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전혀…예상을 못 했는데...(흔들리는 동공) 여러분들도 많이 놀라셨죠? (객석 바라보며)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재차) 죄송합니다. (중략) 촬영 내내 한 몸처럼 지낸 하균이 형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요즘 촬영하고 계신데 KBS <영혼수선공>,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여러분들에게 건강한 웃음과 감동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겠습니다.”

지난 5일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의 특별한 형제>로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을 받은 이광수의 수상소감이다. 그는 수상을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죄송합니다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발언했다. 그리고 신하균이 출연 중인 작품을 홍보하더니, 자신을 배우라 지칭하지 않고 제가 되겠습니다라고, 그러니까 라고 말하고는 소감을 닫았다. 이것은 이광수의 인성과 진심이 묻어나는 소감. 그리고 겸손의 발언이기도 할 텐데, 겸손으로만 보기엔 죄송을 넘어선 송구스러움의 뉘앙스와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쯤 되면 드는 생각. 이광수는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배우가 아닐까. 그것이 맞다면, 그 배경에는 <런닝맨>으로 쌓여 있는 예능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으리란 짐작을 하게 된다.

2008년 모 통신사 공대 아름이광고에서 아름아 MT 같이 가!”를 외치는 바가지 머리 대학생으로 대중에게 강렬한 첫인사를 건넨 이광수는 MBC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SBS 예능 버라이어티 <런닝맨>을 만나 출연진들 등짝에 붙은 이름표를 뗐다 붙였다 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지금이야 콘텐츠를 즐길 루트가 다양하지만, 당시만 해도 주말 저녁 TV 앞은 폭넓은 연령대를 한자리에 모으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렇게 매주 대중과 통성명 하며 달린 지 무려 10. 그사이 우리는 키가 커서 싱겁기만 할 줄 알았던 남자의 다양한 매력을 목격했다. 190cm가 넘는 장신의 이광수는 상상 이상으로 유순하고 허술하고 착했고, 멤버들은 그런 그를 약한 기린이라 부르며 놀리고 아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부실 체력’ ‘꽝손이란 별명을 얻은 이광수는 배신의 아이콘과 같은 별명마저 웃음으로 승화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그런 이광수에게 국내외 팬들은 호감을 느꼈다. ‘아시아 프린스는 아무나 되나. 웬만한 스타도 획득하기 어려운 게 한류스타자리인데, 게다가 프린스라니.

출처 이광수 인스타그램

요즘 부캐(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가 대중문화의 유행인데, 어떻게 보면 이광수는 이 분야 선두주자라 할만하다. 유재석으로부터 예능계에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동생이 나와서 좋다는 말을 듣고, 멤버들로부터 희극인실 회비를 내라고 종용받는 그는, 팬들로부터도 종종 본업이 예능인 아니냐오인받기도 했다. ‘연기하는 이광수예능 하는 이광수사이에서 그가 겪는 정체성 혼란은 <런닝맨>을 즐기는 웃음 포인트. 그러나,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예능 고정 출연이 배우 생명을 갉아먹는 악수(惡手)가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광수는 작품과 관련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예능 이미지가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인들에게도 관련해서 우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정작 이광수는 주변의 이러한 우려를 제법 의젓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런닝맨>에서는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작품 안에서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자는 쪽에 가깝다. 그렇게 하다 보면 대중이 더 관대하게 바라봐 줄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이미지가 예능 안에서 소모된다는 사실보다는, 그를 통해 얻은 것들에 더 감사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것이 <런닝맨>이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10년을 함께 달린 <런닝맨>은 그에게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이곳에서 그는 인기와 인지도 뿐 아니라, 사람들도 얻었다. 그래서 그는 편견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여서 깨뜨리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그걸 잘 해왔다.

고백하자면 이광수하면 기린이지, 딱히 배우 이광수의 연기에 대해 딱히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좋은 친구들>을 봤다. 이광수가 주지훈-지성과 함께 2014년 출연한 영화 <좋은 친구들>은 연기자 이광수에 대한 시선의 전환을 넘어서, 배우 이광수의 잠재력 앞에서 놀라게 되는 동시에, 선입견으로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종국엔 미안해지고야 마는 영화였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주지훈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이다. 이 영화에서 주지훈은 그러니까...“~!” <좋은 친구들>을 보지 않고, 주지훈의 연기를 논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라이브>

배우 이광수에 대한 호감이 확신으로 변한 건 노희경 작가 작품들을 통해서다. 사람 냄새 진득하게 풍기는 노희경의 세계 안에서 이광수는 웃음기를 쏙 뺀 모습으로 다층적인 감정을 꺼내 보였다. 투렛증후군 환우를 연기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의 열연도 인상적이었지만, 치매 증상을 겪는 어머니(김혜자)를 걱정하는 아들로 분한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삶의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라이브(Live)>에서는 동시대를 사는 고민 많은 청춘 그 자체였다. <라이브(Live)>에서 이광수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노희경 작가의 말을 잠시 소환해 보자. “이광수는 투지가 좋다. 어떤 것을 맡겨도 진지하게 해나갈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탐구하면 재능을 상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충분히 입증한 배우다.” <라이브(Live)>에서 이광수는 실로 그러했다.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에서의 이광수 수상 소감을 일견 감동이기도 하면서 괜히 짠한 동시에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스스로는 예능 이미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진심임은 의심하지 않지만, 그의 아주 깊은 곳에 괜찮다고 말하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의식하고 있는 이광수가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다. 확실한 건,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이광수가 보여 준 감정선이 영화를 보다 풍부하게 했다는 점이다. 배경에 조용히 머무르다가 기습적으로 치고 나와 극을 흔드는 재주가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축하와 영화를 본 이들의 호평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광수 씨, 미안해하지 마요.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