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음악으로 돌아볼 영화는 로버트 저메키스 연출,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1994)다. "두 장의 음반에 미국의 명곡 32개가 수록"을 표방했던 <포레스트 검프> 사운드트랙은 (<라이온 킹>에 이어) 1994년 흥행 2위를 기록한 영화의 어마어마한 성공에 힘입어 1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바 있다.


Hound Dog

Elvis Presley

포레스트(마이클 코너 험프리스)는 앨라바마의 마을 그린보우에서 어머니와 둘이 산다. 빈 방이 많아 세를 놓아서 집에는 종종 여행객들로 가득해진다. 하루는 한 청년이 기타를 연주하는 것에 맞춰 "마법의 신발"을 신은 포레스트는 어기적어기적 몸을 흔든다. 선명한 구레나룻의 잘생긴 사내가 부르는 멜로디는 'Hound Dog'. 포레스트와 어머니는 TV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요란한 춤사위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본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나 나오는 이 신은 <포레스트 검프>의 두 가지 방침을 단명하게 보여준다. 포레스트가 지나온 삶의 시간을 실존인물과의 마주침을 통해 드러내고, 음악을 사용할 때도 그 음악이 발표됐던 시대와 해당 장면의 시점을 가능한 한 맞춘다는 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의 노래 'Hound Dog' 리메이크를 1956년 7월 발표해 단숨에 '로큰롤의 황제' 자리에 올라서는 초석을 닦았다.


Rebel-'Rouser

Duane Eddy

단짝 제니와 함께 길을 걷던 포레스트는 늘상 자기를 괴롭히던 애들에게 돌을 맞던 중 제니의 "어서 뛰어!"를 듣고 무작정 달리다가 자신의 다리가 멀쩡할 뿐만 아니라 아주 튼튼하다는 걸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여느때처럼 제니(로빈 라이트)와 함께 길을 걷던 포레스트(톰 행크스)는 차를 몰고 와 돌팔매질을 해대는 걸 피해 달리다가 자신의 어마어마한 달리기 실력을 알게 된다. 기타리스트 듀언 에디의 흥겨운 로큰롤 연주 'Rebel-'Rouser'는 포레스트가 차에 따라잡힐 듯 말 듯한 상황의 급박함은 물론, 결국 차보다도 빨리 달려 미식축구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다가 대학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되는 웃음이 픽 터지는 전개를 그럴 듯하게 만든다. 에디와 프로듀서 리 헤이즐우드(Lee Hazlewood)가 공동 작곡한 'Rebel-'Rouser'는 1958년 5월 발표돼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올랐다.


Blowin' In The Wind

Joan Baez

포레스트가 제니와 첫 경험을 '할 뻔'한 밤, 제니는 "존 바에즈 같은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어. 텅빈 무대 위에서 기타와 내 목소리만으로 노래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옷을 벗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인이 된 포레스트는 동료가 건네준 <플레이보이>에서 대학교 카디건을 입은 제니의 사진을 보고, 그 화보를 본 극장주의 제안으로 무대에 서게 된 제니를 보러 간다. 장막이 걷히면, 기타로 나신을 가까스로 가린 채 노래 하는 제니가 보인다. 남자 관객들은 무대 아래서 노래를 듣는둥마는둥 희롱이나 던지고 있지만, 포레스트는 "제니는 포크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뤘어요"라고 말한다. 제니가 부르고 있는 노래는 밥 딜런(Bob Dylan)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다. 정확히는, 그 노래를 발표하던 당시 딜런의 애인이었던 포크 가수 존 바에즈가 부른 'Blowin' in the Wind'다. <포레스트 검프> 사운드트랙 앨범에도 'Blowin' in the Wind'는 바에즈가 커버한 라이브 버전의 음원이 수록됐다.


