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북미 박스오피스가 말 그대로 ‘올 스톱’ 상태다. 현지 극장 프랜차이즈들이 전국 상영관을 폐쇄해 상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Box Office Mojo, The-Numbers 등의 박스오피스 전문 매체와 대형 스튜디오에서 성적 집계가 무의미하다고 판단, 일시적으로 집계 및 발표를 중단한다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북미 박스오피스의 흥미로운 기록들을 살펴볼까 한다. 이번 주제는 ‘1위’와 관련된 기록이다. 박스오피스 정상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한 작품은 성적도 좋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의 반전을 선보인 작품들도 상당히 많다. <겨울왕국 2>, <쥬만지: 넥스트 레벨>,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등 쟁쟁한 연말 경쟁작 사이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며 흥행했던 <나이브스 아웃>이 대표적인 예다. 과연 <나이브스 아웃>처럼 1등 경험은 전무해도 실속 있게 ‘성적’을 챙긴 작품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Box Office Mojo 주말 박스오피스 기준, 2000년 이후 개봉작)
1. 씽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270,395,425
전세계누적: $634,151,679
제작비: $75,000,000
1위 한 번 없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작품은 일루미네이션의 2016년작 <씽>이다. 10만 달러 상금이 걸린 대국민 오디션에 참가한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태런 에저튼과 스칼렛 요한슨, 리즈 위더스푼 등이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개봉 당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라는 엄청난 상대와 맞붙는 바람에 2위로 첫 선을 보인 뒤 단 한 차례도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앉지 못했으나, 북미에서만 제작비 3배를 훌쩍 뛰어넘는 2억 7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전 세계 누적 성적은 6억 3400만 달러, 본래 올 크리스마스에 속편이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두 차례 연기되어 내년 12월 22일에 공개된다.
2. 나의 그리스식 웨딩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241,438,208
전세계누적: $368,744,044
제작비: $5,000,000
<씽>에게 정상을 내주기 전까지 14년 가까이 ‘2위들의 1위’였던 로맨틱 코미디. 그리스 이민자 주인공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개봉 당시 108개 상영관에서 20위로 데뷔, 이후 꾸준하게 상영관을 늘리고 순위가 상승하며 20주차 만에 주말 박스오피스 2위까지 올랐다. 당시 1위작은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500만 달러 제작비로 북미에서 50배 가까운 2억 4100만 달러(전 세계 3억 68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흥행 대박’을 쳤으며, 2016년 개봉한 속편 역시 전작에는 못 미치지만 쏠쏠하게 흥행했다.
3. 앨빈과 슈퍼밴드 2
– 최고순위 3위
북미누적: $219,614,612
전세계누적: $443,140,005
제작비: $75,000,000
1958년 로스 바그다사리안이 탄생시킨 캐릭터 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 2007년작 <앨빈과 슈퍼밴드> 속편으로, 전작에서 슈퍼스타가 된 세 다람쥐가 학교 대표로 음악대회에 출전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포함된 주말 박스오피스에 3위로 데뷔, 당시 1, 2위에 앉은 작품이 <아바타>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 주연의 <셜록 홈즈>였다. 평단과 관객 모두 ‘전작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혹평했지만, 결과적으론 북미에서 제작비 3배 가까운 2억 1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참고로 전작도 주말 박스오피스 1위 한 번 없이 2억 1700만 달러 수익을 올렸다(해당 부문 4위).
4. 스타 이즈 본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215,288,866
전세계누적: $436,188,866
제작비: $36,000,000
1937년작 <스타 탄생>의 세 번째 리메이크 작품. 쇠락해가는 톱가수와 무명가수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데뷔작이다. 혹평을 면치 못한 1976년 리메이크작과 달리 주디 갈랜드 주연 1954년작과 함께 ‘원작을 뛰어넘은 리메이크’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전 세계 누적 4억 3600만 달러로 제작비 10배 이상의 흥행 성적을 거두기까지 했다(북미 누적 2억 1500만 달러). 2018년 11월 개봉 당시 <베놈>에 밀려 주말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했으나, 이후 <베놈>이 하락세를 보이는 동안에도 꾸준하게 순위를 지키며 흥행을 이어갔다.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작품상, 남/여우주연상 등 8개 부문 중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5. 셜록 홈즈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209,028,679
전세계누적: $524,028,679
제작비: $90,000,000
가이 리치 연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주드 로 주연의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 듀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수사극을 그린다. 셜록 홈즈를 내세운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수사’보다는 액션과 모험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다른 방면에선 원작 고증을 잘했다는 호평과 함께 북미 2억 900만 달러, 전 세계 5억 24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2009년 크리스마스 당일(금요일) 개봉해 1위를 차지했으나, 곧바로 <아바타>에 선두를 빼앗기며 주말 박스오피스 2위로 첫 주말을 마무리했다. 2011년 속편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이 개봉했으며, 세 번째 작품은 2021년 공개될 예정이다.
