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과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한 작품 중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 이어 세계관의 외연을 우주로 확장하는 동시에 마법을 쓰는 주인공을 히어로 장르에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설정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뛰어난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리던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교통사고로 두 손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더 이상 의사로서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그는 망가진 손을 고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그러던 중 우연히 망가진 척추를 기적적으로 회복한 한 남자의 말을 듣고 네팔의 카마르 타지를 찾는다. 그곳에서 태고의 마법사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난 스트레인지는 그의 제자가 되어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마법의 능력을 일깨우게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내가권의 계통과 맞닿아 있다.

<아이언맨>(2008) 이래, 아니 <슈퍼맨>(1978) 이래의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에는 공통된 전제가 있다. 초인적 능력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부여하려 한다는 점. 이런 경우 대부분은 태생적으로 지구인과 다른 신적인 존재이거나, 과학의 힘을 빌려 첨단 장비로 무장한다는 설정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닥터 스트레인지>수련의 모티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마법 또한 단순히 주문을 외워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이뤄진 지도와 수련의 산물로 표현되고 있다. 서구적 영웅서사의 전통에서 초능력이란 그리스 신화나 기사도 문학의 전형을 완성한 아서왕 전설에서처럼 외부적인 특별한 도구(item)를 통해 발현되기 마련이지만, 여기서의 마법은 심신(心身) 양면의 수련을 통해 다져진 능력의 발현, 즉 내공(內功)의 개념과 상통하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내가권의 길을 가다

내공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동방불패>(1991)<의천도룡기>(1993)와 같은 무협영화 내지 소설의 장풍이나 경공술 등 온갖 무공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무술에서 바라보는 내공의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통념적으로 중국 무술에서 외가권(外家拳)이라고 하면 체력과 근력을 단련하여 물리적인 힘, 즉 외공(外功)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권법을 통틀어 지칭한다. 강권(剛拳)이라고도 하며 소림권과 홍가권, 팔극권 등이 대표적인 외가권으로 꼽힌다.

그런 한편, 신체의 물리적 단련만이 아닌 참장공과 같은 기공 수련과 명상 등의 수양을 통해 신체와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심층적인 힘을 끌어올리는 걸 추구하는 계통이 있으니 이것이 흔히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의 내가삼권으로 잘 알려진 내가권(內家拳)인 것이다. 외가권이 신체를 개선함과 함께 빠르고 강맹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함을 목표로 한다면, 내가에 속하는 무술은 그 바탕에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면이 더욱 강조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내가권의 요체를 마법이라는 은유로 함축해낸다.

자신이 서툰 원인이 다친 손 때문이라고 여기는 스트레인지에게 에인션트 원은 아예 손이 하나 없는 마스터의 시범을 보여준다. 육체가 아닌 정신의 문제이며, 마음에 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하는 이 장면은 내면의 뜻과 생각, 의념(意念)’을 강조하는 내가권의 요체를 마법이라는 은유를 통해 잘 함축해낸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물리적 신체를 놀리는 기술(외공)의 달인이 점차 내면의 수련을 통한 정신적 힘의 작용(내공)으로 넘어가는 전환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영화다. 스트레인지를 장법으로 때리면서 유체이탈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멀티버스의 우주를 체험시켜주는,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고 흐름을 따르라는 에인션트 원의 가르침은 신체 자체의 능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힘을 풀고 이완된 몸과 열린 태도로 유연하게 상황과 상대에 반응하는 태극권의 이치와도 맞닿아 있다.  

<용쟁호투> 시절의 양사(왼쪽 사진 오른쪽)와 현재의 양사(오른쪽 사진).

(젊은 시절에는 외공에 의지했던 무술가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가 쇠퇴하자 내가권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있다. <용쟁호투>(1973)의 근육질 악당 볼로로 유명한 배우 양사가 가라데 수련자였지만 지금은 양가태극권의 손꼽히는 달인이 된 바 있다.)
 
맞서지 말고 응하라

태극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추수(推手)는 서로 손을 맞대고 상대의 힘을 받아서 돌려주는 요를 배우는 수련이다. 이때 중요한 건 나의 힘만이 아닌 상대의 힘과 엉키면서 일어나는 흐름을 땅에 발을 딛고선 온 몸으로 이해하고 교감하는 것이다. 억지로 부딪치고 엉키면서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기운을 읽고(聽勁), 그에 응하며 흘려보내는 것(化勁). 런던 생텀에서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와 맞부딪친 스트레인지가 도끼를 잡으려 할 때 레비테이션 망토가 그걸 말리고 케실리우스의 행동을 봉쇄하는 구속구를 쓰게 만드는 장면의 연출은 흐름에 따라 반응하며 상대를 제압하는, 이유제강(以柔制剛)이라는 태극권의 성격을 반영해 보여준다. 자연에 거스르려는 인위적인 힘을 풀어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되지 않는 것들, 변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와 유연성. 케실리우스의 부하와 싸우는 에인션트 원의 액션에는 태극권의 추수를 응용한 묘사가 엿보이기도 한다.  

