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이야?”(인턴 홍도’)

아니, 낭만닥터!”(인턴 윤복’)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간담췌외과 교수 이익준(조정석)을 두고 쌍둥이 인턴 홍도(배현성)와 윤복(조이현)이 나눈 대화다. 비유도 적절하지, 실제로 익준을 보다 보면 낭만닥터라는 수식어는 본래 김사부가 아닌 그의 것이었나란 착각이 인다. 의대 입학 1, 졸업도 1, 승진도 1, 나이트에서 노는 것도 1등인 인생을 살아온 익준은 그럼에도 허세가 없고 유들유들 명량 쾌활하다. 그는 콤플렉스로 자신을 괴롭히지도, 열등감으로 폭주하지도, 선입견으로 타인을 재단하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일을 말끔히 처리해 주는 홍반장의 후예 같은 그는 심지어 후배에게 수술을 도와달라 구애하며 ‘PICK ME’ 춤도 춘다. 그야말로 이익준 is 뭔들이다.

그런 익준의 매력은 상당 부분 조정석에게 빚지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캐릭터와 배우가 숙명적으로 만나 서로에게 시너지를 내고 있는 케이스다. 익준은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유하고 있는 자질을 아낌없이 투척할 수 있게 해주는 멍석이고, 그런 멍석을 만난 조정석은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게끔 이익준을 살아낸다. 음원차트를 섭렵하는 노래 실력은 또 어떠한가. 조정석은 틈새를 노리는 시간차 연기가 발군인 배우다. 별거 없이 흘러버릴 대사 혹은 감정도 조정석을 거치면 유머가 되고 페이소스가 된다. 이는 그와 호흡을 맞추는 상대 배우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안긴다. 가령 손 화상으로 장갑을 끼고 <내부자들> 안상구(이병헌) 흉내를 내는 익준을 보면서 , 얘 개그 너무 좋다라고 빵 터진 송화(전미도)의 리액션을 떠올려보자. 이건 계획된 리액션이라기보다 조정석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나온 전미도의 진심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날것의 감정들이 드라마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관객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호흡과 타이밍으로 웃기고 감동을 안기고 마는 익준의 낭만닥터 적면모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에 수두룩하다.

영화 <건축학개론>

조정석이 구사하는 이러한 세부기술에 관객들은 그가 등장한 순간부터 손을 흔들어 왔다. <건축학개론> 납뜩이 때부터 말이다. 걔 혀, 혀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후략)” “아구창을 날릴까?” 등의 대사를 흩뿌리며 나타난 납뜩이의 등장은, <넘버3>로 충무로에 길이 남을 레전드 장면을 새기며 등판한 송강호에 비견되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워낙 인상이 강렬해서인지, 그의 필모에서는 납뜩이의 미래 버전으로 연결되는 인물들도 꽤 있다. 익준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의 신랑 영민, <>에서의 사기꾼 형 두식, <엑시트>의 취준생 용남은 납뜩이가 사회에 나왔다면 이러지 않았을까싶은 상상을 안긴다. 여기에서 조정석이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이라면,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인물을 변주하고 섬세한 결을 포착해 낸 점이다. 그 때문일까. 모든 캐릭터 안에 조정석이 보이지만, 그것이 진부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출세작 캐릭터에 잡아먹히지 않고, 그걸 확고한 아이덴티티로 전환시킨 건 분명 조정석의 능력이다.

그의 이러한 기술은 15초 길이의 광고에도 아주 알맞게 쓰인다. 한 커뮤니티 카페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급 궁금한 건데 조정석 야나두있잖아요. 진짜 영어 잘할까요?” 방심하고 읽다가 빵 터지긴 했는데, 희한하네, 진짜 궁금해졌다. 김혜자하면 조미료이듯, 조정석하면 야나두랄까. 몇 초 안에 소비자 마음을 얻어내는 설득의 기술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재능이 아니다. 조정석의 설득은 완벽하고 빈틈없는 사람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나도 해냈는데) , 너도 할 수 있다는 친근감. 옆집 형/오빠의 조언처럼 들리는 현실감. 그것이 조정석이 보유한 유혹의 기술이고, 그의 실제 영어 실력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유다. , 김혜자는 그래 이 맛이야광고가 그녀의 국민 엄마이미지에 상승효과를 낳은 경우지만, 다양한 캐릭터를 노리는 조정석의 경우 자칫 광고 이미지가 그의 연기 확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적당히 치고 빠지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 <관상>

친구 같고 츤데레인 납득이 유형의 캐릭터뿐 아니라, 진중하고 호흡이 길며 내면의 결을 드러내는 연기도 되는가. 된다. 조정석에게 코믹함 빼곤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녹두꽃>을 보면 된다. 방송 사상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정면으로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자기 안의 코믹함을 완전히 탈색하고 전에 없던 얼굴을 보여줬다.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백윤식 등 대단한 연기 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영화 <관상>에서도 그는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분량을 확보한 바 있다. <뺑반> 악역 캐릭터의 경우, 지나치게 인물을 코너로 밀어붙여서 살짝 아쉽긴 했으나, 새로운 캐릭터 도전으로 연기 운신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그러고 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익준을 낭만닥터로 바로 서게 하는 것. 그를 지켜보며 지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장기기증 뇌사자의 아들이 어린이날을 아버지 기일로 기억하게 할 수 없다며 적출 수술을 자정 이후로 미루는 인류애적인 면모에 숨결을 불어 넣을 때다. 온몸의 근육을 무기처럼 꺼내 쓰는 이 배우의 넘치는 끼를 어떡하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