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당시 7년 만의 솔로 앨범을 내놓고 넥스트의 새 앨범 발매를 앞두는 등 여느 때보다 부지런하게 활동하고 있던 그였기에, 이른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1988년 밴드 무한궤도와 함께 만든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해, 밴드 넥스트와 여러 솔로 프로젝트 등의 음악 작업과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의 DJ로 활동하는 등 26년간 그가 한국 대중문화에 남긴 흔적은 넓고 크다. 씨네플레이는 신해철의 2주기(10월 27일)를 맞아, 그가 음악과 연기로 한국영화계에 남긴 흔적들을 정리했다.


as Music Producer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는 신해철이 처음 음악감독으로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영화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유행의 첨단을 차지했던 압구정동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걸맞게, 도회적인 무드가 물씬한 트랙들로 영화음악을 구성했다. 넥스트의 초창기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드러머 이동규가 연주와 곡 작업을 도왔다. 영화의 주연인 엄정화는 OST에 수록된 노래 '눈동자'를 내세워 가수로 데뷔했다. 신해철은 영화에 카메오 출연도 했다.


<정글 스토리>

1996년 당시 아직 신인이었던 윤도현과 (이제는 배우로 더 친숙한) 산울림의 김창완이 주연을 맡았던 <정글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다. 고작 6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시장에서 완전히 실패한 <정글 스토리>는 영화 자체보다 오히려 신해철이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사실로 더 많이 회자된다. 뮤지션인 윤도현과 김창완이 관여하고 있는 영화지만, OST는 온전히 신해철의 음악으로만 채워져 있다. 영화 중간 신해철이 인기 록스타로 활약하는 생뚱맞은 시퀀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혼기병 라젠카>

넥스트의 네 번째 정규앨범 <Lazenca - A Space Rock Opera>(1997)는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트랙을 겸해 제작됐다. 여덟 트랙으로 구성된 앨범 가운데 'Lazenca, Save Us', '먼 훗날 언젠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세 곡이 <영혼기병 라젠카>에서 주요하게 사용됐다. 제목이 지칭하는 것처럼 록 오페라로서 웅장한 사운드와 거창한 노랫말들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세기말>

세태에 대한 날선 비판과 코미디를 제대로 조합한 <넘버 3>(1997)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송능한 감독은 비판의 정도를 올리고 분위기는 한껏 낮춘 신작 <세기말>(1999)을 내놨다. 신해철이 담당한 음악 역시 진지하고 어둡다. 라디오 다큐멘터리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발췌한 소리를 샘플링한 메인테마, 옛 가요 '세상은 요지경'을 편곡한 'The Magic Glass' 등 당시 신해철이 크롬이라는 솔로 프로젝트로 선보이던 '테크노'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쏜다>

<세기말> 이후 8년 만에 영화음악을 맡은 작품. <쏜다>(2007)는 경찰서에서 처음 만난 두 남자(감우성, 김수로)가 구속 이송 중에 우연히 탈주하게 돼 일탈을 저지르고 다니는 과정을 그린다. 신해철은 도주하는 이야기 특유의 속도감을 살리는 록 사운드로 사운드트랙 콘셉트를 잡았고, 곳곳에 '국민체조' 음악을 다양한 장르로 편곡한 테마 스코어들을 배치했다.


as Actor

<안녕, 프란체스카>

앙드레 대교주

신해철이 처음 제대로 연기를 선보인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005). 그는 데뷔 이래 18년간 쌓아왔던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단번에 내려놓고, 허풍만 떨 줄 아는 망나니 뱀파이어 앙드레 대교주 역을 맡았다. 시즌1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황당한 비주얼과 함께 등장한 그는 단발성 출연에 그치지 않고 시즌2에서도 프란체스카의 일원으로서 맹활약했다. 원래 대교주다운 근엄한 인물이었는데 신해철의 뜻에 따라 우리가 익히 본 앙드레가 되었다고 한다. 이름이 앙드레인 이유는 본래 이 역할에 디자이너 앙드레김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멍청한데 꾀는 잔뜩 부려 남에게 폐만 끼치지만, 극중 연인인 소피아(박슬기)와 함께 귀여운 커플 케미를 선보이며 방송 내내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다.


<아치와 씨팍>

보자기 킹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2006)에서는 '빌런' 보자기 킹을 연기했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마왕'이라는 이미지를 염두에 둔 듯한 캐스팅이다. 하지만 결과는 밍숭맹숭했다. '양아치 연기'의 달인인 류승범과 임창정이 영화를 휘젓는 사이, 매순간 위악스러운 대사를 내뱉는 보자기 킹의 목소리가 정작 못되게 들리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나의 PS 파트너>

라디오 DJ

영화 후반, 작곡가 현승(지성)이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 DJ 역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가 1996년부터 2010년대 초까지 <음악도시>와 <고스트 스테이션>의 라디오 DJ를 맡았던 경력이 떠오르는 역할이다. 신해철은 김홍집 음악감독이 지휘한 사운드트랙에 메인 테마 'Show Me Your Panty'를 선사했다. <나의 PS 파트너>(2012)는 신해철이 관여한 마지막 영화로 남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