스트레인지의 성장은 <일대종사> 속 무술의 경지와 비교할 수 있다.

일찍이 반보붕권으로 천하를 호령했다(半步崩拳 打遍天下)는 고사로 유명한 형의권의 종사 곽운심은 제자들에게 정을 단련하여 기운으로 변화시키고, 기운으로 정신을 단련해 무위의 자연으로 돌린다(煉精化氣 練氣化神 練神還虛)는 가르침을 강조한 바 있다. 실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이기심으로 닫힌 마음의 소유자였던 스트레인지는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게 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크리스틴(레이첼 맥아담스)을 대하고 동료 의사를 믿고 수술을 맡기는 아량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심리적 변화와 성숙은 힘에 맞서기보다 응하는 법을 배우며 인격 또한 다듬는 내가권의 수양적인 면과도 맞닿아 있다. <일대종사>(2013)에서 궁이가 말하는 아버지는 무술하는 사람에게는 세 단계가 있다 하셨지요. 자신을 보고, 천지를 보고, 중생을 보는 것이라는 경지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성장을 통해 서구 영화 속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불교적 원환과 합류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에인션트 원과 반대되는 지향점을 가진 두 인물이 등장한다. 죽음을 거스르는 힘을 갖기 위해 무고한 생명을 서슴치 않고 짓밟는 케실리우스, 융통성 없이 자연의 법칙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고지식한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포). 전자는 인간의 이해(利害)에 맞지 앉는 자연법칙을 굴복시키고 지배하겠다는 점에서 근대 이래의 서구적 합리성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변의 질서가 있다고 강변하는 전체주의자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고착되고 고정될 수 있음을 믿는다는 점에서 케실리우스와 모르도는 논리적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

화이트 워싱(Whitewashing: 백인이 아닌 배역에 백색 배우를 캐스팅하는 행태) 논란이 있던 틸다 스윈튼의 에인션트 원은 캐릭터 디자인과 성격 묘사, 배우 특유의 중성적 이미지와 어우러져 석가모니나 달라이 라마의 다른 버전처럼 보인다. 에인션트 원과 케실리우스가 팔괘장의 창시자 동해천 노사와 스승인 그를 죽이려 했던 제자 사회회의 관계와 유사하다면, 닥터 스트레인지와 모르도는 선불교의 정통을 두고 갈렸던 육조단경6대조 혜능과 신수를 연상시킨다. 몸을 보리수에, 마음을 거울에 빗대어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 신수에 맞서, 혜능은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라 반박한다. 애초에 본질이라 할 것은 없었으니 어느 상태에 머무름이 없으며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것.

<닥터 스트레인지>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프).

<인셉션>(2010)을 방불케 하는, 쉼 없이 움직이며 변화를 거듭하는 도시 공간, 미러 디멘션에서 왜곡되어 반사되는 거울 이미지와 깨어진 벽의 시각적 은유로 보여지듯 만물에 고정된 형태는 없다. 모든 것은 항상 시간과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변하기 마련이며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석가모니의 오랜 가르침. <닥터 스트레인지>의 선악구도는 에인션트 원과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거리낌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흐름에 순응하는 자들을 선으로, 고정된 상에 집착하는 이들을 악으로 설정해 대비시키면서,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불교적 사상의 원환과도 합류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선악구도는 불교적 사상과 합류한다.

영생에 집착하는 케실리우스와 달리, 에인션트 원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적임자가 있었기에 마침내 영생을 버리고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스트레인지는 망가진 손을 회복하지 않고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며, 금기를 어겨서라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마법사의 삶, 대승(大乘)의 길을 선택한다.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집착을 끊어냄으로써 도리어 자유를 얻고, 개인의 구원보다는 중생의 구제에 우선한다는 선불교의 가르침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껍데기를 쓰고 서구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펼쳐지는 진풍경.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비할 수 없겠지만,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와호장룡>(2000)<일대종사>가 아날로그와 무협 장르에서 해낸 것을 디지털 영화에 슈퍼 히어로 영화로 해냈다. 소재를 깊이 있게 이해한 각본과 연출이 자칫 오리엔탈리즘으로 전락할 수 있었던 영화를 구원해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타게이트 시퀸스.
<슈퍼맨>
<서유기: 월광보합>

(멀티버스의 묘사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스타게이트 시퀀스, 시간을 거슬러서 홍콩 시가지가 복구되는 장면은 <슈퍼맨>(1978)의 엔딩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이다. 도르마무와의 무한루프 대결은 <서유기: 월광보합>(1995)의 주성치를 연상하게 한다.)

조재휘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