For What It's Worth

Buffalo Springfield

싸이키델릭 록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 중후반 세상을 휩쓸어버릴 기세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했다. 포레스트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시퀀스에서도 싸이키델릭 명곡들이 포탄처럼 쏟아진다. 포레스트가 버바(미켈티 윌리엄슨)와 함께 베트남에 도착해 댄 중위(개리 시니스)를 만날 땐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Fortunate Son', 포레스트의 부대원들이 평범한 시골 마을을 걸을 땐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가 밥 딜런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All Along the Watchtower', 포레스트가 비가 쏟아지는 숲에서 제니한테 편지를 쓰고 히피가 된 제니가 할머니의 트레일러를 떠나는 게 교차될 땐 마마스 앤 더 파파스(The Mamas and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이 흐른다.

특히 인상적인 건 4달 꼬박 비가 내리다가 "누군가 꺼버린 듯" 그칠 때 깔리는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For What It's Worth'다. 훗날 각자의 위치에서 명장이 되는 닐 영(Neil Young)과 스티븐 스틸스(Stephen Stills)가 몸 담았던 버팔로 스프링필드는 싸이키델릭 록의 유행이 한창이던 1966년 말 첫 앨범을 발표한 포크 록 밴드다. 'For What It's Worth'가 별안간 비가 그치고 서서히 햇빛이 비추는 짤막한 풍경과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싸이키델릭 록 넘버들을 연이어 쓰다가 포크 록 밴드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를 불쑥 내밀어버리는 음악 쓰임새로써 갑자기 날씨가 변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연출 또한 아주 절묘하다.


Hello, I Love You

People Are Strange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The Doors

음악 사용 빈도수로만 보자면, <포레스트 검프> 제작진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도어즈인 것 같다. 포레스트와 버바가 빗속에서 전역하면 함께 새우잡이 배를 타기로 약속할 때 도어즈의 'Soul Kitchen'을 쓰는 걸 시작으로 영화 내내 총 5번 도어즈의 음악을 인용했다. 엉덩이에 총을 맞고 군병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탁구 채를 잡고 천부적인 탁구 실력을 깨닫는 대목에선 도어즈의 'Hello, I Love You', 'People Are Strange', '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세 곡을 신이 바뀔 때마다 짤막짤막 하게 이어붙였다. 이 노래 셋이 실제 발표된 역순 (1968년 - 1967년 - 1966년)으로 등장하는 것도 의도든 우연이든 꽤나 절묘해 보인다. 베트남에서 버바를 비롯한 전우들을 잃어버린 어두운 기운을 나름 환기시켜주는 유쾌한 시퀀스는, 댄 중위가 한밤 중에 홀로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토해내면서 뚝 끝난다. 1971년 발표된 'Love Her Madly'는, 제니가 71년에서 72년으로 넘어가는 날밤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걸 수식한다.


Mr. President (Have Pity on the Working Man)

Randy Newman

미국 탁구 대표팀으로 활약하고 전역한 포레스트는 탁구채 광고로 번 돈으로 배를 사서 새우잡이 배를 몰겠다는 버바와의 약속을 지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제니'를 내세워 새우를 잡으러 다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두 다리를 잃고 전역해 국가보조금을 받아먹으며 폐인 같은 시간을 보내던 댄 중위는 어느 날 밤 지나가듯 포레스트가 선장이 되면 자기가 1등 항해사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러 포레스트를 찾아온다. 포레스트에게 옆자리를 내어주었던 두 친구 제니와 버바가 그의 곁을 떠났지만, 댄 중위가 포레스트의 외로운 항해를 함께 하는 벗이 된 것이다. 영화 팬들에겐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음악으로 친숙한 랜디 뉴먼의 'Mr. President'는 베트남의 비극을 가슴에 묻고 '제니'호를 모는 두 전우의 창창한 앞날을 축복하듯이 흐른다. 탁 트인 바다 위로 울리는 갈매기 소리와 느릿느릿하되 활기찬 기운은 선명한 'Mr. President'가 섞인 가운데, 댄 중위는 전장에서보다 더 용감한 기세로 "새우를 떼거지로 잡게 될 거야!" 외친다. 하지만 그물에서 떨어지는 건 쓰레기들뿐. 제니호는 한바탕 폭풍우를 이겨내고 나서야 새우잡이에 성공해 '버바 검프'라는 기업이 된다.


