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올해 칸 영화제 개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른바 '공식 선정작'을 발표해 영화제의 정체성과 취향을 드러냈다. 두 한국영화 <반도>와 <헤븐: 행복의 나라로>를 비롯한 2020년 칸 영화제 공식 선정작 8개를 소개한다.


반도

1156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 이후 4년이 지난 2020년 여름,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속편 격의 영화 <반도>가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사이의 텀처럼, <반도> 역시 <부산행>의 시간으로부터 4년이 지난 시점 좀비 창궐로 쑥대밭이 된 한국이 배경이다. 예고편만 봐도 두 작품의 차이는 뚜렷해 보인다. <부산행> 속 캐릭터가 <반도>에 등장하지 않는 건 물론, 피를 나눈 가족 같은 관계를 가진 인물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부산행>의 결정적인 단점이자 흥행 요소이기도 했던 가족 신파에 대한 우려를 놓아도 될까? 한편, 부산으로 가는 KTX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닌 어딘지 모를 드넓은 폐허를 누비며 총격전을 비롯 다채로운 액션을 펼칠 전망이다.


헤븐: 행복의 나라로

임상수는 칸 영화제가 관심을 드러내온 한국 감독들 중 하나다. 2010년 <하녀>, 2012년 <돈의 맛>을 경쟁부문에 초청한 바 있다. <나의 절친 악당들>(2015)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헤븐: 행복의 나라로>(가제)가 칸 영화제 공식 선정작이 됐다. 영화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두 남자 203(최민식)과 남식(박해일)이 우연히 만나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을 그린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과 그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2021)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만난 셈이다. 임상수가 사랑하는 배우 윤여정을 비롯 조한철, 윤제문, 김여진, 이엘, 이재인, 노수산나 등이 조연으로 참여했다.


프렌치 디스패치

The French Dispatch

2012년 개막작으로 선정된 <문라이즈 킹덤> 이후 오랜만에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가 다시 칸 영화제와 연을 맺게 됐다. 평소 주간지 <뉴요커>에 대한 애정을 밝혔던 웨스 앤더슨은 68혁명 당시 프랑스의 가상 도시, 미국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프렌치 디스패치>를 만들었다. <다즐링 주식회사>(2007) 이후 앤더슨과 시나리오를 같이 써온 로만 코폴라와 제이슨 슈워츠맨, 앤더슨 영화들에 다양한 역할로 참여한 미국 언론계의 명 일러스트레이터 휴고 기네스 등이 시나리오 작가진에 이름을 올렸다. 베네치오 델 토로, 애드리언 브로디, 틸다 스윈튼, 레아 세이두, 프랜시스 맥도먼드, 티모시 샬라메, 제프리 라이트, 마티유 아말릭,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엘리자베스 모스, 에드워드 노튼, 윌렘 대포, 시얼샤 로넌, 크리스토프 왈츠... 이번 작품 역시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칸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후 7월 24일 북미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10월 16일로 미뤄졌다.


러버스 락

Lovers Rock

맹그로브

Mangrove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스티브 맥퀸 감독은 첫 영화 연출작 <헝거>로 2008년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 올해는 <러버스 락>, <맹그로브> 두 개 작품이 공식 선정작으로 발표됐는데, 사실 이 둘은 BBC와 아마존이 공동 제작한 5부작의 TV 시리즈 <스몰 액스>의 일부다. 저메이카의 국민적인 뮤지션 밥 말리의 노래 'Small Axe'에서 이름을 따온 <스몰 엑스> 연작은 1969년부터 1982년 사이 런던의 서인도제도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실화들을 바탕으로 삼았다.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운영한 맹그로브 레스토랑을 표적 삼았던 경찰에 항의한 단체 '맹그로브 9'의 1970년 시위을 구현한 <맹그로브>와 1980년대 초 블루스 파티에 모인 청춘들의 사랑을 그린 <러버스 락>을 두고, 스티브 맥퀸은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해 세상 어느 곳에서 살해당한 흑인들에게 바친다고 밝혔다.


암모나이트

Ammonite

영국 요크셔 출신의 프란시스 리 감독은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농장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로맨스를 담아낸 장편 데뷔작 <신의 나라>(2017)를 내놓아 그해 최고의 LGBT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 <암모나이트> 역시 동성애가 중심에 있지만, 전작과의 차이점은 뚜렷하다. <암모나이트>의 주인공은 메리와 샬롯 두 여자다. 영국의 남쪽 끝 마을 라임 레지스에서 독학한 고생물학자 메리는 여행객에게 화석을 팔아 살아가던 중, 마을을 찾은 여행객의 심약한 아내 샬롯을 돌보게 된다. 18세기 유럽, 바다를 면한 마을에서 펼쳐지는 레즈비언 로맨스라는 점에서 <불타는 여인의 초상>(2019)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케이트 윈슬렛과 시얼샤 로넌이 각각 메리와 샬롯을 연기했다. 영국 출신의 70년대생과 미국 출신의 90년대생, 이를 대표하는 걸출한 연기력의 여성 배우의 퍼포먼스를 만난다는 점만으로 <암모나이트>를 향한 기대가 상당하다.


폴링

Falling

<폴링>은 '믿고 보는 배우' 비고 모텐슨의 감독 데뷔작이다. 판타지 대작, 하드보일드 액션, 유럽의 예술영화 등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모텐슨이 첫 연출작으로 택한 <폴링>은 소소한 가족드라마다. 동성애자인 존은 호모포비아인 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이자 가족 농장 팔고 LA로 가서 자기 남편과 함께 살자고 설득한다. 모텐슨은 본래 연출과 각본만 맡으려고 했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메이저 배우를 캐스팅하기 어렵게 되자 직접 주인공 존까지 연기하게 됐다. 존의 아버지 역은 <터미네이터>(1984), <에일리언>(1986) 등에 출연하고 중년기엔 줄곧 '비디오 직행' 영화에만 나왔던 배우 랜스 헨릭슨이 맡았다. <폭력의 역사>(2005), <이스턴 프라미스>(2007), <데인저러스 메소드>(2011) 등 모텐슨을 페르소나처럼 기용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도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아침이 온다

朝が来る

데뷔작 <수자쿠>로 1997년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가와세 나오미는 칸 영화제가 꾸준히 편애를 드러내온 감독들 중 하나다. 지난 17여년간 총 5번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고, <너를 보내는 숲>(2007)으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신작 <아침이 온다>는 초창기 가와세의 주된 테마였던 '가족'에 중심에 놓인 작품이다. 오랜 난임 치료 끝에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를 입양한 구리하라 부부는 어느 날 자신을 아이의 생모라 주장하는 이로부터 아이를 돌려달라는 전화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와세는 연출작 대부분의 이야기를 직접 썼지만, 이번엔 드라마로도 제작된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 <아침이 온다>를 각색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소울

Soul

존 래시터, 앤드류 스탠튼과 함께 픽사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감독 피트 닥터가 <인사이드 아웃>(2015)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신작 <소울> 역시 칸 영화제 공식 선정작 리스트에 포함됐다. 중학교 음악 교사로 근무하면서 재즈 뮤지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조(제이미 폭스)는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을 때 갑작스럽게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사고를 겪게 되고, 자기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수로서도 훌륭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배우 제이미 폭스가 주인공 조를, 그의 여정을 돕는 영혼 22를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티나 페이가 연기했다. 픽사 애니메이션 최초로 흑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설정됐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본래 6월 19일 개봉이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오는 10월 20일로 미뤄졌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