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켄드릭이 주인공 파피의 목소리와 훌륭한 노래 솜씨가 보여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트롤>의 두 번째 시리즈 <트롤: 월드 투어>가 개봉 3주 차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트롤: 월드 투어> 이전, 켄드릭의 노래를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모았다.


"The Ladies Who Lunch"

캠프

(Camp, 2003)

안나 켄드릭은 연극 무대에서 아역 시절을 보내고 13살 되던 199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상류사회>에서 처음 주연을 맡아 토니 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켄드릭의 스크린 데뷔작 <캠프> 역시 뮤지컬이다. 뉴욕 공연예술 여름 캠프에 참여한 10대들을 그린 영화다. 숙맥인 프릿지(안나 켄드릭)는 에이스로 손꼽히는 질(알라나 알렌)의 변덕을 견디며 방을 함께 쓰다가 쫓겨나고, 분노에 휩싸여 <컴퍼니>의 무대를 선보일 질의 음료수에 세제를 넣는다. 질과 옷을 똑같이 차려입은 프릿지는 때맞춰 백스테이지에 나타나 바로 무대로 투입돼 'The Ladies who Lunch'를 능숙히 소화해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인 'The Ladies who Lunch'는 미국의 뮤지컬을 재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이 쓴 노래다. 켄드릭은 <캠프>가 개봉한 2003년 손드하임의 뮤지컬 <리틀 나이트 뮤직>에 조연으로 참여한 바 있다.


"Time After Time"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3)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력으로도 크게 인정받게 되는 '非' 뮤지컬 영화 <인 디 에어>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미국 최고의 해고 전문가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온라인 해고 시스템을 만든 당돌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를 데리고 동반 출장을 떠난다. 매사에 로보트처럼 똑 부러지던 나탈리는 소프트웨어 컨벤션 파티에서 기분 좋게 취해 소리 지르며 춤을 춘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고 누구는 꾸벅꾸벅 졸고 누구누구는 뒤엉켜 키스를 나누는 가운데, 나탈리는 노래방 기계로 신디 로퍼의 노래 'Time After Time'을 부른다. 아무도 그 노래를 듣는 것 같지도 않고, 나탈리 역시 뻘쭘한 듯 두리번거리지만, 신발까지 벗은 채로 열심히도 노래한다. 평소 켄드릭의 노래 실력을 생각해보면, 나탈리의 'Time After Time'은 일부러 어설프게 부른 게 분명하다.


"Cups"

피치 퍼펙트

(Pitch Perfect, 2012)

<피치 퍼펙트> 시리즈의 주인공 베카(안나 켄드릭)가 대학 아카펠라 그룹 오디션에서 선보이는 퍼포먼스. 빈손으로 오디션장에 들어온 베카는 심사위원석에 있는 펜 컵을 빌려 두드리면서 전통민요 밴드 카터 패밀리가 1931년에 발표한 노래 'When I'm Gone'을 부른다. 사실 이 퍼포먼스는 2009년 6월 'You're Gonna Miss Me'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유튜브 영상을 빌려온 것이다. 켄드릭은 <피치 퍼펙트>에 캐스팅되기도 전에 그 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컵 퍼포먼스를 연마했었고, 그 경험이 고스란히 영화에 활용됐다. <피치 퍼펙트>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켄드릭은 이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Cups'라는 싱글을 발표해 빌보드 싱글 차트 6위, 음원 다운로드 250만 건을 기록했다.


"Still Hurting"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The Last Five Years, 2014)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는 2001년 초연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 뮤지컬의 음악감독인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이 직접 영화음악까지 맡았다. 배우를 꿈꾸는 캐시(안나 켄드릭)와 작가를 꿈꾸는 제이미(제레미 조던)가 사랑했던 5년의 시간을 순서 없이 섞인 타임라인으로 따라가는 영화는,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져 제이미를 그리워하는 캐시의 노래 'Still Hurting'으로 시작한다. 제이미에게서 온 편지를 앞에 놓은 채 눈물을 꾹꾹 참아가면서 구절마다 제이미, 제이미, 하며 홀로 남아 떠난 여인을 그리워 하는 이의 마음을 열창한다. 노래를 마친 캐시가 제이미와의 결혼반지를 뺀 후, 캐시와 제이미가 불붙듯 사랑을 나누던 5년 전의 날이 이어진다.


