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휩쓴 자리. 모임 약속도 취소되고 여행은 꿈도 못 꾸게 됐다. 전 국민이 강제 자가격리 중인 요즘, 여러분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동안 바이러스 관련 영화들이 OTT 서비스를 통해 주목을 받았다. 사태가 정말 심각해져 그런가. 이젠 이런 영화들을 보는 것도 지치고 우울감이 느껴진다. 멘탈을 안정시킬 보고 또 봐도 좋은 '아는 맛' 영화로 힐링해 보는 건 어떨까. 마침 넷플릭스 신작 리스트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 애니로 꼽는 작품들이 새로 업데이트됐다.
<토이스토리 3>
<토이스토리> 시리즈 중 3편이 가장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이별'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아꼈지만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그 장난감들은 어떻게 됐을까. 누구나 겪었지만 누구나 잊어버릴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토이스토리 3>에 담겨있다. 대학생이 된 앤디가 집을 떠나면서 어릴 적 갖고 놀았던 인형들을 박스에 담아 다락방에 넣어둔다. 이 박스를 앤디의 어머니가 탁아소에 보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디만큼 큰 애정을 받지 못한 다른 장난감들은 탁아소 인형들의 텃세를 견디고 새로운 주인이 될 아이들과의 새 삶을 시작한다. 영화 엔딩 무렵 앤디가 장난감들과 제대로 된 마지막 이별을 하던 장면은 많은 어른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어릴 적 장난감에게 인격을 부여해(?) 친구를 맺었던 기억이 있다면, 미처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감정들이 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기가 쉽지 않을 장면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어린아이도 즐길 수 있게 만든 애니메이션 중에 나이 들어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는 작품들이 꽤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그중 하나다. 어릴 적엔 얼결에 부모님과 헤어진 주인공이 신과 정령들의 세계에서 모험하고 (잘생긴) 친구도 만나는 판타지 모험 영화로 봤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섬뜩하고 무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치히로는 엄마, 아빠가 돼지로 변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본 뒤 홀로 떨어져 마녀 유바바의 온천장에서 이름도 뺏기고 노동을 하며 그곳에서 탐욕에 가득 찬 이들을 맞닥뜨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주인공한테 너무 가혹한 환경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뜯어볼수록 철학적, 사회적 관점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영화다. 센과 치히로 두 가지의 이름 사이를 오가는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한 유바바와 제니바, 얼굴을 알 수 없는 가오나시 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모호한 설정들이 영화 속 세계를 기묘하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뮬란>
3월 개봉을 앞둔 유역비 주연의 실사영화에 대한 여러 우려가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뮬란>을 좋아하는 팬들은 많다. <뮬란>은 1990년대 제작된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차별점이 뚜렷하며 개성 넘치는 작품이다. 디즈니 프린세스들 모두 주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공주로서 행동력의 한계가 있었다. 뮬란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남장을 한 채 직접 전장에 나서 위대한 전사로 거듭난다.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한 점도 다른 디즈니 영화와 다른 부분이다. 물론 지금 와서 다시 보면 동양문화에 대한 고증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의 메인 OST '리플렉션'(Reflection)을 오랜만에 들었다. 갑자기 영화를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너의 이름은.>
본 영화를 또 보는 일이 드문데 이 영화는 보지 않아도 가끔 틀어놓곤 한다. 마치 한 편의 사운드트랙을 영상과 함께 듣는다는 생각으로. <너의 이름은.>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소년과 소녀가 몸이 바뀌는 판타지를 경험하는 이야기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이미 수많은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다룬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먼 거리의 소년 소녀 사이의 애틋함과 이들의 연대를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아름다운 정서로 그려냈다. 몸이 바뀌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경험하던 주인공들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공간을 뛰어넘는 더 넓은 세계 속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낭만적인 그림체와 래드 윔프스의 음악이 뭉클한 감정을 고조시킨다.
<모노노케 히메>
이 영화의 제목을 <원령 공주>로 기억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라는 원제가 의미 전달이 난해해 국내 언론에서 <원령 공주>로 표기하던 것이 널리 알려졌다. 어쨌든 개봉은 원제인 <모노노케 히메>로 했다.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세계와 대자연의 갈등을 그렸다. 이기심 가득한 인간이 산을 망가뜨리면서 이들의 싸움은 시작된다. 들개의 딸인 산은 자연의 편에 서 인간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널리 알려진 다른 작품 속 귀엽고 따스한 스타일의 캐릭터와 달리 입가에 피를 흘리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목과 팔이 잘리는 의외로 끔찍한 장면도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6년 동안 구상하고 3년에 걸쳐 제작했다. 이 작품 이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복귀했다.
씨네플레이 조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