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외쳐보자

16살 생일을 맞은 엘프 소년 이안(톰 홀랜드)은 세상을 떠난 아빠가 남긴 선물을 건네받는다. 24시간 동안 아빠와 다시 만날 수 있는 소환마법을 실행할 수 있는 주문과 재료들이다. 누구도 더이상 마법을 믿지 않는 시대에 형 발리(크리스 프랫)와 함께 아빠를 소환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뭔가가 잘못되고 아빠는 허리 아래, 하반신까지만 소환된다. 픽사의 22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이하 <온워드>)은 주어진 24시간 안에 아빠를 온전히 소환해 만나려는 형제의 모험담이다. 2019년 10월, 샌프란시스코 픽사 스튜디오를 방문해 제작 중이던 <온워드>에 대해 보고 들었다. 영화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1 단 하루의 기적

<온워드>는 댄 스캔런 감독이 <몬스터 대학교>(2013) 이후 만든 첫 영화이며,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6년 반이다. <몬스터 대학교>를 마치고 몇달 뒤인 2013년 9월17일, 댄 스캔런 감독과 코리 래 프로듀서, 켈시 만 스토리 아티스트는 “Day One”이라고 적힌 메모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제목조차 없었던 영화의 첫날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이후, 무려 9만7759장의 스토리보드가 그려졌고, 2020년 3월 개봉을 앞둔 <온워드>로 완성됐다. 픽사에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감독들은 보통 몇 가지 아이디어를 피칭하는데, 코리 래 프로듀서에 따르면 댄 스캔런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바탕이 된 <온워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영화 속 이안처럼 댄 스캔런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가 1살, 형이 3살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함께 나눈 추억이 없는 아들이 막연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세상을 떠난 아버지도 하루 만이라도 아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리라는, 아니 죽기 전까지 아들의 성장이 궁금했으리라는 뭉클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온워드>다.

2 마법을 믿지 않는 판타지 월드

죽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기적, 그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온워드>에는 마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법이 가능한 판타지 월드가 영화의 무대가 됐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누구도 마법이 필요하지 않은 현대가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됐다. 이를테면 전기가 있으니 불을 밝히는 주문은 필요 없어진 세상이다. 반인반마는 과거에 들판을 질 주했지만 이제는 트럭을 타기에 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사이즈가 작아진 용은 애완동물 신세가 됐고, 신비로움의 상징이었던 유니콘은 거리의 들쥐들처럼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닌다. 주인공 이안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 마법을 모르는 채 자랐고, 그래서 아버지가 남긴 선물에 어리둥절해진다. “너희들 아빠는 회계사였어!”라며 엄마(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도 믿지 못한다. 다행히 형인 발리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지향하며 판타지 롤플레잉게임에 푹 빠진 괴짜다. 발리는 실제 사건과 사실에 기반해 만들어졌다는 <퀘스트 오브 요어>를 가이드 삼아 이안과 함께 아빠를 만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3 주문을 외쳐보자

발리가 경전처럼 받드는 <퀘스트 오브 요어>는 형제가 떠난 여정의 지도일 뿐 아니라 마법을 1도 알지 못하는 이안을 위한 교과서다. 페이지마다 상황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마법과 주문, 난이도, 잘못될 가능성 등이 적혀 있다. 주문을 읽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진짜 마법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발리의 해석인데, 마법을 믿지 않는 이안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주문을 외치게 된다. <퀘스트 오브 요어>는 <온워드>를 위해 꾸려진 픽사의 팀에서 창작한 롤플레잉게임이다. 그 안에 적힌 모든 주문도 댄 스캔런 감독을 비롯한 팀원들의 판타지 장르에 대한 지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물건을 들어올리는 주문인 “어로프트엘레바”는 아무 말을 이어붙여 만든 주문이 아니라 영어 사용자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대강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도록 했다. 의미를 추측할 수 있으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간직한 주문들은 1차로 팀원들이 선별했고, 2차로 스캔런 감독에게 읽어주고 의미를 맞힐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최종 선택됐다.

4 신비로운 신화 속 인물 캐릭터 디자인

엘프, 트롤, 키클롭스 등 신화와 동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크리처를 캐릭터로 설정한 <온워드>는, 믿기 어렵지만 픽사가 만드는 최초의 판타지 장르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1)에서 마법이 아주 잠깐 나오지만 이렇게 다양한 외모의 캐릭터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이야기는 픽사로서도 처음이다. 특히 주인공인 엘프는 푸른 피부를 가진 것으로 설정됐는데, 이 푸른 피부에 홍조가 도는 것, 조명에 반사되는 정도, 푸른 톤의 피부를 중심에 두고 프로덕션 디자인의 컬러를 결정하는 일 모두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엘프지만 하반신만 나오는 덕분에 푸른 피부가 보일 틈이 없는 아빠 역시 흥미로운 캐릭터다. 하반신만 존재하고 움직이는 희귀한 캐릭터를 연구하기 위해 스캔런 감독이 직접 아빠 코스튬을 입고 그린스크린 촬영을 할 정도였다. 형제와 하루를 함께하는 아빠는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지만 걷고 뛰고 춤추는 것으로 감정을 나눈다.

<온워드>팀이 꼽는 최고의 캐릭터는 맨티 코어(옥타비아 스펜서)다.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스콜피온의 꼬리를 가진 페르시안 전설 속 동물인 맨티 코어는 <퀘스트 오브 요어>에 등장할 만큼 나이가 많지만, 세상이 바뀌자 하이힐 속에 발톱을 감추고 노래방 기계가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모험이 없는 삶을 선택한다. 아빠를 온전히 만나기 위해 ‘드래곤의 눈물’이 필요한 이안과 발리는 맨티 코어를 찾아가고, 이로 인해 무료했던 그녀의 세상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5 발리의 애마 ‘귀네비어’

아빠를 만나기 위한 퀘스트는 진짜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발리지만, 먼 길을 걸어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는 발리가 손수 고쳐 만든 고물 자동차 ‘귀네비어’와 함께 움직인다. 귀네비어는 시동을 걸려면 드라이버로 계기판 위의 숫자와 숫자 사이 어딘가를 맞춰야 하는, 작동하는 것이 신기한 낡은 밴으로 외관에는 밤하늘을 나는 유니콘이 그려져 있다. 귀네비어는 발리의 애마일 뿐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일로 “운전연습”을 꼽는 이안이 차선 변경, 고속도로 진입을 최초로 시도하고 성공하게 되는 이안의 인생 첫 차이기도 하다. <온워드>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귀네비어와 함께 마케팅 투어가 진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 최근 이를 둘러싸고 픽사와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예술가 스위트 시슬리 다니에르 사이에 법정 공방이 예견된다. 다니에르는 타투 아티스트이며 유니콘에 대한 이미지와 아트워크를 인스타그램에 올려 스스로를 홍보하던 중에 2018년 픽사의 요청으로 자신의 밴을 행사용으로 대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후 <온워드>의 귀네비어를 보고 자신이 빌려준 밴과 차량 모델, 연식은 물론 외관에 유니콘이 그려진 독특한 디자인까지도 동일하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픽사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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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글 안현진 LA 통신원·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