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아워 바디>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8년차 장수 고시생이 시험을 접은 후 심신을 추스르기 위한 방법으로 달리기를 선택하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턴지원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31살 자영(최희서)은 행정고시를 8년째 준비하는데 마지막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시험 접수를 해놓고도 시험을 보러 가지 않습니다. 시험조차 안 봤다는 말에 화가 난 자영의 모(김정영)는 지금까지 대신 내주고 있던 자영이 살고 있는 방 월세와 관리비 등을 끊어버리고, 자영은 어쩔 수 없이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 동창 민지(노수산나)가 대리로 근무하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자영은 회사 신입사원보다 나이가 많고 심지어 아르바이트생 중에서도 최연장자라서 회사의 정직원 채용에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결국은 당장 돈이 궁하고 민지의 강한 권유에 못 이겨 인턴지원을 하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민지가 업무시간이 지난 시각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영한테 시키고, 자영은 민지의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민지의 업무를 대신 해주는데요. 둘의 관계나 민지가 집에 급한 일만 끝내고 밤에 회사에 나올테니 같이 하자는 대화로 미뤄보건대 자영은 억지로 민지의 일을 대신해주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민지가 자신의 업무를 아르바이트생한테 시키는 것은 그 회사 취업규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어요.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인 회사는 취업규칙을 작성해야 하고 취업규칙에는 근로자가 지켜야 할 복무의무, 즉 근로자가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대리한테 맡겨진 일을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하는 것은 복무의무를 위반한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민지의 업무를 대신해주던 자영은 회식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정부장(장준휘)과 마주치게 되고, 정부장과 사무실에서 술을 한잔하는데, 정부장이 자영한테 인턴면접 결과는 일단 기다려보라는 취지로 먼저 인턴을 언급합니다. 그 후 정부장과 자영이 사무실에서 성관계를 하고, 자영은 지원자 중 (추측하건대)최고령이었음에도 인턴에 합격해요. 표면적으로 자영과 정부장의 성관계는 자영이 지원한 인턴에 합격시켜달라는 대가로 보일 수 있는데, (두 사람의 진의는 별개로)만약 자영과 정부장이 인턴청탁의 대가라고 인식하고 성관계를 했다면 죄가 될까요?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면 배임수재죄로 처벌하고 있는데, 사적영역에서의 뇌물죄라고 할 수 있어요. 판례가 인정한 예를 보면, 대학교수가 특정 출판사의 교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거나, 신문사 기자가 특정 기사를 송고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경우, 방송국 PD가 특정가수의 노래만 자주 방송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돈을 받으면 배임수재죄가 되고, 청탁을 하고 돈을 준 사람은 배임증재죄가 됩니다. 영화처럼 금전이 아닌 성관계를 대가로 한 경우 재산상 이익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례가 명확하지 않아요. 그러나 공무원한테 적용되는 뇌물죄에서는 판례가 성관계를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무형의 이익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직무와 관련있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고 대가성이 인정되면 뇌물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요. 영화에서 정부장이 공무원이라면 뇌물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날 밤 민지는 일을 마저 하려고 회사에 복귀하였다가 자영과 정부장의 성관계를 목격하게 되고, 이를 인턴청탁으로 오해하여 직장 동료한테 이 사실을 말하는데요. 자영이 인턴청탁 목적으로 성관계를 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인사청탁 목적으로 성관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민지가 이 사실을 직장 동료한테 말한 행위는 명예훼손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요. 성관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인사청탁이라는 취지로 동료한테 말을 한 것은 자영의 외적 명예, 즉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일반의 평가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료 한 명한테 말했어도 공연성이 인정되며, 민지가 말한 내용이 특별히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자영은 민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수 있는데 자영은 회사에 소문이 난 이후 큰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므로 민지를 고소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그러나 여전히 정부장이 민지를 상대로 인턴청탁을 받고 성관계를 했다는 소문으로 정부장의 명예가 침해되었다면서 고소를 할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