Free Bird

Sweet Home Alabama

Lynyrd Skynyrd

레너드 스키너드는 도어즈,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와 함께 <포레스트 검프> 두 번 이상 음악이 쓰이는 밴드다. 처음은 포레스트 곁을 떠나 마약과 폭력에 찌들어 살던 제니가 저 아래로 몸을 던지려고 할 때 흐르는 'Free Bird'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갈대밭에서 포레스트와 함께 "여기서 멀리 떠나게 저를 새로 만들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던 제니가 몸도 마음도 망가진 어른이 되어 바깥으로 투신 자살을 시도할 때 하필 'Free Bird'라는 노래를 배치한 것이다. 강렬한 연주를 쏟아내는 노래의 에너지는 소리가 안겨주는 흥분보다는 위태로운 제니를 바라보는 불안을 증폭시킨다. 또 다른 레너드 스키너드의 노래 'Sweet Home Alabama'는, 포레스트가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으로 돌아오고, 방황하던 제니가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혼자가 된 포레스트를 찾아오면서 등장한다. 노래 제목처럼 고향 앨러바마에서 다시금 "콩과 콩깍지"처럼 붙어서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보내는 시퀀스가 'Sweet Home Albama'와 함께 펼쳐진다. 제니의 좌절과 행복를 같은 밴드의 다른 노래로써 꾸미는 세심함이 돋보이는 배치다.


Running On Empty

Jackson Browne

제니는 행복했던 한때를 뒤로 한 채 또 다시 포레스트의 곁을 떠난다. 고향 앨러바마엔 포레스트와의 행복한 기억뿐만 아니라, 아무리 악을 쓰고 돌을 던져도 무너지지 않는 아버지의 집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된 포레스트는 돌연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비록 곁엔 아무도 없지만, 버바와의 약속이 담긴 버바검프 모자를 쓰고 제니가 선물로 준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있기 때문일까, 포레스트는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동네에서 그린보우 시, 그린보우에서 앨러바마 주, 멈추지 않고 달리는 포레스트의 여정에 잭슨 브라운의 'Running On Empty'가 슬며시 끼어든다. 노래 제목처럼 미국의 드넓은 허공을 달리는 포레스트의 표정엔 그 어떤 의지도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달리는 사람의 얼굴만이 있을 뿐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포레스트는 홀로 달리고 있지만 'Running On Empty'이 발산하는 씩씩한 에너지는 포레스트가 가로지르는 미국 곳곳의 풍경들을 그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제니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이 달리는 포레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노래는 두비 브라더스(The Doobie Brothers)의 'It Keeps You Runnin''으로, 포레스트를 알아본 사람들의 그의 곁에 붙어 함께 달리면서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의' Go Your Own Way'로 음악이 절묘하게 바뀐다.


Forrest Gump Theme

Alan Silvestri

<포레스트 검프>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영화음악가 앨런 실베스트리가 만들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세 번째 영화 <로맨싱 스톤>(1984)부터 실베스트리에게 음악을 맡기기 시작해 <빽 투 더 퓨처> 시리즈,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 <죽어야 사는 여자>(1992) 등을 거쳐 <포레스트 검프>까지 실베스트리의 선율을 빌려왔다. 듣자마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곧이어 울컥해지는 아름다운 피아노 멜로디를 풀어놓는 메인테마는 하얀 깃털이 하늘을 산들산들 유영하다가 시커멓게 때가 탄 포레스트의 신발 옆으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오프닝 시퀀스에 화룡정점이 된다. <포레스트 검프>에 수많은 명곡들이 모여 있지만, 실베스트리가 만든 오리지널 스코어가 신마다 새긴 감정들은 온전히 제 빛을 발한다. 어머니가 포레스트에게 읽어주던 책 사이에 끼워놓았던 깃털이 툭 떨어져 다시 포레스트의 곁을 떠나는 엔딩 역시 실베스트리의 음악이 없었다면 그만큼 감동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메키스와 실베스트리의 협업 체제는 올해 10월 개봉 예정인 저메키스의 신작 <마녀들>까지 이어지고 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