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가 1978년 발표한 <시체들의 새벽>이 지난 4월 15일, 처음 한국 극장가에 걸렸다. 로메로의 데뷔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속편격으로 작품으로,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로메로의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시체들의 새벽>에 관한 소소한 사실들을 정리했다.


____ 1970년대 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포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다리오 아르젠토는 조지 로메로의 열렬한 팬이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속편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아르젠토는 그가 자기 고향인 로마로 나와 아무 방해받지 않고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또한 밴드 고블린과 함께 영화 사운드트랙을 직접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작비를 마련하는 걸 적극 돕기도 했다. 두 감독은 1990년 공동 연출작 <검은 고양이>를 내놓기도 했다.

조지 로메로와 다리오 아르젠토

____ 특수분장을 담당한 톰 사비니는 좀비들의 피부를 회색으로 정했다. 조지 로메로의 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흑백영화여서 피부톤을 굳이 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사비니는 좀비의 얼굴이 대부분 시퍼렇게 보여 명백한 실수였다고 털어놓았다.

____ 조지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톰 사비니와 작업하고 싶었지만 사비니가 베트남 전쟁의 종군사진가로 복무하는 중이라 함께하지 못했다. 다행히 <시체들의 새벽>에선 사비니가 참여할 수 있었고, 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통해 보다 참혹한 비주얼을 연출할 수 있었다.

톰 사비니

스콧 라이니거와 켄 포리

____ 조지 로메로는 로저 역에 스콧 라이니거를 캐스팅 하는 걸 망설였다. 이미 피터 역에 섭외해놓았던 켄 포리와 키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라이니거는 처음 15분만 지나면 아무도 그런 것따위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로메로를 설득해 배역을 따냈다.

____ 스콧 라이니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할머니는 <시체들의 새벽>을 극장에서 보겠노라고 고집을 부려 결국 라이니거가 동행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공동주택 신에서 나가고 싶으시냐고 물었고 결국 그때 극장을 나섰다. 10분도 자리를 지키지 못한 셈.

____ 사냥꾼, 응급 요원, 군인들이 좀비를 쏘는 야외 신은 현지인의 지원을 통해 완성될 수 있었다. 사냥꾼은 직접 자기 무기를 촬영장에 가져오고, 방위대가 장비를 마련하고, 경찰이나 소방대원이 참여했다.

____ 사냥꾼들이 마시는 ‘아이언 시티 비어’는 피츠버그에서 한때 잘나가던 맥주였다. 조지 로메로의 영화사 ‘레이튼 이미지’는 60년대 말부터 몇 년간 아이언 시티 비어의 TV 광고들을 제작한 바 있다.

____ 피터를 공격하는 꼬마 좀비들은 톰 사비니의 실제 조카들이 연기했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를 통틀어 유일하게 달리는 이들은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인 좀비 걸음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____ 좀비 배우들은 촬영 중에 쇼핑몰 2층의 사진 부스에서 좀비 분장한 자기 모습을 찍어서 부스 앞에 놓인 샘플 사진들을 보다 엽기적인 것으로 교체했다.

____ 펜실베니아의 실제 쇼핑몰인 '몬로빌 몰'에서 1977~8년 겨울에 촬영됐다.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인 3주간은 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지는 신들을 찍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데에 너무 많은 수고가 따랐기 때문이다.

몬로빌 몰에서의 촬영은 영업을 마친 밤 10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마쳐야 했다. 오픈 시간이 아침 10시 30분이긴 했는데, 6시가 되면 장내에 음악이 흘러나왔고 아무도 그걸 끄는 방법이 몰랐기 때문이다.

촬영을 마치면 좀비 배우들은 분장한 채 그대로 주변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그런 일상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들 생각하긴 했지만, 종종 그로 인한 사고도 있었다. 하루는 술에 취한 배우들이 골프 카트를 훔쳐 대리석 기둥에 충돌시켜 7천 달러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

현재 몬로빌 몰

____ 미국영화협회는 하드코어 포르노에 붙는 X등급을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조지 로메로는 어떤 편집도 용납하지 않고, 배급업자들을 설득해 등급 없이 영화를 개봉시켰다.

____ 영화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은 대부분 제작진의 친구나 친척이었다. 현금 1달러와 도넛 하나, 그리고 <시체들의 새벽> 티셔츠를 받았다고 한다.

