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 악당을 사랑하다니. 악당은 물리쳐야 하는 존재이거늘.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하기는커녕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가 사랑하는 악당 베스트10’을 소개합니다. 선정 기준은? 씨네플레이에서 개발한 신개념 시스템인 ‘에디터 마음대로’ 입니다. 순위에 빠진 것 같은, 내가 사랑하는 악당은 댓글에 분명히 있을 겁니다. 네티즌의 힘은 위대합니다.

10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윈터 솔져/버키 반즈
태어날 때부터 악당은 거의 없습니다. 날 때부터 악마인 존재는 간혹 있습니다. <곡성>의 ‘악쿠마’라든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윈터 솔져, 정확하게 말해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는 결코 미워하기 힘든 악당입니다. 우리는 버키가 하이드라의 피해자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버키는 친구였던 스티브(크리스 에반스)를 죽이려 합니다. 그런 버키를 보면 볼수록 그저 짠할 뿐입니다. 올해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봐도 버키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버키는 까방권을 획득한 악당이랄까요. 제발 우리 버키 좀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9위 <혹성탈출> 시리즈 시저
악당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악당의 고뇌에 우리처럼 착한 관객이 공감하게 될 때입니다. 리부트 <혹성탈출> 시리즈의 유인원 시저(앤디 서키스)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탐욕스러운 인간 때문에 인간을 등지는 악당이 됩니다. 말하자면 시저의 반란에는 명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악당으로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네요. 심지어 리부트 2편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는 인간과의 전쟁을 중재하기도 합니다. 결국엔 시저 역시 인간과 맞서겠지만요. 악당이라 써놓긴 했지만 어쩐지 응원하게 되는 시저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인간들을 싹 쓸어버려라!

8위 <엑스맨> 시리즈 매그니토
여기 고뇌하는 악당이 또 있습니다. 리부트 이전 <엑스맨> 시리즈에서 매그니토(이안 맥켈런)는 엑스맨의 반대편에 있는 그냥 악당인 줄 알았습니다. 뭔가 이상해보이는 헬멧을 보면서 마블 코믹스와 담쌓고 살았던 에디터는 ‘저 할아버지는 악당이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리부트 <엑스맨>의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밴더)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에릭(자연스레 본명을 부르게 됩니다)이 어떤 이유로 매그니토가 되는지 봤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악당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도 인간이 문제였죠. 왜 뮤턴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걸까요. 마이클 패스밴더의 섹시한 외모, 목소리도 에릭을 사랑하게 만든 요소였죠.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만 보이던 헬멧도 멋져 보이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솔직히 찰스(제임스 맥어보이)보다 더 사랑합니다. 능력도 더 좋아 보이고, 대머리도 되지 않으니까요.

7위 <나 홀로 집에> 해리와 마브
캬! 이분들 진짜 오랜만입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만났었는데 요즘엔 TV에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나 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도둑 콤비 해리(조 페시)와 마브(다니엘 스턴)는 악당 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떻게 저 쪼그만 케빈(맥컬리 컬킨)한테 당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악당이지만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는 걸 보니 두 도둑들에 연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2편 <나 홀로 집에2: 뉴욕을 헤매다>에서 케빈한테 또 당합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크리스마스 때마다 사골 우려내듯이 보고 또 볼 수 있었을까요.

6위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사빈 모로
에디터 개인 취향을 100퍼센트 반영한다면 사빈 모로를 1위에 올려야 합니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첫 장면에 등장한 사빈 모로, 사실은 레아 세이두를 보고 그냥 반하고 말았거든요. 무표정한 그녀의 표정으로 IMF 요원을 죽여버리는 이 장면을 보고 에디터의 심장도 멎을 뻔 했습니다. 아무리 악당이라도 이렇게 예쁘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 맞죠? <007 스펙터>에 나온 레아 세이두를 봐도 사빈 모로의 그 시크한 표정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5위 <군도: 민란의 시대> 조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군도: 민란의 시대>의 조윤(강동원)에 해당하는 말 맞죠? 잘생김에는 죄가 없습니다. 윤종빈 감독은 대놓고 조윤을 향해 카메라를 클로즈업 합니다. 조윤의 상투가 잘려서 머리칼이 풀어헤쳐질 때, 악당을 악당이라 부르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실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악당 비주얼은 도치(하정우)가 맡고 있습니다. 비록 도치가 조윤의 악행에 의한 피해자이기 하지만요. 결국 <군도: 민란의 시대>는 악당과 선인(善人)의 비주얼을 도치시키면서 고정관념을 깬 파격적인 영화였습니다.

4위 <토르> 시리즈 로키
악당들은 성격이 뒤틀려 있습니다. 그런 성격에는 다 사연이 있는 법입니다. <토르> 시리즈의 로키(톰 히들스턴) 역시 그런 경우입니다. 알고 보니 입양아였던 겁니다.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안소니 홉킨스)은 다른 종족인 로키를 아들로 키웠습니다. 왕위는 친아들인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넘기려고 합니다. 토르가 친아들이라서 그런 건 아닌데 로키는 그만 삐뚤어져버렸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모양입니다. 모든 입양아가 다 그런 건 아닐 텐데 이 질투와 욕망 덩어리 악당 로키는 이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어벤져스>에서 형인 토르는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에게 “(로키는) 입양됐다”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로키는 사랑스럽습니다. 수많은 이의 목숨을 빼앗는 어마어마한 말썽을 일으키긴 하지만 어쩐지 귀엽습니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해서 그런가, 중2병 환자 같아서 그런가.

