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심할 수 없지만, 따뜻해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상큼한 봄 날씨에 어울리는 로맨스 코미디를 꺼내보는 건 어떨까. 나 혹은 주변 친구들을 보는 것 같은 친밀감이 있으면서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최근 몇 달간의 답답했던 마음을 해소해 줄 것 같다. 보는 데도 부담 없게 에피소드당 30분만 투자하면 되는 드라마 10편을 찾아봤다. 마냥 웃고 즐길 수 있는 시트콤부터 현실적이라 폭풍공감을 끌어내는 드라메디까지, 로맨스를 베이스로 하는 해외 시리즈를 만나보자.


크래싱(Crashing, 2016)

<플리백>, <킬링 이브>를 잇따라 성공시킨 피비 월러 브리지가 각본 및 제작, 주연으로 참여한 6부작 드라마. <크래싱>은 폐업한 병원을 개조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청춘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엇갈리는 정신없는 일상을 담아낸다. 피비 월러 브리지답게 캐릭터들 저마다 무례하거나 어리숙하거나 쿨하거나 하는 독특한 개성이 넘치며, 낭만적이면서도 뒤틀린 유머 감각이 종잡을 수없이 흐른다. 고구마를 안기며 혼란에 빠지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게이 커플과 중년(?)의 로맨스를 곁들인다.


연애의 부작용(Lovesick, 2014~2018)

성병에 걸린 남자가 옛 여자친구들에게 자신의 병명을 알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19금 설정에 먼저 눈길이 간다. <연애의 부작용>은 자극적인 소재로 호기심을 끌지만, 이야기의 주인공 딜런은 어딘가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이고, 은밀한 고백은 흥미 위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성병을 계기로 실패로 끝난 과거의 연애와 불안한 현재를 부드럽게 교차하며 사랑과 우정, 상실의 감정을 로맨틱하게 탐구한다.


런(RUN, 2020)

<크래싱>, <킬링 이브>, <플리백>에 참여해온 비키 존스가 각본을 쓰고, 피비 월러 브리지가 제작 및 조연에 참여한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런>은 17년 전에 독특한 약속을 했던 두 남녀가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루비와 빌리를 다시 만나게 한 약속이란, 둘 중에 한 명이 "Run"이란 메시지를 보내고 다른 한 명이 똑같이 응답하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뉴욕을 떠나 미국을 횡단하는 기차에서 만난다는 것. 메릿 웨버와 도널 글리슨이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의 삶을 내팽개치고 일탈에 나선 옛 연인으로 호흡을 맞춘다.


우리 둘이 날마다(little things, 2016~)

뭄바이에 사는 동거 커플 카브야와 드루브의 일상을 그린 드라마. 성격도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이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은 주변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스럽다. 또한 직장과 미래, 가족/친구 관계 등 두 사람의 일상을 풍부하게 담아내 더욱 공감대를 높인다. 당초 웹 시리즈로 제작해 공개했으나 높은 인기를 끌면서 넷플릭스로 보금자리를 옮겨 시즌 3까지 나왔다. 극중에서 드루브를 연기한 드루브 세갈이 각본에도 참여했으며, 카브야를 연기한 미틸라 팔카르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 <젓가락 행진곡>에서도 볼 수 있다.


뉴 걸(New Girl, 2011~2018)

시즌 7을 끝으로 종영한 <뉴 걸>은 어딘가 부족한 매력이 있는 청춘 남녀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다. <500일의 썸머>의 주이 데샤넬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남자 셋이 사는 아파트의 룸메이트가 된 제스 역을 맡아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극을 이끈다. 전통적인 형태의 청춘 시트콤에 가깝고, 매 에피소드마다 벌어지는 우당탕탕 소동극은 개성 강한 캐릭터와 어우러져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프린스, 테일러 스위프트, 딜런 오브라이언, 메간 폭스, 저스틴 롱, 조시 게드, 제이미 리 커티스 등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파리에선 사랑을(The Hook Up Plan/Plan Coeur, 2018~2019)

친구가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삽질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리에선 사랑을>의 샤를로트와 밀루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기로 한다. 보기만 해도 훈훈하고 다정한 남자 쥘을 상심에 빠져 연애 고자가 될지도 모를 엘자 앞에 나서게 한 것. 단, 그 남자의 직업이 좀 수상쩍다. 엘자가 완벽한 이상형이라며 흠뻑 빠지는 쥘의 직업은 남성 접대부인 것. 두 시즌이 공개된 <파리에선 사랑을>은 친구의 발칙한 계획으로 만나게 된 엘자와 쥘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극중 쥘을 연기한 마르크 루크만은 넷플릭스에 있는 또 다른 프랑스 시리즈 <산장의 비밀>에서도 볼 수 있다.


걸스(Girls, 2012~2017)

<걸스>는 <섹스 앤 더 시티>의 밀레니얼 세대 버전을 보는 것 같다. 부모님의 재정 지원이 끊긴 작가 지망생 한나, 미술관에서 일하며 친구들 중 가장 안정된 생활을 하는 마르니,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자유분방한 히피걸 제사, 섹스 경험이 없는 걸 콤플렉스로 여기는 소샤나, 뉴욕에서 살아가는 네 여성의 사랑과 우정,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다. 2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시즌 6까지 방영됐고, 극중 네 친구 사이의 중심인물 한나를 연기한 레나 던햄은 연출, 각본, 제작까지 두루 섭렵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루킹(Looking, 2014~2015)

비록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2019년 가디언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TV 쇼 100'에 오를 만큼 호평을 받은 드라마. <루킹>은 그동안의 퀴어 드라마가 성 정체성을 자각한 주인공의 사랑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혼란의 성장 서사에 주목한 것과 달리,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커밍아웃하고 자신만의 삶을 가진 게이들의 일상을 그린다. 두 시즌으로 종영한 이후 TV 영화를 제작해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던 패트릭이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마인드헌터>, <겨울왕국>의 조나단 그로프가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는 게임 디자이너 패트릭으로 등장한다.


필 굿(Feel Good, 2020)

마약 중독에서 회복 중이나 여전히 불안한 메이와 이제껏 이성만 만나왔던 조지의 우여곡절 로맨스. 메이의 공연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나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메이는 마약 중독의 과거에 솔직해지는 게 겁나고, 조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새 연인을 알리는 게 망설여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배우 메이 마틴이 조 햄슨과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듯한 로맨스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플리즈 라이크 미(Please Like Me, 2013~2016)

조시는 흔히 말하는 잘 생긴 외모와 거리가 멀고 성격은 어쩐지 소심해 보인다. 게다가 여자친구 클레어는 이별을 고하며 게이일 거라고 말한다. 호주에서 온 드라마 <플리즈 라이크 미>는 뒤늦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한 조시의 평범하면서도 엉뚱한 일상을 담아낸다. 조울증에 빠져 자살시도를 한 엄마, 젊은 애인과 새 삶을 꾸린 아빠, 조쉬와 성격은 전혀 다른 절친 톰, 구 여친에서 편한 친구가 된 클레어 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조시를 볼 수 있다. 볼수록 마음 따뜻해지는 매력을 전하는 조시를 연기한 조쉬 토마스가 연출과 각본에 참여했다.


에그테일 에디터 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