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프로듀서(PD) 찬실(강말금)이가 직업을 잃은 그 후를 그리고 있는데요. 찬실이는 영화를 같이 만들어오던 지감독(서상원)이 회식 중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자 일이 뚝 끊깁니다. 일견 찬실이의 고용형태는 프리랜서(자유근로소득자, 자유계약자)로 보이는데, 찬실이의 고용관계가 법적으로 프리랜서가 맞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지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일이 끊겨 친한 동생인 여배우 소피(윤승아)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던 찬실이에게 지감독 사망 전 고사까지 지냈던 영화제작사 박대표(최화정)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찬실이는 영화 일이라고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박대표를 만나러 가지만 예상과 달리 박대표로부터 더 이상 일을 같이할 수 없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고 심지어 왜 지감독하고만 주구장창 일을 했냐는 타박까지 받는데, 박대표의 이러한 일방적 통보가 정당한지 여부는 찬실이의 근로자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 찬실이가 근로자성이 부정되어 프리랜서라면 박대표와 자유계약(계약 명칭은 상관없음)을 체결한 것이므로 박대표는 계약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고, 다만 이때도 계약서에서 미리 정한 종료사유는 있어야 돼요. 종료사유가 없는데도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면 찬실이가 박대표를 상대로 계약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영화를 같이 만들기로 한 감독의 사망이 PD와의 계약 종료사유에 해당할지는 결국 계약서에 어떻게 정했는지가 주요한 판단기준이 됩니다.

만약 찬실이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면 박대표 통보의 법적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박대표는 일을 같이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생겼으니까 찬실이가 양해해달라면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데, 찬실이가 특별한 사정이 뭐냐고 따져 묻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찬실이와 박대표는 근로관계 종료에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렇다면 박대표의 통보는 해고가 되는 것이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는데 박대표는 찬실이한테 갑자기 연락해서 카페에서 만나 구두로 해고 사실을 통보하여 절차상 위법하고, 해고사유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정에 대해서는 지감독 영화는 지감독만 만들 수 있고 찬실이가 했던 역할은 대체가능성 있는 업무였기 때문에 더 이상 찬실이가 필요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합니다. 박대표가 말한 이러한 해고사유는 정당할까요. 해고사유가 정당한지, 즉 해고가 적법한지 여부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고 사안마다 따져봐야 하는데, 판례가 제시하는 내용이 기준이 돼죠. 판례는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있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면서, 해당 사용자의 사업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해당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 직무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지감독의 사망이 찬실이의 해고사유인데 이것이 정당한 해고사유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박대표는 부당해고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당해고를 논의하기 전에 찬실이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근로자로 인정되어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데, 근로자는 계약의 형식과 상관없이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등 실질을 따져서 판단해요. 영화제작에서 현장스태프들에 대해서는 비록 근로계약서가 아닌 도급계약서를 체결해도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으나, 감독급 스태프에 대해서는 제작사와 지휘·감독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근로자성 인정에 대해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 판결이 감독급 스태프에 대해서도 영화제작사와 근로관계를 인정했는데, 감독급 스태프(미술감독, 현장편집기사, 촬영감독, 녹음감독 등)가 같이 일할 직원을 추천하고 영화제작사나 PD로부터 거의 지휘를 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한 측면이 있지만, 급여가 기간을 정해 총액으로 약정되서 특정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정 등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이죠. 그렇다면 찬실이는 PD인데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을까요. PD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하지만, 박대표가 찬실이의 업무를 누구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처럼 묘사하였고(만약 찬실이와 근로관계를 부정하려면 찬실이의 업무는 비대체적인 전문성이 있어서 영화사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게 논리적이에요), 주인집 할머니(윤여정)의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돈도 관리하고 사람들도 모으는 일 등을 하는 사람’이라고 찬실이가 설명하는 업무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PD라는 명칭에만 구애되지 말고 영화사로부터 급여를 어떤 식으로 받는지, 업무에 대한 감독을 받는지, 사무실을 제공받고 출근시간이 대체로 일정한지, 업무에 필요한 자재 및 집기류 등 비용을 제공받는지 등 제반사정을 모두 따져서 찬실이도 근로자라고 주장할 여지는 있어요.

영화에서 박대표의 계약관계종료 또는 해고 통보는 영화 분위기에 맞게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프리랜서의 극단적인 고용불안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 상당수의 직업이 업무 특성상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지만 그것만으로 곧바로 근로자성이 부정되지는 않아요. 찬실이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PD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데 아직은 척박한 현실이 영화 분위기와 달리 조금 서글펐달까요.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