3위 <수어사이드 스쿼드> 할리퀸
악당들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어떤 악당이 가장 매력적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뭘까요? 에디터의 경우에는 음… 미모였습니다. 아닙니다. 미친 정도였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자레드 레토)도 그럭저럭 정신 나간 연기를 잘 선보여서 매력이 넘치지만 할리퀸(마고 로비)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난 뒤 염불 외듯 “할리퀸, 할리퀸”을 얘기합니다. 에디터는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리뷰 가운데 “(할리퀸이 핥는) 쇠창살을 부러워할 줄 몰랐다”는 글이 문득 떠오르는군요. 앗, 이건 미모 이야기군요. 물론 마고 로비라서 더 사랑스러운 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할리퀸, 나에게 ‘푸딩’이라고 한번만 불러줄래?

2위 <스타워즈> 시리즈 다스 베이더
이 포스팅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 덕분에 시작됐습니다. 12월 개봉 예정인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예고편을 보다가 다스 베이더가 등장하는 짧은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더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에디터는 깨닫게 됐습니다. ‘아, 나는 저 시커먼 아저씨를 사랑하고 있구나. 다스 베이더가 빠진 <스타워즈> 시리즈를 무슨 재미로 보냔 말이냐!’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오늘 퇴근할 때는 존 윌리엄스 옹이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B플랫단조 3악장>, 구스타브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의 첫 곡을 참고하여 작곡한 <임페리얼 마치>를 들어야겠습니다. 빰빰빰~ 빰빠빰~ 빰빠빰~♪

1위 <다크나이트> 조커
에디터는 1위를 차지한 조커(히스 레저)에 이견을 다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다크나이트>는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의 영화도,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의 영화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도 아닙니다. 조커의 영화입니다.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의 갑작스런 죽음도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잊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아, 이 미친놈이 저는 왜 좋을까요. 문득 <브로크백 마운틴>의 마지막 장면까지 떠올랐습니다.


악당인지 선인인지 헷갈려서 순위에서 제외한 악당들

<내부자들> 안상구
<내부자들>의 안상구(이병헌)는 악당이었다가 선인 비슷하게 변합니다. 말하자면 ‘조폭 출신 착한 놈’이죠. 이 잘생긴 남자를 과연 악당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선인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이건 뭐, ‘몰디브에서 모히토’냐, ‘모히토에서 몰디브’냐 정도의 엄청난 고민입니다. 결국 순위에서 빼버렸습니다.

<신세계> 이자성
악당에서 선인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선인에서 점점 악당이 되어가는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은 말하자면 ‘경찰 출신 조폭’입니다. 이자성은 수트발이 너무 좋아서 그냥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제 주변의 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정청(황정민)을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 암튼 문제는 이자성이 악당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는 거죠. 그래서 순위 밖으로 나가자, 브라더~.



캐릭터를 결코 사랑할 수 없어서 순위에서 제외한 악당들

<베테랑> 조태오
조태오를 연기한 유아인의 매력은 철철 넘칩니다. 그럼에도 순위에 없는 건 조태오를 보면 자꾸만 뉴스에 오르내리는 재벌가의 실존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다시 말해 <베테랑> 속 조태오는 좋아할 만한 구석이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이가 없게’도 순위 외 악당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만큼 유아인이 연기를 잘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비스티 보이즈> 재현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하정우)은 악당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른 그냥 나쁜 놈 혹은 양X치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재밌긴 합니다. 혀에 니스칠을 했나봅니다. 재현의 매력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재현은 진상 덩어리입니다. 진상 중에 악질 진상인 여자 등쳐먹는 놈입니다. 에라이~! 이 나쁜 놈아. 현실의 정우형은 사랑합니다.

<부산행> 용석
하아~. 이분 얼굴 보니까 혈압 올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부산행>의 용석(김의성)은 너무나 재수가 없어서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SNS 하시는 거 보니까 현실에선 괜찮은 아저씨인 배우 김의성도 스크린 속에서는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쩜 저렇게 야비한 표정을 잘 연기하는지.

<곡성>의 외지인
여기 끝판왕이 있습니다. 이런 악당을 이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아, 악당이 아니죠, ‘악쿠마’입니다. <곡성>의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다시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 밖에서 만난 배우 쿠니무라 준은 호감입니다. 귀여운 일본 아저씨더란 말입니다. 어쩔까 고민고민하다가 <곡성>을 다시 볼 생각까지 해봤는데 도무지 용기가 안 납니다. 행여나 이 글 보고 <곡성> 처음 보려는 분들은 마음 단단히 잡숩고 옆에 팬티 한 장, 아니 훈도시 한 장 준비하고 보세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