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는 동시대 감독들 가운데 영화음악을 가장 예리하게 사용할 줄 아는 감독이다.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밴드 에어와 함께 한 데뷔작 <처녀자살소동>, 지독한 완벽주의로 정평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케빈 쉴즈에게 최초로 영화음악을 맡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만들어낸 코폴라가 처음 도전한 시대극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떤 음악으로 채워져 있을까?


Natural's Not In It

Gang of Four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프닝은 아주 단출하다. 18세기 프랑스 왕궁에서 벌어진 사치를 구현한 영화라는 점을 떠올리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새까만 화면 위로 핫핑크색 글씨들이 무심히 떠다닌다. 다만 이 오프닝 크레딧이 밋밋하게 남지 않는 건 음악 때문이다. 1970년대 말 우후죽순 쏟아지던 펑크 밴드 가운데 후대에 큰 영향력을 남긴 밴드로 회자되는 갱 오브 포의 'Natural's Not in It'이 관객의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이 곡의 쓰임새는 비단 흥을 돋구는 데에 멈추지 않는다. 칠흑같은 화면을 뚫어버릴 기세로 날카로운 기타 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Natural's Not in It'는 시대극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의 고증에 맞춘 클래식만 나열하지 않으리라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선언일 것이다. 케이크들 사이에서 나른하게 늘어진 채 하녀의 시중을 받는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를 바라보는 정보값이라곤 없는 신은 이 영화가 왕실의 여유와 권태를 그릴 거라고 일러주는 것처럼 보인다.


Jynweythek Ylow

Aphex Twin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양국 간의 동맹을 위해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제이슨 슈워츠먼)과 정략 결혼 한다. 오랜 여정 끝에 마주한 황태자를 비롯한 프랑스 왕가 사람들이 영 석연찮은 태도로 자신을 맞긴 하지만, 고작 14살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운 자태에 금세 마음이 누그러진다. 이 공간에 영롱한 기운을 더하는 음악은 에이펙스 트윈의 'Jynweythek Ylow'다. 고요와 광기를 오가는 독보적인 사운드를 발표하면서 1990년대 일렉트로니카 신을 살찌운 선구자였던 에이펙스 트윈이 21세기에 처음 발표한 앨범 <Drukqs>의 문을 여는 트랙 'Jynweythek Ylow'는 전자음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질감이 물씬한 소품이다. 영화 후반부, 연인이 떠난 뒤 궁전 근처를 가만히 돌아다니는 시퀀스에선 같은 앨범의 트랙 'Avril 14th'를 사용했다.


Pulling Our Weight

The Radio Dept.

껄끄러운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베르사유 궁전의 생활은 꽤나 평화롭다. 정치적인 암투가 오가기는커녕 먹고 마시며 시덥잖은 소문이나 입에 올리는 일상이 대부분이다. 실제 역사는 어찌됐든, 소피아 코폴라가 그려낸 베르사유 궁전은 살짝 지루할 정도로 한가한 곳이다. 코폴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스웨덴 밴드 라디오 디파트먼트의 음악을 3곡이나 사용했는데, 셋 모두 남편인 황태자의 영 어정쩡한 태도를 맞닥뜨린 바로 다음 장면에 쓰였다. 황태자가 첫 만남에서부터 그다지 반갑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네고 난 뒤 'I Don't Like It Like This'를, 유혹을 거절 당한 다음날 황태자는 말을 타고 숲속을 달리는 사이 마리 앙투아네트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넉넉한 햇볕을 받으며 다과를 즐길 때 'Pulling Our Weight'를, 함께 침대에 누워 있어도 그 어떤 성적 긴장감도 흐르지 않는 게 이젠 당연하게 보일 때 'Keen on Boys'를 썼다.


I Want Candy

Bow Wow Wow (Remixed by Kevin Shields)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번번이 남편과의 잠자리에 실패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실의 다른 백작부인이 아이를 낳은 걸 보고 비참한 기분을 가누지 못하고 오열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은 그녀의 눈물이 무색하게도 지극히 경쾌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눈부신 색감을 자랑하는 신발(고증 따윈 필요없다는 듯 컨버스를 미장센으로 써버렸다), 부채, 옷감, 다과를 즐기는 일에 푹 빠져 있고,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바우 와우 와우의 노래 'I Want Candy'를 소피아 코폴라의 전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운드트랙에 굵직하게 참여한 케빈 쉴즈가 재해석한 트랙이 그 풍경을 수식한다. 라디오 디파트먼트의 음악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외로움'을 대변한다면, 바우 와우 와우의 음악은 '욕망'의 발현을 보여줄 때 등장하는 것 같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부담을 벗어던지고 황실에서 즐길 수 있는 쾌락에 매진하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면무도회에서 스웨덴의 악셀 폰 페르젠 백작(제이미 도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백작을 처음 만나는 순간 바우 와우 와우의 'Aphrodisiac'가 무도회에 울려퍼지는 것처럼 사용하고, 'Fools Rush In'의 케빈 쉴즈 리믹스 버전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떠나줄 모르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설렘을 강조한다.


Ceremony

New Order

왕의 유언에 따라 루이 16세는 왕이 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여왕이 된다. 하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밤이나 낮이나 유흥을 즐기기에 바쁘다. 영국 최고의 신스팝 밴드 뉴 오더의 'Ceremony'는 여느 때보다 더 화려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일 파티 시퀀스 전체의 BGM으로 사용됐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도박하는 모습은 영화 내내 익히 보아온 것인데,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 루이 16세는 생일을 맞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한시도 마주하지 않다가, 시간이 한참 늦자 사람들을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에 상처 받지 않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걸 가볍게 거절하고, 친구들과 함께 일출을 바라본다. 웃고 떠들며 밤을 지새고 아침까지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히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젠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Kings of the Wild Frontier

Adam and the Ants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백작은 연인이 된다. 루이 16세와의 섹스가 실패로 돌아가는 걸 지독하게도 여러 차례 담아낸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행복을 보여주는 걸 잊지 않는다. 이 시퀀스에도 어김 없이 영국 뉴웨이브 밴드의 음악을 배치했다. 애덤 앤 더 앤츠의 'Kings of the Wild Frontier'가 바로 그것. 부유하듯 징글대는 기타, 축축하게 들리는 저음을 흩뿌리는 베이스, 달리는 종마처럼 서두르는 드럼 리듬이 불협하는 사운드는 궁전의 침실에서도 풀 위에서도 마음껏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의 사랑에 관능을 쏟아붓는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모습이 얼마나 조용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을 떠난 페르젠 백작을 그리워 하는 신에선 스트록스(The Strokes)의 'What Ever Happend'가 흘러나온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