제자이자 동네 친구인 고교생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다. 두 사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들 때문에 꼬여버린 시간의 흐름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간여행이라는 다소 유치한 소재를 다룬 SF 어드벤처 영화지만, 거창하게 지구의 운명을 다루거나 혹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기보다는 그저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려놓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엄마가 아들과 키스하는 이야기?

처음 <빽 투더 퓨처> 시리즈를 기획한 건 각본가 밥 게일이었는데 그가 아버지의 졸업앨범을 보다가 아버지가 당시 학생회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니, 나 학교 다닐 때 학생회장은 정말 재수 없는 애였는데, 혹시 아버지랑 같은 나이에 학교를 다녔다면 우리 아버지를 내가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 상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거기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엄마가 과거로 돌아간 아들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을 더했다. 그건 근친상간일 수도 있는, 당시로서도 파격적인 설정이었지만 그는 하나의 묘책을 냈다. 엄마가 아들과 입을 맞추는 순간, "마치 남동생이랑 뽀뽀하는 기분이야"라는 대사를 씀으로써 시간을 거슬러 모자지간 관계를 알게 해주는 운명론적 만남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물론 각본을 쓸 당시에는 대단히 뿌듯해했지만, 여러 영화사에서 이 대목 때문에 제작을 꺼렸다고 한다. 디즈니에서도 거부했다고. 유일하게 이 기획을 인정해 준 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국내에서도 이 설정 때문에 <빽 투더 퓨처>가 북미에서 놀라운 흥행을 거뒀음에도 당시 개봉을 못하다가 한참 뒤에 개봉했다.)


역대급 콤비 케미
30년 전의 마이클 J. 폭스와 크리스포터 로이드
마이클 J. 폭스와 크리스포터 로이드의 최근 모습. 일부러 영화 장면과 똑같이 연출했다.

록 음악과 스케이트보드, 여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교생 맥플라이를 연기했던 마이클 J 폭스는 당시 TV 드라마에서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스물셋 신인이었다.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비롯해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도 풋풋한 젊은 혈기와 유머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던 중에 마침 마이클 J. 폭스를 찾게 된 것이다.

이미 다른 배우를 캐스팅해서 촬영에 돌입한 지 6주나 지났는데 전부 뒤엎고 그를 다시 캐스팅해 재촬영했을 정도면 마이클 J. 폭스에 대한 제작진의 신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새삼 알 수 있다. 당시 제작자로 참여했던 캐슬린 케네디에 의하면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침대 달린 웨건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드라마 촬영장에서 배우를 태우고 이동하는 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배우 스케줄에 모든 걸 맞추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브라운 박사에 캐스팅된 다음에 자신의 비주얼 이미지를 아인슈타인 박사와 지휘자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모습을 합친 얼굴형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스타일을 그에 맞춘 것이라고.


틴에이저의 탄생

브라운 박사와 맥플라이, 두 사람이 하필 왜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살던 1955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유도 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그 시대가 '틴에이저'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십대들이 방송 때문에 힘이 생기고 그에 걸맞은 경제력이 생겨서 산업이라는 게 생겨나던 시기였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로큰롤 좋아하던 맥플라이가 사람들 앞에서 과거에는 생소했을 록 음악을 연주해서 들려준다는 설정도 넣은 것이다. 젊음의 태동을 영화의 설정에 집어넣음으로써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역시 성공하는 영화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미래를 예견하다
<빽 투더 퓨처2>
끈이 저절로 묶이는 자동(Self lacing) 농구화
날으는 호버보드
극장의 3D 홀로그램 간판
구글 글라스 혹은 VR 디바이스
드론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
전기 자동차 충전하는 미래 주유소
핵융합 에너지를 이용한, 미스터 퓨전 홈 에너지 원자로

종종 과학자들은 영화적 상상력이 미래를 바꾸는 데 일조한다고 이야기한다. 딱딱한 학문적 접근보다는 아이디어 넘치는 상상력이 오히려 미래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리라. 그런 면에서 <빽 투더 퓨처> 시리즈가 재미 삼아 그렸던 미래 묘사는 정말 흥미롭다. 당시로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의 모습 외에도 막연하게 가능할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설정들, 예를 들면 날으는 보드나 끈이 자동으로 묶이는 신발 같은 것들은 실제로 이 영화 때문에 개발되기도 했다. 구글 글라스나 가상현실(VR)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도 눈에 띄고, 특히 드론을 이용한 무인 촬영 시스템 등을 미리 내다본 것도 대단하다.


