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를 전제로 하는 히어로 무비의 매력 중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역시 멀티버스의 하나라는 전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 (히어로가 간절히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지구 역시 다중 우주의 하나이며 어딘가의 다른 우주에서는 타노스가 핑거스냅을 날리고 스파이더맨이 뉴욕을 지키며 와칸다에서는 비브라늄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MCU에서 묘사한 멀티버스의 풍경

코믹스도 히어로 무비도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어쩐지 이 현실적인 비현실의 세계는 꽤나 재미있는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더불어 이 가상의 세계 역시 많은 이들의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기에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이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각종 사건에 휘말려 온 마블 히어로들의 족적은 지구에 현존하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서울과 부산을 포함해 유럽, 그리고 마블 히어로들의 성지인 뉴욕까지 지금까지 히어로들이 스쳐갔던 공간을 정리해 본다.


1) 서울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한국 배우 수현의 전격 캐스팅과 더불어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한 바 있다. 한강에 만들어진 인공섬인 세빛섬은 2014년 3월에 국내 최첨단 유전과학 연구실이 위치한 곳으로 등장하는데, 새 몸이 필요했던 울트론이 헬렌 조 박사를 이용해 비브라늄 육체를 만든 공간.

상암 MBC의 어쩐지 익숙한 그 조형물... 과 더불어 63빌딩이 있는 여의도와 한강의 정경도 등장하며 심심찮게 한국어 대사도 들을 수 있다. 세빛섬 외에도 문래동과 의왕 계원대 사거리, 청담대교와 마포대교 등에서 전투신이 촬영되었다. 특히 강남대로를 약 8시간 동안 전면 통제하고 촬영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당시 큰 관심을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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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 @ <블랙 팬서>

최초의 한국 로케이션 촬영 장소 서울보다도 한층 더 화제가 되었던 부산 촬영은 광안대교 및 광안리 해수욕장과 자갈치시장, 동서대 후문 등 부산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물론 영화적 연출을 위해 실제 공간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나, 야간의 광안대교(일명 다이아몬드 브릿지)에서 벌어지는 블랙 팬서 속 전투신은 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였다.

단 한국인 한정으로는 좀 웃지 못할 장면도 있었는데... 자갈치 시장 아주머니를 연기한 배우 알렉시스 리의 한국어 대사가 엄청난 수준을 자랑했기 때문. 한국어 대사이므로 자막을 넣지 않았으나 정작 한국인들은 못 알아듣는 기현상이 도래하고야 말았으니. 물론 더빙은 훌륭했다.

양곱창이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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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욕 @ <어벤져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어벤져스 본부

뉴욕은 마블 히어로들의 고향이자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캡틴 아메리카도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며 스파이더맨도 퀸즈 출신. 이외에도 탐정으로 일하는 디펜더스의 일원 제시카 존스의 사무실도 뉴욕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더불어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소서러들이 지키는 생텀 중 하나도 바로 이곳에 있다.

뉴욕의 생텀

MCU에 등장한 공간들은 대부분 뉴욕의 명소로 손꼽히는 곳인데, 아마도 이 장소들만 전부 돌아보는 것으로도 여행 일정을 빡빡하게 채울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언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신 스파이더맨이 되어 뉴욕을 날아다닐 수 있는 오픈월드 게임 <마블스 스파이더맨>에는 지금까지 MCU에 등장한 각종 명소와 더불어 스파이더맨의 발자취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다. 대리만족으로는 제격.

<마블스 스파이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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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워싱턴 DC @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워싱턴에 위치한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은 MCU에서 여러 번 등장한 장소 중 하나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스티브 로저스가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며 팔콘에게 'On your left!'를 외치던 그곳이다. 일자로 넓게 펼쳐져 있던 연못은 일명 '반사의 연못'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다른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장소.

연필탑이라고도 불리는 워싱턴 기념탑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퀴즈대회 참가를 위해 워싱턴으로 온 피터와 친구들이 견학차 방문했다가 사고 날 뻔한 바로 그곳이다. 영화에서 나온 대로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 전망대에서는 백악관과 링컨 기념관,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스파이더맨: 홈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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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샌프란시스코 @ <앤트맨과 와스프>

샌프란시스코의 명소 중 하나인 피어 39(Pier 39)는 샌프란시스코 연안에 위치한 쇼핑몰이다. 같은 관광명소 중 하나인 피셔맨스워프(Fisherman's Wharf)와 함께 <앤트맨과 와스프>의 명장면에 등장한 바 있는데, 해안가의 유람선에 탄 사람들이 이곳의 명물 중 하나인 바다사자를 내려다보는 장면과 더불어 초대형 사이즈로 변한 앤트맨이 바다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장면이 유명하다.

