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기자회견 현장

오스카 트로피를 여섯 개나 품에 안고 돌아온 전 세계 영화의 아이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기생충>, 그 여정을 함께한 영광의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2월 19일 오전, 웨스틴 조선 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칸 국제영화제 개최 직전, <기생충>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던 장소라 더 뜻깊은 자리였죠. 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바른손이엔에이 대표, 오스카에 후보로 오른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기생충>에 대한 전 세계의 열기, 그리고 오스카 시상식과 관련한 후일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해외 각종 시상식의 수상소감만으로 화제에 올랐던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이 자리에 참석한 <기생충> 식구들의 입담이 발휘되었던 시간이었는데요. 한국 영화 역사에 오래 남을 이들의 인상 깊은 말말말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코피도 쏟았다?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의 숨은 사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 기록 세운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첫 진출에 무려 4관왕의 기록을 세운 봉준호 감독. 그는 무수히 많은 최초의 기록을 세우며, 영화 역사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일 이뤄진 기자회견은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국내에서 이뤄진 <기생충>의 첫 공식 행사였죠. 봉준호 감독은 이 자리에서 <기생충>의 흥행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오스카 캠페인’에 대한 후일담을 털어놨습니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을 맡은 네온은 중소 배급사였기에, 오스카 후보에 오른 타 영화들에 비하면 예산에 한계가 있었는데요. 이 현실의 벽을, “네온과 CJ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바른손이엔에이, 캠페인에 참여한 배우들과 함께 코피 쏟는 열정으로 극복했다”는 후기를 밝혔죠.

<기생충> 기자회견 현장의 송강호, 봉준호 감독

게릴라전이라고 할까요. 다른 거대 스튜디오, 넷플릭스 같은 회사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예산으로, 대신 열정으로 저희는 뛰면서. 그 말인즉슨 저와 강호 선배님이 코피를 흘리면서, 실제로 코피를 흘린 적도 있으시지만.

제가 사실 정확하게 세어보진 않았지만 인터뷰만 600개 이상, Q&A 관객과의 대화도 100회 이상 했었고요.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도 있었죠).

경쟁작들의 경우를 보면 LA 시내에 거대한 전면 광고판이 있고, TV나 큰 잡지에 전면 광고가 나오고 그런 식의 물량공세 방식을 택했다면, 저희는 아이디어, 네온·CJ·바른손 저희 배우까지, 이렇게 똘똘 뭉쳐서 팀워크로 물량의 열세를 커버하면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 봉준호 감독


해외 현장에서 느낀

봉준호 감독의 ‘진짜’ 인기는 어땠을까?

2020 골든글로브 시상식 현장

‘봉하이브’(봉준호 감독의 팬덤을 일컫는 말) 열풍이 불고 있는 해외. 온라인에서도 봉준호 감독에 대한 놀라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직접 해외에 나가지 않은 이상 그 열기를 체감하긴 쉽지 않죠. 송강호와 함께 <기생충> 오스카 캠페인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해외의 열기를 직접 보고 들은 이정은은 “(봉준호 감독, 송강호) 두 분의 인기가 높으셔서 사실 입을 헤 벌리고 쫓아다녔다”는 말로 그들의 인기를 설명했습니다.

<기생충>을 향한 해외 열광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정은은 <기생충>이 “미국이나 유럽이나 모두가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 동시대적인 문제를 굉장히 심도 있고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고, “누군가는 누구에게 가해자가 되고,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런 관계들이 우리들의 인간 군상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오스카 캠페인 내내 옆에서 지켜본 봉준호 감독의 인기 요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 캠페인이 경쟁 구도 같아 보이지만, 그분들이 8월부터 캠페인 하면서 동지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셨는데. 거기서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것들이 소감에 많이 묻어나기 때문에 인기가 있으셨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정은 배우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로컬 발언’,

오스카 의식했다? 안 했다?

