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오덕후>덕후. 아마도 ‘덕후’라는 말은 이런 변화 과정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십덕후라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어감은 별로네요. 뜬금없이 덕후 이야기를 꺼낸 건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배우, 감독들 가운데서도 덕후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영화계 성덕(성공한 덕후)들을 만나봅시다.
국내편
류준열
축덕, 고레에다 히로카즈 덕후
류준열은 축덕(축구 덕후)입니다. 박지성 선수의 팬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덕질 하러 영국까지 가서 EPL 경기 직관하다가 중계방송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축구 게임에 빠져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를 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연예인 축구단 활동도 합니다.
류준열은 배우다운 면모도 보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어마어마하게 좋아합니다. 일본어로 된 시도 써서 고레에다 감독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올해 7월에는 내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함께 <태풍이 지나가고> 씨네토크에 등장하면서 성덕 인증했습니다.
심형탁
도라에몽 덕후
솔직히 배우 연예인 덕후하면 이분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심형탁은 연예인 덕후의 아이콘입니다. <극장판 도라에몽 : 진구의 우주영웅기> 본편 더빙에 특별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덕후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시영
권투 덕후
이시영은 건프라 덕후로 처음에 알려졌습니다.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방송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건프라는 사실 한줌밖에 안 되는 덕후들 사이에서는 좀 흔한 편입니다. 오히려 권투가 더 이시영의 덕질 생활을 빛나게 합니다. 비록 지금은 선수생활을 접었지만 그녀는 한때 인천시청 선수로 활약했으며 2013년에는 48kg급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이시영 주연의 멋진 권투 영화 나오면 꼭 볼 겁니다.
김수현
볼링 덕후
이시영과 비슷한 케이스가 김수현입니다. 얼마 전 프로 볼러 선발전에 출전해 1차전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김수현이 11월10일 개봉 예정 영화인 <스플릿>에 출연했으면 딱인데 좀 안타깝네요. <스플릿>은 도박 볼링의 세계를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박해진
운동화 덕후
운동화 좋아하는 배우, 가수 많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박해진이 운동화를 보관한 방 사진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냥 거기는 신발 매장이었습니다. 드라마에 이어 내년 개봉 예정인 <치즈 인 더 트랩>에서도 박해진은 유정을 연기합니다. 영화에 운동화 많이 신고 나올까요? 어쩐지 박해진 출연하면 신발만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신하균
만화, 애니, 프라모델 덕후
좀 의외의 인물이었습니다. 신하균은 책을 볼 것 같았거든요. 어쨌든 신하균은 최근까지도 프라모델 조립 등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확인은 불가능한 듯하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 덕후로 알려졌습니다. 데프콘과 경쟁 관계인가요? 아, 신하균운 레이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아스카짱을 사랑하는 데프콘과는 겹치지 않네요. 호러 영화 마니아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심은경
서태지 덕후
배우 심은경은 나이에 비해 좀 어른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태지 덕후라고 합니다. 2008년 ETPFEST 공연을 본 뒤로 팬이 됐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2008년 서태지가 오랜만에 등장한 휴대전화 광고에서 서태지를 못 알아보는 연기를 (1994년생이니 15살 정도였던) 심은경이 했다는 겁니다. “근데 아저씨 누구세요?”라는 대사가 기억납니다. 2012년 서태지의 8집 활동을 집대성한 DVD <Record of 8th - 398일의 기록>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합니다. 역시 성공한 덕후라고 할 수 있겠죠.
