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이는 어떻게 보면 답답할 정도로 감정이라던가, 의사 표현을 안 하는 무덤덤한 캐릭터 같다가도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엔 확고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차가운 데 뜨거운 캐릭터랄까.
<야구소녀>는 수인이가 얼마나 스스로를 믿고, 갖고 있는 동력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영화다. 수인이의 경우엔 외부에서 주는 에너지를 받아서 ‘할 수 있어! 난 열정과 끈기로 밀고 나갈 거야!’ 다짐하고 발산하기보다 ‘내가 진짜 되나? 안 되나? 난 남들이 안 된다고 해도 가고 싶은데’처럼 스스로 고민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었고. 그래서 수인이는 스스로 고뇌하는, 혼자 있는 신이 많다. 수인이가 혼자 여자이다 보니 화장실 한 칸을 자신의 라커룸으로 쓰는 그런 신이 있는데, 그렇게 홀로 있는 수인이를 보여주는 신에서 숨겨진 내면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때문에 그냥 지나가는 신으로 보일 수 있는 신들에 오히려 힘을 되게 줘서 찍었던 거 같다. 그런 부분들이 켜켜이 쌓여서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수인이가 이상을 보고 달려가는 캐릭터라면, 어머니는 현실을 직시하게 멈춰 세우려는 캐릭터였다. 수인이와 어머니 중에 실제로는 어느 편에 가까운가.
수인이처럼 해보고 보는 편이다.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왜 안 돼?’ 하고 독기가 발현된다(웃음). 수인이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독려만 해주고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네가 어떻게? 네가 선두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수인이에게는 자극제가 돼서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마찬가지고.
배우로서 이주영은 수인이가 던지는 너클볼 같은 매력이 있다. <꿈의 제인> 지수, <이태원클라쓰> 마현이, <야구소녀> 수인이까지, ‘이런 캐릭터를?’ 할 정도로 매 작품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을 연기한다. 소화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인데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웬만한 직구만큼이나 묵직하게 정통으로 와닿는다.
다른 곳에서 표현을 빌려 써도 되나(웃음). 너클볼이라는 구종이 진짜 매력이 있다. 공이 회전 되지 않게 던져지는데 불규칙하다 보니 그걸 받는 사람이 정말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는 구종이다. 나는 작품이나 캐릭터를 선택하는데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에서 수인이가 “남들이 내 한계를 정해놓을 수 없지 않냐, 내 미래를 나도 모르는데 남들이 어떻게 아냐”라고 하는 것처럼 해보지도 않았는데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한계가 정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나. 마현이 캐릭터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도 그렇고,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내게 흥미로운 캐릭터냐는 거다. 또, 작품 안에서 올곧게 자기 할 말을 하는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인지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다 해보려고 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