<벌처>가 나눈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 중 '오스카 로컬' 내용 부분

오스카 시상식 시즌 내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발언이죠. 봉준호 감독이 해외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는 지역 축제 아니냐는 대답을 하며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오스카는 봉준호 감독에게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을 안기며 로컬 축제가 아님을 입증했죠. 이 화제의 발언이 “‘오스카 캠페인, 기생충 마케팅의 계획이 아닐까’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처음 캠페인 하는 와중에 도발씩이나 하겠어요. (웃음) 영화제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칸, 베니스, 베를린은 국제 영화제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아니겠느냐, 이렇게 비교하다가 슥 나온 단어일 뿐인데. 미국 젊은 분들이 이걸 트위터에 많이 올렸나 봐요. 제가 그런 전략을 가지고 이야기한 건 전혀 아니고, 대화 와중에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었어요.

- 봉준호 감독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편지 받은 봉준호 감독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 소감 도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언급한 봉준호 감독

<기생충> 오스카 레이스 과정을 통해 수상 소감 천재란 별명을 얻은 봉준호 감독. 그는 수상 소감 관련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의 수상 소감과 연관 깊은 인물,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봉준호 감독에게 보낸 편지 일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마음이나, 봉준호 감독 팬들의 마음이나 모두 비슷한 것 같네요.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이 편지를 보내오셨어요. 몇 시간 전에 편지를 읽었는데. 저로서는 영광이었고. 저한테 개인적으로 보내신 편지니까 그 내용을 말씀드리는 건 실례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수고했고 이제 좀 쉬라고. 대신 조금만 쉬라고. 나도 그렇고 다들 차기작을 기다리니까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하라고.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 봉준호 감독


<기생충> 이후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마음 바뀐 이정은?

<기생충> 기자회견 현장의 이정은

<기생충>의 배우들은 올해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수상했죠. 봉준호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의 중심 축에 서 있었던 송강호, 제시카 송으로 화제에 오른 박소담, 극을 뒤집어놓는 연기를 선보인 이정은 등에 대한 해외의 호평이 줄을 잇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고 있지 않냐,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가장 재미있는 답을 내놓은 배우는 이정은이었습니다.

제가 <기생충> 초반에는 감독님께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배우가 되어서 할리우드 가봐야 되지 않냐, 이랬는데요. 영화를 찍고 세계에서 각광을 받다 보니까 굳이 할리우드를 안 가도(웃음) 영화를 잘 찍으면 세계가 다 알아주는데,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글쎄요. 그런 기회가 온다면 생각해보겠습니다.

- 이정은 배우

송강호 배우 역시 예상치 못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진행을 맡은 박경림은 그의 대답에 송강호의 충격 고백이라는 소제목을 달기도 했죠.

저는 국내라도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마지막 촬영이 작년 1월 말이었어요. 13개월째, 아무런 일이 (없어요). 지금 할리우드가 아니라, 그래서 저는 국내에서라도 일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 송강호 배우


톰 행크스 &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인정받은 <기생충> 배우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관련 인터뷰들을 살펴보면 그가 배우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존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역시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투표에 있어서도 미국 배우협회 회원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작품상을 받는 데 일등 공신을 해준 게 영화의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 배우들과 그를 지지해준 배우 협회 회원이 아닌가,라는 분석을 했던 적도 있다”고 밝히며 작품상의 공을 배우들에게 돌리는 훈훈한 풍경을 연출했습니다.

그와 함께 전 세계의 국민 배우와 같은 톰 행크스, 봉준호 감독과 찐우정 자랑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전한 <기생충> 배우들에 대한 칭찬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이 전설의 영화인들이 픽한 <기생충> 크루는 누구인지 알아볼까요?

