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테넷>의 새로운 소식이 업데이트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 작품에 관한 내용을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테넷>도 마찬가지로 스포일러 없이 소문만 무성한 상태. 특히 <테넷>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놀란의 사무실에 감금되다시피 한 상태로 대본을 읽었다고 한다. 놀란의 이런 철두철미함 때문에 결정적인 플롯과 줄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롭게 공개된 내용을 종합해보자.
테넷은 인셉션과 관련이 있습니다.
존 데이비드 워싱턴, 토탈필름(Total film)과의 인터뷰 중에서
워싱턴이 지난 5월 30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영화의 내용이 인셉션과 이어진다는 뜻인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테넷>은 시간 여행이 아닌 시간 역치(time inversion) 컨셉의 영화라는 것이 핵심. 최근 공개된 2차 예고편을 보면 설정에 대한 힌트가 몇 가지 등장한다.
테넷(Tenet)의 정체는?
“테넷은 당신을 올바른 길로도, 잘못된 길로도 안내할거요. 신중하게 사용해요”. 빅터(마틴 도노반)는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에게 테넷을 설명하며 이렇게 경고한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볼 때 테넷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물건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테넷의 유래로 미루어 짐작할 때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가 있다. 바로 ‘사토르 마방진’. 가운데에 선명하게 새겨진 TENET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고대 유적에서 테넷이 유래한 만큼, 팬들은 테넷이 최신 기술의 집약체가 아닌 유물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측하는 중.
※ 사토르 마방진은 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데, 가장 오래된 마방진은 기원후 79년쯤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로로 읽으나 세로로 읽으나 똑같이 읽히는 것이 특징. 읽는 방법에 따라서는 단어가 되기도 하고, 문장이 되기도 한다. 고대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새겼다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산소마스크는 왜?
2차 예고편에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산소마스크다. 주인공 워싱턴이 산소마스크를 낀 채 어딘가를 응시하며 예고편은 끝난다. 이를 두고 여러 갈래로 해석이 나뉘고 있는 중. 그중 가장 유력한 가설은 테넷을 사용하여 시간 역행을 하면 산소 또한 역행하게 되어 호흡이 불가능해진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더 자세한 내용은 영화가 공개되어야 알 수 있겠다. 그래도 놀란 감독의 전작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설픈 설정에 대한 우려는 접어두어도 될 듯하다. 논란은 있을지언정,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내용일 테니.
미친 연출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약 그림을 그렸다면 하이퍼리얼리즘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놀란 감독의 리얼리즘 연출은 어나더 레벨이다.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그야말로 ‘미친 연출’의 종합선물세트였을 정도.
비행기를 공중에서 실제로 떨어뜨린다거나
병원 세트장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다거나…
언뜻 보면 미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감독. 이외에도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에서도 어지간한 장면은 모두 CG가 아닌 실제 연출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사고를 쳤으니, 보잉 747과 격납고가 충돌하는 장면을 실제로 연출한 것.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CG는 1도 섞지 않았다. ‘토탈필름’에 따르면 “스태프들이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돼 있을 때 놀란만 태연한 표정으로 현장을 전두지휘했다”는 후문. 그렇다고 놀란 감독은 리얼리티를 위해 쓸데없이 제작비를 낭비할 만큼 무책임한 인물이 아니다.
처음에는 미니어처와 시각 효과 등을 활용해서 찍으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촬영지 헌팅을 위해 빅터빌에 갔는데 우연히 오래된 비행기를 찾았습니다. 계산을 해봤더니 실제로 비행기를 사서 찍는 게 더 효율적이겠더라고요.
크리스토퍼 놀란, 토탈 필름(Total Film)과의 인터뷰 중에서
이처럼 놀란은 매 작품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지원받기는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돈을 쓰는 감독이다. 다만 그의 연출 철학이 CG를 최대한 지양하는 쪽이어서 무모한 듯 보이는 것뿐. 그는 이 인터뷰에서 “배우가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를 크로마키 스크린에 세우기보다는 실제 세트장에서 현실감 있는 연기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공동주연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은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라며 놀란의 연출 방식이 배역의 몰입에 큰 도움이 됐다고 찬사를 표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놀란의 영화에는 감독판이 없다는 것도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놀란이 영화의 모든 편집 권한을 가진 제작자인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정확히 대본만을 속전속결로 촬영하기 때문에 감독판이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기 때문. <테넷>의 촬영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번 영화의 촬영감독은 <인터스텔라>, <덩케르크>의 촬영을 맡기도 한 호이터 판호이테마. 놀란 감독은 그의 신속한 촬영 스타일을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면 억지로라도 재미있고 창의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토탈필름(Total film)과의 인터뷰 중에서
속전속결 스타일의 두 감독이 만나서일까. 보잉 747 폭파 장면이 끝난 뒤 이어지는 리버스 숏은 리허설도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90명이 넘는 공항 근로자들이 비행기 폭발에 놀라는 장면. 놀란의 지시에 따라 엑스트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촬영은 매끄럽고 신속하게 끝났다. 촬영 현장의 빠른 리듬감은 결국 스크린의 관객에까지 전달되는 법. 놀란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긴박한 전개와 연출의 뿌리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개봉일(예정)
2020.7.17
코로나19 사태로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개봉이 일제히 연기되는 와중에 <테넷>만은 기존의 개봉 일정을 고수하고 있다. 제작사인 워너 브러더스가 놀란 감독의 흥행력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물론 워너 브러더스 측에서도 미국 내 80% 이상의 영화관이 재가동되는 상황을 개봉의 전제로 두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가 계속 맹위를 떨친다면 <테넷> 또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죽어가는 영화업계에서는 <테넷>이야말로 한줄기 희망. 과연 이 희망의 빛이 얼어붙은 관객들의 마음을 녹여낼 수 있을까.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