김태리
김민희 덕후
<아가씨>의 아가씨를 사랑한 상대역 숙희를 연기한 김태리는 김민희 덕후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오디션에서 김태리에게 좋아하는 배우를 묻자, 김민희라고 대답한 일화부터 영화 촬영 기간 내내 그야말로 김태리는 덕질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가씨>의 제작발표회에서 김태리는 자신이 김민희 덕후라고 공개해버렸습니다. 김태리의 덕질을 보며 덕통사고 당해 태리 입덕한 분들도 많을 듯. 다음 영화 <리틀 포레스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지진희
레고 덕후
이 잘생긴 배우가 레고 덕후였다니. 사실 이 포스팅을 위해 인터넷 검색하다가 처음 알게 됐습니다. 드라마에 본인 레고를 갖고 나오기 시작하더니 신세계 백화점의 의뢰를 받아 백화점 건물을 똑같이 재현한 레고를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가방도 만들고 손재주 많은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2017년 개봉 예정인 <레고 배트맨 무비> 더빙하시면 좋겠습니다.
해외편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덕후
덕 중에 덕은 양덕이라 했던가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덕업일치의 산증인입니다. 원래부터 영화 덕후여서 영화학교에 진학했다가 자퇴한 타란티노는 덕질 겸 생계를 위해 비디오 가게 알바생이 됐습니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영화를 소개해주면서 유명해졌고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감독 데뷔도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 <펄프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타란티노 감독과 그에 못지 않은 영화 덕후 봉준호 감독이 만나면 끝도 없는 영화 얘기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옆에서 이 두사람의 얘기를 듣는 게 제 소원입니다.
안노 히데아키
오타쿠 1세대
성공한 덕후는 성공한 덕후를 낳습니다. 덕후를 양산해낸 장본인인 안노 히데아키도 사실은 덕후였습니다. 덕질을 하다보니 덕후를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어버린 거죠. 그가 연출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덕후는 반으로 줄지 않을까요. 안노 히데아키는 오타쿠라는 말이 없던 시절부터 덕질을 한 1세대 덕후입니다. 중학 시절에는 순정만화에 빠졌고, 고교 시절엔 아마추어 특촬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자위대에 체험 입대를 자처한 밀리터리덕후이기도 합니다.
피터 잭슨
톨킨 덕후
여기 또 성공한 덕후가 덕후를 생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영화사에 남을 3부작이 된 이유가 다른 게 아닙니다. J.R.R. 톨킨의 소설은 영화화하기 힘들다고 했을 때 엄청난 톨키니스트(J.R.R. 톨킨 팬)였던 피터 잭슨이 나섰습니다. 그에게 <반지의 제왕> 연출은 순도 100퍼센트의 덕질이었던 거죠.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더 영화를 잘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데이비드 테넌트
<닥터후> 덕후
<닥터후>를 보고 자라서 닥터가 됐습니다. 덕업일치, 성덕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국 배우 데이비드 테넌트는 드라마 <닥터후>의 10대 닥터로 출연하게 됩니다. 한번 덕후는 영원한 덕후인 것 같습니다. 덕질의 달인답게 데이비드 테넌트는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합니다. 2015년 미국 드라마 <제시카 존스>에 출연하면서 성덕의 레벨을 한 단계 올렸습니다. 이 덕후 아저씨를 스크린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이먼 페그
SF 덕후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사이먼 페그를 봤습니다. 거기엔 할리우드 스타가 아닌 덕후 영국인 아재가 있었습니다. 사이먼 페그는 <스타워즈> 덕후, <스타트렉> 덕후더군요. 스페이스 오페라 덕후, 사이먼 페그는 <스타워워즈>, <스타트렉> 모두 출연하는 덕업을 이뤄냈습니다. 아, 단순히 출연만 하는 게 아니죠. 시나리오도 씁니다. 능력자 덕후 인증입니다.
제이콥 트렘블레이
<스타워즈> 덕후
최근에 본 가장 귀여운 덕후 제이콥 트렘블레이를 소개합니다. 올해 초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룸>의 잭 역으로 오스카 시상식에 초대됐습니다. 어마어마한 스타들 속에서 제이콥의 시선을 끈 건? 바로 R2D2, C3PO, BB-8이었습니다. 눈을 떼지 못하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그 장면, 정말 귀여웠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