"On the Steps of the Palace"

숲속으로

(Into the Woods, 2014)

안나 켄드릭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인연은 뮤지컬 영화 <숲속으로>(2014)까지 이어졌다. 1986년 초연된 손드하임의 뮤지컬 <숲속으로>를 디즈니가 리메이크를 제작해, 손드하임이 영화음악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원작의 작가 제임스 라파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시카고>(2002)의 롭 마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메릴 스트립, 조니 뎁, 에밀리 블런트, 크리스 파인 등이 그림 형제의 캐릭터들을 연기한 <숲속으로>에서 켄드릭은 신데렐라 역을 맡았다. 'On the Steps of the Palace'는 <숲속으로> 속 켄드릭의 유일한 솔로곡이다. 동화처럼 왕자와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성 바깥으로 도망쳐 나오는 신데렐라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능수능란한 보컬로써 소화해냈다. 결국 신데렐라는 구두 하나를 놓고 성을 떠난다.


"True Colors"

트롤

(Trolls, 2016)

디즈니가 실사 영화를 통해 안나 켄드릭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면, 드림웍스는 애니메이션 <트롤>의 주인공 파피 역에 켄드릭을 초대했다. 언제나 웃음을 잃을 것 같지 않았던 파피(안나 켄드릭)가 납치된 친구들을 구해 트롤 왕국으로 돌아가려는 절망에 빠져 색깔을 잃자, 어려서 가족을 잃고 매사에 걱정뿐인 브랜치(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파피를 위해 'True Colors'를 노래한다. 브랜치의 노래는 파피에게 색을 돌려주고, 파피 역시 노래를 보태 브랜치를 비롯한 친구들은 다시 알록달록 색깔을 되찾는다. 재미있는 건 'True Colors'의 원곡을 부른 이가, 켄드릭이 <인 디 에어>에서 노래한 'Time After Time'의 주인공 신디 로퍼라는 점이다. 로퍼의 원곡은 2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지켰고, 명징한 제목과 가사에 힘입어 LGBT 커뮤니티의 송가로 자리매김했다.


"Freedom! '90"

피치 퍼펙트 3

(Pitch Perfect 3, 2017)

<피치 퍼펙트> 시리즈는 1, 2편이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면서 3편까지 제작됐다. '바든 벨라스'의 초대 리더 오브리(안나 캠프)까지 돌아와 시리즈의 가치를 더한 <피치 퍼펙트 3>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래는 조지 마이클의 'Freedom! 90'이다. 홀로 무대에 오른 베카는 청아한 목소리로 자유를 외치는 조지 마이클의 메시지를 조곤조곤 노래하다가 객석에 있는 바든 벨라스 멤버들을 무대로 불러내면서 화음은 점차 풍부해지고, 거기에 <더 보이스> 시즌 12의 최종심에 오른 뮤지션들의 연주까지 더해져 대곡의 위엄을 자랑한다. <피치 퍼펙트 3>가 개봉되기 한 해 전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에게 바치는 노래로서 손색이 없다.


"Just Sing"

트롤: 월드 투어

(Trolls World Tour, 2020)

<트롤: 월드 투어>는 파피와 친구들이 록 트롤 마을의 여왕 바브(레이첼 블룸)가 록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없애기 위해 다른 트롤 마을을 파괴하는 걸 막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크레딧을 훑어보면 무엇보다 음악에 큰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트롤>이 노래 잘하는 배우를 중심으로 캐스팅을 꾸렸다면, <트롤: 월드 투어>는 실제 뮤지션들이 대거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전작의 사운드트랙의 프로듀싱을 브랜치 역의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맡은 바 있는데, 이번엔 마블의 <블랙 팬서>(2017)와 차일디쉬 갬비노의 'This is America'를 만든 루드빅 고랜슨이 팀버레이크와 콤비플레이를 이뤘다. <트롤>의 백미가 'True Colors'가 나오는 순간이라면, <트롤: 월드 투어>에선 안나 켄드릭은 물론 저스틴 팀버레이크, 켈리 클락슨, 메리 J. 블라이지, 앤더슨 팩 등 쟁쟁한 가수들의 화음이 돋보이는 'Just Sing'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