냉장고에서 자동차로

원래 이 영화의 타임머신은 처음엔 일종의 냉장고처럼 생긴 '타임 체임버'로 기획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탱크처럼 캐터필러를 가진 차량으로 생각했다가 최종적으로는 지금의 '드로리안' 형태로 디자인된 것. 그 이유는 밥 게일이 직접 썼던 각본에서 타임머신을 처음 본 1950년대 과거의 사람들이 "날개 없는 비행기같아"라고 말했던 이미지에서 착안한 결과였다. 그 결과,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엑토원과 더불어 영화 역사상 매력 순위 탑3 안에 들 정도로 손꼽히는 자동차가 탄생했다.  


PPL의 레전드, 펩시

<빽 투더 퓨처2>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시대 변화를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제품으로 펩시 콜라를 이용해서 묘사한다. 미래의 맥플라이가 콜라 한 잔을 시켜 놓고 50달러를 지불하는데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위해 코카콜라와 펩시 모두를 염두에 두고 고민을 했는데 코카콜라 대신 펩시가 발탁된 이유는 펩시가 극중 시대 배경인 1955년과 1985년 사이에 실제 로고 디자인을 변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 덕분에 마이클 J. 폭스는 펩시 광고 모델에 발탁되기도 했다.

펩시는 <빽 투더 퓨처>의 PPL 대성공 이후, <28일 후>(2003), (2013)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등 장르 영화에 주로 PPL을 했다. 펩시가 PPL을 했던 영화의 장르만 보더라도 광고 타깃층이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있다. 전통의 코카콜라, 개성의 펩시라는 이미지 차별화는 바로 이런 PPL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그 포문을 <빽 투더 퓨처> 시리즈가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포스터의 레전드

영화 포스터는 당연하게도 해당 영화의 얼굴이다. 시리즈 포스터는 시리즈라는 걸 잘 보여줘야 하는데 <빽 투더 퓨처> 시리즈 포스터는 역대 어떤 시리즈 포스터보다 가장 시리즈다운 면모를 자랑한다. <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작업했던 영화 포스터계의 거장 드류 스트라잔의 작품인데 그에 따르면 당시로서도 이례적으로 포스터 제작을 위해 직접 배우를 섭외해 포즈 모델을 취하고 촬영까지 한 사례라고. 지금이야 으레 영화 포스터 촬영을 스튜디오에서 별도로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1편은 작가가 마이클 J. 폭스를 직접 그린 것이고 2편, 3편은 모두 배우를 섭외해서 촬영한 컷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드류 스트라잔은 나중에 이런 버전의 포스터도 만들었다.


그때 그 배우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30년 전 영화 속 제니퍼와 맥플라이
2015년의 현실 속 마이클 J. 폭스와 클라우디아 웰스

마이클 J. 폭스는 <빽 투더 퓨처> 시리즈를 끝내고 90년대 초반부터 파킨슨병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힘들게 병과 싸워 이겨내고 있으며 2000년에는 ‘파킨슨병 연구를 위한 마이클 J. 폭스 재단’을 설립했다. 크리스포터 로이드는 이 시리즈 이후 <아담스 패밀리>의 페스터 삼촌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인상적인 배역을 맡지 못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아주 훌륭한 각본이 만들어진다면 속편에 출연할 의사도 내비친 바 있다. 만약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브라운 박사를 어느 누가 대신 연기할 수 있겠는가.

1편에서 맥플라이의 연인 제니퍼를 연기했던 클라우디아 웰스는 그 뒤로 어머니의 간병 생활 때문에 안타깝게 배우 생활을 은퇴해야 했다. 작년 시리즈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했던 그녀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에
길따윈 필요없어

"우리가 가는 곳에 길따윈 필요없어"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브라운 박사의 대사다. 드로이안이 길로 가지 않고 허공으로 날으면서 그가 내뱉는 이 대사가 시간여행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의 주제, 그리고 넘치는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던 젊은 신인 감독과 각본가의 패기, 이 모든 성공을 내다보고 팍팍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스티븐 스필버그 등 당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화를 보고 감동받은 관객들 모두가 가슴 깊이 새긴 한 마디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이 시리즈와 관련된 또 다른 영화가 제작될 가능성은 없을까? 일단 속편 제작 권리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밥 게일에게 있다. 두 사람은 모 인터뷰에서 본인들이 살아 생전에는 리메이크나 리부트 작업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당분간 미래로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자기 미래는 자기가 만들어가는 거야"라는 영화 속 대사의 의미는 유효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