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리어>는 4월 2일(목) 올레 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극장에 걸리지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언젠가부터 액션 히어로는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존재가 됐다. 이단 헌트(<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나 제이슨 본('본' 시리즈), 존 윅(<존 윅> 시리즈)처럼. 하지만 <다이 하드>를 돌아본다면, 액션 영화에서 공간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밀폐된 공간에서 적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때 액션이 주는 쾌감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저예산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액션 영화 <더 커리어>가 VOD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런던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배달원(올가 쿠릴렌코), 어느 날 급한 연락을 받고 물건을 배달하게 된다. 그 물건은 거대 재벌 매닝스(게리 올드만)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 닉(아밋 샤)에게 전달된다. 증언을 위한 화상 통화 장치인 줄 알았던 물건이 사실은 닉을 살해하려는 도구였고, 배달원은 간신히 닉을 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있는 건물은 매닝스가 보낸 부하들에게 포위되고, 배달원은 닉이 살아서 증언을 할 수 있게, 건물을 탈출해야만 한다.
하나의 공간으로 끄집어낸 스릴의 밀도
액션 영화 마케팅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문구. N개국 로케이션 촬영! 국가와 관련한 첩보원, 비밀요원의 이야기가 주류가 되면서 액션의 풍경이 되는 공간도 중요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액션의 고전, <다이하드>는 공간의 가짓수보다 공간의 활용도가 액션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걸 입증한 바 있다. 두 주인공이 점점 포위해오는 적들을 상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더 커리어>의 장점은 이런 유의 액션 영화와 일맥상통한다.
주인공 배달원은 등장부터 비범하긴 한나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적에게 맞서야 함은 물론, 심지어 싸움이라곤 전혀 해본 적 없는 증인 닉까지 지켜야 한다. 적들은 모두 한 덩치 하는 남성들에, 그들이 쓰는 무기는 지문 인식이라 몸으로 부딪히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 이런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발판이 주차장이란 공간이다. <더 커리어>는 약세로 보이는 배달원이 주차장의 환경과 배치를 이용, 은폐와 은신, 급습 등으로 상황을 뒤집는 과정을 그려간다.
올가 쿠릴렌코, 역대급 활약
<더 커리어>에 찰떡처럼 어울리는 배우가 올가 쿠릴렌코 말고 또 있을까? <007 퀀텀 오브 솔라스>, <오블리비언>, <퍼펙트 타겟> 등 남성 중심 액션 영화의 보조는 물론이고 <키롯>, <센츄리온>, <모멘텀> 등 액션 영화의 타이틀롤을 소화한 배우답게 <더 커리어>에서의 활약도 굉장하다. '걸크러시'라는 표현만으론 아쉬울 정도. 작중 액션의 소화력도 상당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인 반응이 필요한 순간마다 배달원의 인간적인 면을 탁월하게 드러내며 스스로 장르 불문의 배우임을 확인시켜준다.
그와 함께 움직이는 닉 역의 아밋 샤도 관객의 눈길을 잡아두는 데 성공한다. 국내엔 <달링>과 <라스트 크리스마스>로 최근에야 소개됐지만 이미 10년 넘게 활동한 배우인 아밋 샤는 <더 커리어>의 빡빡한 긴장감 속에서 순간순간 유머러스한 찰나들을 만든다. 재벌이자 범죄계 거물에 대항해 증언을 약속한 용감한 인물이지만, 실제 눈앞에 닥친 위험에는 영락없이 소시민적으로 반응하는 캐릭터의 성격을 적확하게 표현했다.
모든 걸 장악하는 흑막, 역시 게리 올드만
액션 영화에서 주연이 빛나려면? 대립하는 악역의 이미지가 강해야 한다. <더 커리어>는 그 부분에 난제가 있는데, 배달원과 직접적으로 맞서는 악역은 매닝스가 아닌 브라이언트(윌리암 모즐리)를 비롯한 매닝스의 부하들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이들의 충성심을 납득하려면 매닝스의 카리스마를 보여줘야만 했고, 그래서 등장하는 배우가 게리 올드만이다. <레옹> 스탠 필드 이후 한동안 '악역 전문 배우'라고 불렸던 게리 올드만이기에 주인공과 몸으로 부딪히지 않아도 프레임의 공기를 장악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스스로 "신체적인 집중이 가장 필요했던 역 중 하나"라고 밝힐 만큼 게리 올드만은 매닝스의 이중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표현했다. 결백한 듯 고상한 일상을 즐기는 연기와 닉을 '처리'해야만 하는 조급함이 중첩될 때, 게리 올드만의 연기는 또 한 번 관객들의 심장을 멎게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