이정은 배우님도 미국에서 엄청난 화제였습니다. “오리지널 하우스 키퍼, 원래 가정부였던 배우가 누구냐. 그녀가 늦은 밤 벨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라면서). 미국배우조합상 입장할 때, 시상식장 들어가는 과정이 되게 복잡한데. (그곳에서) 톰 행크스 부부를 뵈었었는데, 톰 행크스 님이 강호 선배나 이선균 씨나 특히 이정은 배우를 보고 아주 반가워하면서 영화에 대한 질문 많이 했었고.

LA 길을 걷다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만났는데, 마침 그저께 자기가 극장에서 <기생충> 봤다고 하시면서 20분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중 10여 분 정도는 조여정 배우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연기와 캐릭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하루 내내 생각을 했다고.

- 봉준호 감독


지하실 남 박명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존재감은 어땠을까?

<기생충>, (왼쪽부터) 박명훈, 이정은

<기생충>의 지하남, 근세를 연기한 박명훈은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죠. 때문에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안은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에선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를 접한 해외의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박명훈은 의외의 대답을 내놔 기자회견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의 반응이요? 아카데미에선 아무도 못 알아봤습니다. (일동 웃음) 제가 모습이 심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에, 보고서도 ‘아 스탭 중의 한 분이구나’ 이러고 아무도 저를 몰라봤고요. 그래서 영화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박명훈 배우


오스카 수상 소감에 대한

말.말.말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호명되어 무대에 오른 <기생충> 팀

오스카 시상식의 작품상으로 <기생충>, <Parasite>가 호명되는 순간. 가장 강렬한 짜릿함을 느꼈을 이들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기생충> 식구들이겠죠. 전 세계 영화인이 우러러보는 오스카 무대 위에 오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배우들은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송강호의 답변을 보니, 몇 번이고 돌려봤던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 장면을 다른 관점으로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영화의 힘은 대단하구나. 감독님이 수상소감에서 말씀하셨듯이, 이게 한 가지 언어구나, 영화라는, 그게 체감이 되더라고요. 언어나 이런 걸 다 떠나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잘 접근을 하셨으면 이게 다 통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덕분에 굉장히 자랑스럽게 무대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조여정 배우

잘 보시면 굉장히 자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제가 너무 과격하게 축하하는 바람에 감독님 갈비뼈 실금이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서. 이번엔 얼굴 위주로. 어떤 상엔 뺨을, 어떤 상엔 뒷목을 잡기도 하고. 갈비뼈를 피해서, 굉장히 자제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너무나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아무튼 잘 보시면 정말 자제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송강호 배우


<기생충> 흑백 영화엔 어떤 매력이?

<기생충: 흑백판>

<기생충: 흑백판>

2월 26일,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합니다.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장면 장면, 콘트라스트와 톤을 조절하며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결과물이죠. 올해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흑백판을 통해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흑백판을 “묘하다”는 말로 압축 설명했습니다. 흑백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봉준호 감독의 대답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기생충> 흑백판의 극장 예매 창을 띄우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네요.

다른 어떤 거창한 의도라기보다는 고전 영화, 클래식 영화들에 대한 동경, 소위 말하는 로망이 있어서.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이던 시절도 한때 있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만약 지금 1930년대를 살고 있고, 이런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영화적인 호기심들이 있죠. 영화 팬들, 영화 마니아분들이라면 그런 관심이 다 있을 것 같아요.

(<기생충:흑백판>은) 저도 2번 봤습니다.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고요. 묘합니다.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엔 똑같은데 이런저런 다른 느낌들이 있고요. 보시는 분마다 그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뭐라고 선입견을 가지게끔 말씀을 드리거나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로테르담에서 어떤 관객분은 “흑백으로 보니까 더 화면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평을 남겨주셨어요). 그 의미를 더 생각해보기도 했었고.

배우분들의 더 미세한 표정, 섬세한 연기의 디테일이나 뉘앙스들을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알록달록한 컬러들이 사라지니까,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느낌이 있지만, 제가 먼저 나열하는 것보단 보시면서 느껴보시면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 봉준호 감독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