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을 그린 전쟁영화 <1917>이 2월 19일 개봉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선전 중이다. 2달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1917>에 관한 팩트들을 정리했다.

* 스포일러성 정보가 있습니다. *


____ <1917>은 2005년 작 <자헤드>에 이은 샘 멘데스가 연출한 두 번째 전쟁영화다. <자헤드>가 1991년 걸프 전에 파병된 미국 해병대원들의 갈등과 우정을 그렸다면, <1917>은 제목 그대로 1917년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현장을 펼쳐놓는다.

____ 촬영은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됐다. 이를 위해 1.6km에 달하는 참호를 만들었다.

____ 샘 멘데스가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와 함께 한 5번째 작업이다. <자헤드>를 시작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스카이폴>(2012), <스펙터>(2015) 등, 저예산으로 제작된 <어웨이 위 고>(2009)를 제외하면, 멘데스와 디킨스의 협업은 지난 15년간 꾸준히 이어진 셈이다.

<1917> 현장의 로저 디킨스와 샘 멘데스

____ 한편, 음악감독 토마스 뉴먼은 로저 디킨스보다 샘 멘데스와 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오리지널 스코어 없이 알렉시 머독의 ‘노래’만 사용한 <어웨이 위 고>를 예외로 하면, 멘데스는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1999)부터 <1917>까지 뉴먼에게만 음악을 맡겼다.

____ 단 한 테이크로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샘 멘데스와 편집감독 리 스미스가 찰나의 암전과 오브제를 활용한 ‘보이지 않는’ 편집으로 수십 개의 장면을 교묘하게 이어붙인 결과물이다. 가장 긴 숏은 8분 30초, 가장 짧은 건 39초짜리라고. <다크 나이트>(2008), <덩케르크>(2017) 등 크리스토퍼 놀란과 자주 작업해온 리 스미스는 <스펙터>로 멘데스와 처음 연을 맺었다.

로저 디킨스, 리 스미스, 샘 멘데스

____ 로저 디킨스는 아리(ARRI) 사의 알렉사 카메라와 여러 타입의 렌즈들을 이용해 영화들을 작업해왔다. 하지만 <1917>은 90%가 넘는 분량을 40mm 단 렌즈로만 찍었다. 초점 길이를 달리 하면 꼭꼭 감춰놓은 편집점이 노출되기 때문에.

____ 영화 전체가 한 테이크처럼 보여야 하는 <1917>을 준비하기 위해 샘 멘데스와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스코필드 역의 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 역의 딘 찰스 채프먼과 함께 스튜디오와 야외에서 근 6개월간 리허설을 거쳤다. 장면마다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씩 진행해 카메라와 인물의 동선을 완벽히 제어했다.

____ 샘 멘데스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 마지막에 뜨는 문구 또한 그를 기리는 것이다. 알프레드 멘데스는 1916년, 17살 나이에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영화 속 스코필드처럼 무인지대를 뚫고 메시지를 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60cm 초반의 단신 덕분에 180cm까지 차오르는 안개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진흙투성이의 참호 속에서 2년을 보낸 영향으로 평생 빈번하게 손을 씻어야 했고, 70대가 될 때까지 전쟁의 경험을 말하지 않았다.

____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겼기 때문일까, 샘 멘데스는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데뷔한 이래 처음 각본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007’ 프랜차이즈인 <스카이폴>과 <스펙터>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은 각각 다른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함께 각본을 작업한 크리스티 윌슨케언스는 멘데스가 제작한 TV 시리즈 <페니 드레드풀>에 참여했다.

____ <1917>의 제작사들 중 하나인 ‘닐 스트리트’(Neal Street Productions)는 샘 멘데스가 설립한 회사다. TV 시리즈를 주로 제작해왔고, <1917>은 <어웨이 위 고>(2009) 이후 오랜만에 만든 영화다. 사명의 닐 스트리트는 샘 멘데스가 10년간 예술감독을 맡아 영국 최고의 연극 연출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 극장 ‘돈마 웨어하우스’가 위치한 거리명이다.