또 차량 사이즈를 조절하며 벌이는 추격전에 등장한 지그재그로 뻗은 내리막길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배경으로도 등장한 롬바드 스트리트. 이곳도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명소 중 하나다. 이외에도 핌 테크놀러지와 행크 핌 박사의 집이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하고 있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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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캘리포니아 @ <아이언맨> 시리즈

토니 스타크의 맨션

아이언맨의 집, 회사, 그리고 그 유명한 랜디스 도넛까지 모두 캘리포니아에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해안가에 맞닿아 있는 주거지 겸 휴양지인 롱비치에는 토니 스타크의 맨션이 있으며 해안가 도로를 따라 달리면 어바인 근교에는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 물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대신, 아이언맨이 망나니가 되어가던 바로 그 시절 아이언맨이 누워서 도넛 먹던 바로 그 왕도넛(...) 간판, 랜디스 도넛은 있다. 2편의 실제 촬영지이기도 한 랜디스 도넛은 본작 이외에도 다수의 미디어에 등장한 바 있는데, 아쉽게도 영화와는 달리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라 안에 앉아서 식사할 공간은 없다고 한다. 궤는 좀 다르지만 같은 랜디스 도넛 그리고 대형 도넛 간판이 제주 애월에 생겼다니 대리만족도 가능할 듯...?

핫토이도 나온 명장면

그리고 조금 재밌는 이야기로, <아이언맨> 1편에서 제리코 미사일을 시연하던 그곳이 작중 아프가니스탄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에 위치한 앨라배마 힐스에서 촬영되었다. 즉 캘리포니아였다는 뜻(그의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앨라배마 힐스는 수없이 많은 영화에 정말 자주 등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글래디에이터>와 <스타 트렉>, <트랜스포머>를 포함해 <아이언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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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탈리아 아오스타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발단이었던 소코비아 협정, 그 모든 사건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울트론이 소코비아를 침공했던 사태에서 비롯됐다. 소코비아는 설정상으로는 동유럽에 위치한 국가로서 막시모프 남매와 제모의 고향인데, 실제 소코비아라는 국가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 촬영은 이탈리아의 아오스타라는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첫 장면인, 오랜만에 어벤져스가 한자리에 모여 하이드라 기지를 급습하는 신은 아오스타 계곡에 있는 바르드 요새(Fort Bard)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10세기에 지어졌으니 천 년이 넘은 건물이기도 한데, 최초에는 군사요새로서 건설되었으나 현재는 예술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스칼렛 위치가 어벤져스 멤버들을 하나씩 정신 공격하는 바로 그 장면이 이 요새 내부에서 이루어졌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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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대분열 공항 전투(...)가 벌어진 곳은 작중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독일이며, '윈터 솔져' 버키가 숨어 살며 자두 사던 그 광장은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였다. 헐크를 상대하기 위한 아이언맨 수트였던 헐크버스터가 등장했던 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였으며, 비전과 스칼렛 위치가 사랑의 밀회를 즐기다가 습격 받은 그곳은 영국의 에든버러.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찾아간 카마르 타지는 네팔 카트만두에 있다.

더불어 <블랙 위도우>로 공개될, 캐릭터에게 중요한 지역이 아닐 수 없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곧 라인업에 추가될 예정이다. 서울과 부산 곳곳부터 미국과 유럽, 호주와 아프리카, 인도까지 각지에서 어벤져스 히어로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

거기에 샹치를 위시한 동양인 캐릭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한, 국내 곳곳의 명소들이 MCU에 다시금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한국인 캐릭터였던 헬렌 조가 이제 와 다시 뭔가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공식 코믹스에도 등장해 활약한 바 있는 루나 스노우나 '구미호' 한아미도 있으니까.

코믹스에는 이미 데뷔한 청계천

전 세계적 팬데믹 사태로 인해 직접 가보기는 어렵지만, 영화 속 장면과 실제 장소들을 비교해 보며 구글맵으로 돈 한 푼 안 드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가끔이라면 괜찮을지 모른다.


PNN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