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습니다. ‘최순실게이트’로 온나라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건을 칭할 때 ‘게이트’라는 말이 붙는지 아시나요?

워터게이트 호텔

게이트의 원조는 1972년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본부를 불법 도청할 것을 지시합니다. 5명이 호텔에 잡입했다가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닉슨 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 부정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드러났습니다. 결국 1974년 8월 대통령탄핵결의가 가결됐고, 4일 후 닉슨은 사임했습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임기 도중 사임한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이 됐습니다. 워터게이트 이후 각종 비리, 의혹이 있는 사건에 ‘게이트’라는 말을 붙이게 됐습니다. 워터게이트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속 각종 게이트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워터게이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은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탄생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해 특종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입니다. 이들은 30여년 후에야 누군지 밝혀지는 익명의 제보자 ‘딥 스로트’(Deep Throat)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갑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저널리즘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최근 개봉한 <스포트라이트> <트루스> 같은 영화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앨런 J. 파큘러 감독의 연출도 훌륭하지만 <대부> 등에 참여한 고든 윌리스 촬영감독의 화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딥 스로트를 연기한 할 홀브룩.

‘딥 스로트’의 정체는 2005년에야 밝혀졌습니다.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가 내부고발자였습니다. ‘딥 스로트’는 원래 유명 포르노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내부고발자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7년 개봉예정인 영화 <펠트>에서 리암 니슨이 마크 펠트를 연기합니다.

<포레스트 검프>

워터게이트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한 영화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이외에도 꽤 많습니다. 미국 현대사가 다 집약되어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장면이 있습니다. 유명인이 된 검프가 닉슨 대통령을 만나고 워터게이트 호텔에 묵게 됩니다. 그는 우연히 맞은편의 객실에 손전등을 비추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검프는 프런트에 전화해서 “맞은편 방이 정전된 것 같은데 사람 좀 보내주세요”라고 합니다. 영화에 따르면 검프 덕분에 워터게이트 사건이 시작된 셈입니다.

<프로스트 VS 닉슨>
<닉슨>

그밖에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을 다룬 영화로 올리버 스톤 감독이 연출하고 안소니 홉킨스가 닉슨을 연기한 1995년작 <닉슨>, 10대의 눈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풍자한, 커스틴 던스트와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1999년 영화 <>, 닉슨과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의 인터뷰를 영화화한 <프로스트 VS 닉슨>(2008) 등이 있습니다. 


모니카게이트

<왝 더 독>

모니카 르윈스키를 아시나요? 1997년 12월,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이 일어납니다. 르윈스키 이외에 클린턴 대통령과 관계가 있던 여자는 더 있었습니다. 결국 모니카게이트로 인해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왝 더 독>에서 정치 해결사 브린을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로 베리 레빈슨 감독의 <왝 더 독>이 있습니다. <왝 더 독>은 대통령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웃 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을 덮기 위해 여론을 조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성추행 사건 대신 알바니아 전쟁으로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만듭니다. <왝 더 독>은 미국에서 1997년 12월 개봉했습니다. 모니카게이트 이전에 제작됐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예측한 일종의 ‘성지순례’ 영화인 셈이죠. 실제로 모니카게이트가 터졌을 때 미국은 이라크와의 군사적 긴장감이 형성됐습니다.

<왝 더 독>에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모스를 연기한 더스틴 호프만.

<왝 더 독>은 신문, 방송 등 미디어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TV 속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과연 진실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인 ‘Wag the Dog’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하극상 혹은 주객전도의 경우를 말합니다. 주식시장에서는 선물시장에 의해 현물시장이 좌지우지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프리즘게이트

<시티즌 포>

프리즘게이트는 ‘스노든 어페어’로 더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전직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가디언>과 <워싱턴 포스트>를 통해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영국의 GCHQ 등의 정보기관이 전세계 일반인들의 통화기록, 인터넷 사용정보 등을 프리즘(PRISM)이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무차별 수집, 사찰해온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시티즌 포>