____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촬영 중에서 가장 골칫거리였던 건 제때 붙지 않는 담뱃불이었다. 영화 초반 5분 정도 등장하는 레슬리 중위 역의 앤드류 스콧은 계속 담뱃불을 붙이는 데에 실패해 <1917>에서 가장 많은 NG를 낸 배우가 됐다. 이 사소한 실수 때문에 거의 하루 촬영 일정을 날려버려야 만했고, 스콧은 "다시는 담배를 피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____ 샘 멘데스는 10살 무렵 1차 세계대전을 그린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1957)을 봤다. <1917>을 만들기 위해 다시 <영광의 길>을 보면서 그 유명한 참호 트래킹샷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길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____ 독일군의 퇴각은 알베리히 작전이라는 실제 사건의 일부였다. 용이한 방어를 위해 힌덴부르크선까지 물러서는 전술적 후퇴였다. 하지만 알베리히 작전은 <1917>의 배경인 1917년 4월 6일이 아닌 2월 9일부터 3월 20일까지 진행됐기 때문에 이는 고증오류다.

____ <도라 도라 도라>가 수상하고 <패튼 대전차 군단>도 후보에 올랐던 1971년 이후 근 50년 만에 전쟁영화로선 처음으로 오스카 특수효과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____ <1917>의 시간적 배경인 1917년 4월 6일은 미국이 독일과 동맹군에 선전포고 한 날이다. 프랑스 북부 전선에 있던 영국군은 이 소식을 훨씬 늦게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선 언급되진 않는다.

____ 영국군은 독일군을 ‘보체’(boche)나 ‘훈’(hun)이라고 부른다. 보체는 악당을 뜻하는 프랑스 은어 caboche에서 따왔고, ‘hun’은 적군과 민간인을 똑같이 대하는 무자비한 태도를 경멸하는 말이었다.

____ 에린모어 장군(콜린 퍼스)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게헨나로 떨어지나 왕좌에 오르나, 혼자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정글북>의 작가로 잘 알려진 루디야드 키플링의 소설 <개즈비가의 이야기>에서 따온 말이다. 게헨나는 예루살렘의 저주받은 계곡으로, 유다의 옛 왕들이 제 아이를 불에 태워 희생시킨 곳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____ 카메오로 출연한 영국의 대배우 3인방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모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에 출연한 바 있다.

____ 톰 홀랜드가 블레이크 역을 맡기로 논의됐지만 스케줄 문제로 결국 합류하지 못했다.

*** 스포일러성 정보가 있습니다. ***

____ 타오르는 교회 신을 위해 5층 높이의 2000개의 1k 텅스텐 램프가 조명으로 사용됐다. 이것이 만든 수많은 빛은 특수효과를 거쳐 ‘불타는 지옥’으로 완성됐다.

____ 스코필드가 피난처에서 만난 프랑스 여자와 그의 아기는 <1917>에 등장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____ 아기에게 들려주는 문구는 에드워드 리어의 장편시 <점블리 사람들>의 일부다. “하늘이 어둡고 여정은 길지만 우리는 결코 스스로가 경솔하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 같은 구절은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의 임무에 대한 은유라 할 만하다.

<점블리 사람들>에 실린 삽화

____ 시체가 널브러진 강은 영국 티스데일에서 촬영됐다. 주변 사람들이 시체 더미를 보고 놀라지 않도록 현장 곳곳에 안내 표지판을 세웠다.

____ 영화 종반부, 스코필드는 진격하는 영국군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내달린다. 그러던 와중 어느 병사와 부딪혀 넘어지고 곧장 일어나 다시 뛰는데, 이것은 시나리오에 설정된 게 아닌 돌발 상황이었다. 컷을 외칠 새도 없이 촬영이 계속 진행돼 보다 사실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신에서 조지 맥케이는 400m를 달렸다.

____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만나 그의 반지를 전해주는 종반부는 사실 촬영이 막 시작했을 때 찍은 신이다.

____ <1917>은 주인공이 나무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맺는다.

____ 어느 엑스트라의 말.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나무를 보고 웃음을 못 참겠더라. 촬영 현장에 화장실이 너무 멀어서 수많은 엑스트라들이 그 나무에 오줌을 눴다. 우리 모두 주인공이 그 나무에 앉는 장면이 엔딩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