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still)은 영화의 한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다. 스틸은 정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가 모션 픽쳐(motion picture) 즉 움직이는 사진이라면 스틸은 어딘가 반대되는 개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특정 스틸은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영화 속에서 뽑아낸 단편적인 이미지가 전체 영화를 대표하기도 한다. 포스터에 쓰이는 경우에 더 그렇다. 왓챠플레이의 신작 카테고리에서 6편의 영화를 골랐다. 놓치면 후회할지도 모를 작품이다. 2장의 스틸이 당신을 영화 속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나이트 크롤러

<나이트 크롤러>

제이크 질렌할의 눈매가 매섭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루이스는 LA의 밤거리를 헤매는 ‘나이트 크롤러’(Nightcrawler)다. 각종 사건사고의 현장을 촬영해 TV 방송사에 파는 사람들을 나이트 크롤러라고 부른다. 미용실이라는 한글과 익숙한 프랜차이즈 빵집 간판이 보이는 LA의 한인타운에서 취재 중인 초보 나이크롤러인 루이스를 볼 수 있다. 금방이라도 옆에 있는 경찰이 루이스를 제지할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나이트 크롤러들은 경찰을 비롯한 사건사고의 피해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더 자극적인고 더 잔인하고 더 폭력적인 이미지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루이스는 나이트크롤러의 삶에 잠식된다. 두 번째 스틸에서 루이스의 업그레이드된 카메라를 볼 수 있다. 그는 누군가의 집에 들어갔다. 바닥에는 피도 보인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 같다. 이 긴장된 순간들 속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매서운 눈빛이 만들어졌다. <나이트 크롤러>는 시청률만이 중요한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괴물’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이크 질렌할의 강렬한 연기가 일품이다.


이별까지 7일

<이별까지 7일>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리고 각각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마주보는 두 사람은 엄마(하라다 미에코)와 둘째 아들 슌페이(이케마츠 소스케)다. 슌폐이는 웃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침울해 보인다. 사실 이 가족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엄마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제목처럼 7일의 시한부 선고까지 받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는 가족의 치부를 해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슌페이가 웃고 있는 게 그래서다. 성격이 좋은 슌페이라서 웃을 수 있다. 비록 쓴 웃음이라고 할지라도. 첫째 코스케(츠마부치 사토시)의 어깨가 무겁다. 아버지(나가츠카 쿄조)는 아들을 보증인으로 세워 빚을 내고 사업을 했다. 당장 병원비를 내지 못할 상황이다. 코스케는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모아둔 돈을 써야 한다.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다. <이별까지 7일>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가족의 재결합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병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은 곪아버린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결국은 엄마의 희생이 이 가족을 수렁에서 건져냈다. <이별까지 7일>은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카핑 베토벤

<카핑 베토벤>

<카핑 베토벤>은 1824년 비엔나가 배경이다. 사진 속 젊은 여인의 이름은 안나(다이앤 크루거)다. 그는 우수한 성적의 음대생으로 마에스트로 베토벤(애드 해리스)의 카피스트로 고용됐다. 카피스트는 원본 악보를 연주용으로 편집, 복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위의 두 사진에서 안나와 베토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있다. 이들은 지금 그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초연 현장에 있다.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악보를 쓴 안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나가 알려주는 박자에 맞춰 베토벤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 카메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여준다. 고조되는 음악에 맞춰 획획 카메라를 돌리는 패닝(Pannig) 기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음악이 최고조에 이르면 두 사람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린다. 의도적인 흔들림이다. 음악의 격렬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카핑 베토벤>은 뮤직비디오라고 불러도 좋은 작품이다. 클래식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합창 교향곡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순간만큼은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왓챠의 수많은 리뷰가 결코 거짓이 아니다.


킬 유어 달링

<킬 유어 달링>

이들은 일종의 연인 관계다. 두 번째 사진 속 키스하고 있는 남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첫 번째 사진에서 손을 맞대고 있는 앨런 긴즈버그(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루시엔 카(데인 드한)이 연인의 감정을 품고 있다. 이제 두 번째 사진이 다르게 보인다. <킬 유어 달링>은 앨런 긴즈버그와 잭 케루악(잭 휴스턴), 윌리엄 버로우즈(벤 포스터) 등이 ‘뉴 비전’이라는 새로운 문학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를 담았다. 1950년대 미국 비트 세대 작가들의 출발점을 다루는 청춘 영화이자 연애담이다. 앨런은 천재 작가이고 루시엔은 그의 뮤즈다. 여성이 아니라고 뮤즈가 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데인 드한이라면 가능하다.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존 크로키다스 감독이 데인 드한을 캐스팅하기 위해 만났다. 감독이 드한에게 다음주 일정을 묻자 데인 드한이 “I don't know. You tell me”(몰라요. 당신이 얘기해줘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를 캐스팅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킬 유어 달링>은 ‘해리’의 팬들에겐 미한하지만 데인 드한이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다.


대니쉬 걸

<대니쉬 걸>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살던 부부가 있다. 남편 에이나르(에디 레드메인)는 명성을 떨치고 있던 풍경화가이고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야심 찬 초상화가다. 첫 번째 사진에서 두 사람은 분명 부부처럼 보인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는 사이에 있는 드레스를 주목해야 한다. 게르다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게르다는 에니나르에게 대역을 부탁한다. 그림은 발 부분만 남은 상태다. 에니나르는 “드레스를 입지 않겠다”고 말하며 마지못해 승낙하지만 스타킹의 감촉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에이나르 베거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두 번째 사진에서 에이나르와 게르다는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 않게 됐다.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서 구분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에디 레드메인의 훌륭한 연기가 없었다면 <대니쉬 걸>를 추천할 엄두나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열연도 꼭 언급해야 한다.


시네마천국

<시네마 천국>

솔직히 고백해보자. 왓챠의 별점 등록 개수가 1000개가 넘어가는 사람 중에서 아직 <시네마 천국>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번이 좋은 기회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4K 리마스터링으로 화질이 개선된 버전이 왓챠플레이에 업로드됐다. <시네마 천국>은 두 번째 사진의 유명 감독인 중년 살바토레(자끄 페렝)가 로마의 어느 호텔에서 영사기사였던 알프레드(필립 느와레)의 부음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바토레는 첫 번째 사진 속에서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라고 불리던 1940년대 고향 시칠리아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시골 마을에 작은 극장 ‘시네마 천국’이 있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시네마 천국>은 다른 것을 다 제외하고 음악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두 번, 세 번 봐도 질리지 않을 음악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