프리즘게이트 사건 자체를 함께한 영화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과 <가디언>의 기자 그렌 그린왈드 등이 직접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시티즌 포>입니다. 로라 포리트러스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멘터리는 스노든이 폭로를 결심하고 처음 감독과 접하는 과정부터 언론에 폭로한 이후 은둔하고 있던 홍콩을 빠져나가는 과정까지 프리즘게이트 전체를 담았습니다. <시티즌 포>는 주로 호텔방 안에 은둔 중인 스노든과 기자들을 담은 단조로운 화면으로 구성됐지만 언제 어디서든 내가 감시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대단한 영화입니다. 참고로 ‘시티즌 포’는 스노든이 감독과의 채팅에 사용한 인터넷 아이디입니다.

<시티즌 포>의 스노든.
<스노든>에서 스노든을 연기한 조셉 고든 레빗.

국내 개봉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올리버 스톤이 연출하고 조셉 고든 레빗이 스노든을 연기한 <스노든>이 북미에서 지난 9월 개봉했습니다. 7월 개봉한 <제이슨 본>에서도 해킹을 당한 CIA의 요원이 “스노든 때보다 더 심각합니다”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국정원게이트

<자백>

국정원게이트는 지난 대선 이후의 최대 이슈였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 사건입니다. “댓글 잘 달면 국정원 취직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죠. 아직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영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있습니다. 최승호 피디와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만든 다큐멘터리 <자백>입니다. 최 피디와 뉴스타파팀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사건이 조작임을 밝혀냅니다. 대법원에서 유씨의 무죄가 확정된 이후 최 피디는 국정원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찾아갑니다. 최 피디는 원 전 원장에게 유우성씨에게 사과하시라고 끈질지게 따라붙습니다. 원 전 원장은 과연 사과를 했을까요?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사건

<모비딕>에서 사회부 기자 이방우를 연기한 황정민.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에는 게이트라는 말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모비딕>이 있어서 입니다.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게이트라는 말만 붙지 않았을 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퇴진 운동으로 번질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보안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 약 1300여명을 불법 사찰하고 있었습니다. 은밀한 사찰을 위해 보안사는 ‘현실문화사’라는 가짜 잡지사를 운영했으며 서울대 근처에 ‘모비딕’이라는 위장 카페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모비딕>에서 양심선언 군인 윤혁을 연기한 진구.

황정민, 진구, 김민희, 김상호 등이 출연하는 <모비딕>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를 기본 골자로 만든 영화입니다. 1994년 서울 근교의 발암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발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는 이 사건의 뒤를 캡니다. 그때 탈영한 고향 후배 윤혁(진구)에게 발암교의 진실이 담긴 자료를 건네받습니다. 이에 이방우는 동료기자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 등과 특별취재팀을 꾸립니다.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음모론 영화로 <모비딕>은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말은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는 평이 많습니다. “니네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다고. 니네 세상이 올 것 같애?”라는 이방우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최순실게이트

<내부자들>

올해 2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을 <내부자들> 속 안상구(이병헌)에 빗대서 오버랩시킨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조 전 비서관과 관련된 2014년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청와대는 “시중에 떠도는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민경욱 대변인)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최순실게이트가 터졌습니다.

<한국일보>는 조 전 비서관의 발언을 전하면서 “<내부자들>의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백윤식)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정치 깡패 안상구(이병헌)의 뒷거래 판을 짜며 여론을 움직이는 인물이다. 비선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씨와 오버랩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내부자들>은 ‘헬조선’의 온갖 게이트에 다 대입가능한 만능영화인 것 같습니다.


XXX 게이트

<마스터> 포스터.

12월 개봉 예정 영화 <마스터>의 포스터를 보면 “건국 이래 최대 게이트”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이 연출하고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등이 출연하는 이 영화가 최순실게이트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을까요. 일단 배우들의 조합은 충분히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사는 지금, 솔직히 말하면 어떤 영화보다 뉴스가 더 재밌습니다. 이럴 때는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리, 의혹, 음모는 영화 속에서만 보고 싶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