6. 월드워Z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202,359,711
전세계누적: $540,007,876
제작비: $190,000,000
맥스 브룩스 소설 『세계대전Z』를 원작으로 한 작품. 좀비 바이러스 창궐로 아수라장이 된 세계를 구하려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와 개봉 시기가 맞물리며 2위로 데뷔, 이후 이렇다 할 역주행 기미도 없이 신작들에 밀리며 개봉 6주차에 주말 박스오피스 톱10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준수한 평가와 북미와 전 세계 극장가에서 각각 2억 달러, 5억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 흥행 1위’와 더불어 브래드 피트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다(카메오 출연한 <데드풀 2> 제외). 아쉽게도 오랜 논의 끝에 속편 제작은 무산됐다.
7. 인터스텔라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188,020,017
전세계누적: $677,463,813
제작비: $165,000,00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4년작 SF 영화. 전 세계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로 나선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13번째 천만 관객 영화’, ‘아이맥스 관객수 1위’ 등 <인터스텔라>가 국내에서 세운 기록들을 고려하면 북미 주말 1위는 따 놓은 당상인 듯싶지만, 의외로 영화의 최고 순위는 2등이다. 당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와 함께 개봉해 예상을 밑도는 오프닝 스코어를 거두는 데 그쳤고, 추수감사절 시즌에 연이어 개봉한 <덤 앤 더머 투>, <헝거게임: 모킹제이>와 순위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제작비를 생각하면 북미 1억 8800만 달러라는 성적이 아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 6억 7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었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수상작.
8. 투모로우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186,740,799
전세계누적: $552,639,571
제작비: $125,000,000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를 대표하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연출작. 급격한 기후변화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재앙이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당시 관객과 평단은 <투모로우>가 지극히 ‘롤랜드 에머리히’스럽다며 틀에 박힌 듯한 전개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박살(?)나는 엄청난 규모의 연출에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주부터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던 <슈렉 2>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개봉 2주차에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개봉하면서 순위와 흥행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북미와 해외 극장가에서 총 5억 5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제작비 4배를 훌쩍 넘는 수익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9. 위대한 쇼맨
– 최고순위 4위
북미누적: $174,340,174
전세계누적: $434,993,183
제작비: $84,000,000
미국 서커스 단장 P.T. 바넘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 이전부터 ‘사기꾼’이라는 P.T. 바넘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논란이기도 했고, 개봉 당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쥬만지: 새로운 세계> 등의 연말 대작들과 경쟁하면서 첫 주말에 88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입소문이 좋게 퍼졌는지 다음 주말에 전례 없는 2주차 성적 상승치(+76.3%)를 기록, 이후 -10~20%대의 꾸준한 퍼포먼스로 성적과 순위 유지에 성공한다. 11주간 주말 박스오피스 톱10을 지키는 와중에 6번이나 4위를 차지했으니, 그건 또 그것대로 진기록이다. 뮤지컬 영화답게 OST 앨범 판매량도 엄청났는데, IFPI 집계 결과 2018년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고.
10. 007 카지노 로얄
– 최고순위 2위
북미누적: $167,445,960
전세계누적: $606,099,584
제작비: $150,000,000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첫 작품. 이언 플레밍의 소설 원작을 가장 잘 살렸다고 평가받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007 카지노 로얄>도 앞서 소개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단 한 차례도 앉지 못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개봉할 당시 하필이면 ‘가족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와 맞붙었고, 70만 달러라는 근소한 차이로 2위로 데뷔한 것. 그래도 평가가 워낙 좋았던 만큼 북미 1억 6700만 달러, 전 세계 5억 9400만 달러로 2006년 기준 시리즈 최고 흥행 기록을 달성, 당시 침체되었던 <007> 프랜차이즈를 부활시키면서 지금까지도 ‘시리즈 최고의 작품’로 꼽히는 중이다.
에그테일 에디터 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