게일른 로스

____ 게일른 로스는 촬영 중에 비명 지르는 걸 거부했다. 자기가 연기한 프랜은 강한 여성 캐릭터라 만약 소리를 지르게 된다면 그의 강인함이 무의미해질 거라고 판단했다. 조지 로메로가 로스에게 소리 지르라고 지시했을 대, 로스는 로메로에게 즉시 제 의사를 피력했고, 로메로는 다신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____ 게일른 로스에게 프랜이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 타는 짧은 신은 재앙과도 같았다. 로스는 이력서에 아이스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고 적어놓긴 했지만 20년 가까이 타본 적이 없었다. 스케이트 타는 법을 가르치는 링크 매니저가 소리소리 질러가며 지시를 하는 바람에 한 바퀴도 겨우 돌았다고. 이 아이스링크는 몬로빌 몰 안에 실제 있던 공간이었고, 이후 푸드코트가 됐다.

____ 문에 끼이는 수녀 좀비는 원래 죽는 걸로 설정됐는데, 조지 로메로가 해당 배우를 마음에 들어해 문에서 빠져나오도록 바꾸었다.

____ 프랜이 홀로 화장에 열중할 때 "모든 고객님들에게 알립니다.." 하며 쇼핑몰에서 울리는 방송은 당시 조지 로메로의 부인이 녹음한 것이다.

____ 주인공들은 쇼핑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좀비들로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다. 총기 상점은 사실 몬로빌 몰의 일부가 아니었다. 피츠버그 시내의 가게에서 촬영한 후에 쇼핑몰에 입점된 가게처럼 보이도록 편집했다.

____ 피터는 ‘시체’ 시리즈에서 처음 언데드를 ‘좀비’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폭주족들이 쇼핑몰에 쳐들어오기 전 “그들이 문을 열면 여기에 수천 명의 좀비가 올 거야”라고 말한다.

____ 폭주족을 연기한 배우들은 실제 파간스 모터사이클 클럽의 멤버들이다. 직접 자기 오토바이를 가지고 와서 연기에 임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속 마릴린 이스트먼

____ 조지 로메로와 존 루소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떻게 좀비를 죽일지 고민했고, 주연 배우이자 분장을 담당한 마릴린 이스트먼은 얼굴에 파이를 던지는 건 어떻냐고 농담처럼 말했다. 이것이 <시체들의 새벽> 속 파이 격투 신의 기원이 됐다.

____ 스콧 라이니거는 로저가 에스컬레이터 사이를 슬라이딩 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했다. 이 설정은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____ 영화에 쓰인 피는 3M이 식용 색소, 땅콩 버터, 사탕수수 시럽을 섞어서 제작했다. 톰 사비니는 이게 너무 화사해 보여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조지 로메로는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만화책 같은 스타일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____ 톰 사비니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폭주족 리더 블레이드도 연기했다. 트럭 창문을 깨고 로저에게 총을 맞는 좀비 역시 사비니다.

타소 스타브라키스

____ 적은 예산 때문에 운전자 외엔 스턴트 배우를 고용하지 못해, 톰 사비니와 그의 동료인 타소 스타브라키스가 스턴트 역할까지 해냈다. 전문 스턴트가 아니라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____ 톰 사비니는 친구인 짐 크루트를 헬리콥터 좀비 역에 섭외했다. 이마가 좁기로 악명높았던 친구라 헬리콥터 날개에 머리가 잘리는 분장을 원활히 소화할 수 있었다.

____ 조지 로메로는 데이비드 엠지의 좀비 걸음 연기가 ‘시체’ 시리즈 통틀어 최고임은 물론 고전 호러 스타 론 채니의 연기에 비견할 만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드 엠지 / <오페라의 유령> 속 론 채니

____ 처음 개봉됐을 때 15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보도됐다. DVD 코멘터리에서 프로듀서 리차드 루빈스타인은 해외 바이어들 때문에 부풀려졌고, 실제론 그 1/3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____ 5500만 달러를 벌어들여 '시체' 시리즈 중 가장 큰 수익을 거둔 작품이 됐다. 조지 로메로는 자기가 원했던 비전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인 흡혈귀 영화 <마틴>(1977)을 작업한 경험이 <시체들의 새벽>의 동력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