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느 때보다 TV가 가깝게 느껴졌다. 극장에서는 스타들을 보기 힘들었지만, TV는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드는 배우와 제작진의 신작이 즐비해 골라보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물론 기대를 충족시킬 때보다 실망이 앞선 적이 더 많았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언택트 시대에 TV 만큼 좋은 친구는 없었다. 현재까지 공개된 해외 드라마 중 평단과 시청자로부터 골고루 호평받은 신작 10편을 소개한다.


더 그레이트(The Great)

메타크리틱: 75 / 로튼토마토: 88% / IMDb: 8.1

<더 그레이트>

<더 페이버릿>의 각본가 토니 맥나마라가 영국 여왕에 이어 러시아의 황후를 다룬 호화로운 시대극을 선보였다. <더 그레이트>는 황제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좌를 차지한 러시아의 황후 예카테리나 2세의 젊은 시절을 신랄한 유머를 더해 그린 작품이다. 엘르 패닝이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 가득한 소녀에서 냉혹한 현실을 깨닫고 용감하고 비밀스러운 여정에 나서는 캐서린을, 니콜라스 홀트가 엽기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안하무인 폭군 피터 역을 맡아 사악하고 노골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은 캐서린의 짜릿한 승리로 향한다는 점에서 <더 페이버릿>과 다른 재미가 있다.


미세스 아메리카(Mrs. America)

메타크리틱: 87 / 로튼토마토: 95% / IMDb: 7.8

<미세스 아메리카>

<미세스 아메리카>는 가장 반대편에 섰던 인물을 중심에 끌고 와 페미니즘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던 1970년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주축이 된 진보 진영 여성들이 평등권 수정 헌법을 비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보수주의 운동가 필리스 슐래플리가 법안을 막기 위해 앞장선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혹은 저지하기 위해 수년간 이어졌던 양측의 투쟁을 통해 미국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탐구한다. 케이트 블란쳇이 반대편의 선봉에 선 필리스 슐래플리 역을 맡아 결코 좋아할 수 없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더 플롯 어겐스트 아메리카(The Plot Against America)

메타크리틱: 81 / 로튼토마토: 86% / IMDb: 7.3

<더 플롯 어겐스트 아메리카>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당선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 플롯 어겐스트 아메리카>는 <더 와이어>의 데이비드 사이먼과 에드 번즈가 필립 로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해 서슬 퍼런 풍경을 담아낸 대체 역사 드라마다. 최초로 대서양 횡단(단독 비행)에 성공한 국민 영웅 찰스 린드버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쟁 참여를 반대하는 고립주의를 옹호했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파시즘과 반유대주의가 고조되는 미국을 노동자 계급의 유대인 가족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파시즘을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이 느끼는 불안과 맞닿아 있다.


데브스(Devs)

메타크리틱: 70 / 로튼토마토: 81% / IMDb: 7.8

<데브스>

철학적인 SF영화 <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TV로 향했다. 직접 연출과 각본을 맡은 <데브스>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릴리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남자친구가 새롭게 발령받은 비밀 부서 데브스로 출근한 후 실종되자 회사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미즈노 소노야가 기업 스파이 음모가 얽힌 사건에 휘말리는 릴리를 맡아 극을 이끈다. 일부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할 수 있는 느릿한 호흡에도 살인 미스터리로 시작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화두로 확장되는 이야기는 환상적이다.


업로드(Upload)

메타크리틱: 66 / 로튼토마토: 87% / IMDb: 8.1

<업로드>

<오피스>의 그렉 다니엘스가 제작과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업로드>는 SF 버전의 <굿 플레이스>를 보는 것 같다. 죽기 직전에 의식을 데이터로 업로드하면 가상의 사후세계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시대. 단, 사후세계의 수준은 소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업로드>는 흥미로운 세계관을 배경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프로그래머 네이선이 부유한 여자친구 덕분에 가상의 리조트에 업로드된 후 고객센터의 친절한 직원 노라와 가까워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달콤한 로맨스와 매혹적인 미스터리, 유머가 공존하는 재치 있는 각본, 캐릭터에 활기를 불어넣는 로비 아멜과 앤디 알로의 호흡이 매력적이다.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던 <스페이스 포스>는 잊어도 무방하다. 시즌 2가 확정됐다.


조이의 엑스트라오디너리 플레이리스트(Zoey’s Extraordinary Playlist)

메타크리틱: 66 / 로튼토마토: 75% / IMDb: 8.2

<조이의 엑스트라오디너리 플레이리스트>

사람들의 속마음이 뮤지컬 넘버처럼 머릿속에 들린다면? <조이의 엑스트라오디너리 플레이리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타인의 마음을 뮤지컬 형태로 자각하는 능력이 생긴 여성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드라마다. IT 기업의 개발자 제인은 아버지가 걸린 희귀병이 유전일까 싶어 MRI 검사를 받는 도중 지진이 발생해 엉뚱한 능력을 얻는다. 바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노래로 읽을 수 있게 된 것.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만 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되면서 제인의 일상은 점차 변화한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비틀스부터 휘트니 휴스턴, 케이티 페리 등 매회 친숙한 팝 음악을 보고 듣는 재미가 가득하다.


네버 해브 아이 에버(Never Have I Ever)

메타크리틱: 80 / 로튼토마토: 96% / IMDb: 8.0

<네버 해브 아이 에버>

<민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민디 캘링과 랭 피셔가 의기투합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하이틴 성장물을 선보였다. <네버 해브 아이 에버>는 미국과 인도, 두 문화 사이에서 씨름하면서 평범한 고교시절을 보내길 원하는 10대 데비의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다. 데비는 인도인이라는,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진 10대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파티도 가고 잘생긴 운동부와 데이트도 하고 싶지만, 보수적인 엄마는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용기를 낸 짝사랑은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네버 해브 아이 에버>는 유쾌한 웃음을 놓치지 않으면서 데비가 내면의 분노와 슬픔을 마주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낸다.


노멀 피플(Normal People)

메타크리틱: 84 / 로튼토마토: 89% / IMDb: 8.6

<노멀 피플>

샐리 루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청춘 남녀의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사랑을 그린다. 동급생들에게 미움받는 아웃사이더 메리앤과 항상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코넬은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깊은 유대감을 나누지만, 둘의 관계를 비밀로 하려는 코넬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 멀어진다. 두 사람은 수개월이 지나 정반대의 상황에서 다시 만난다. <노멀 피플>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빛이 되고 아픔이 되기도 했던 불완전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서툴고 이기적이면서도 달콤하고 친밀하며 벅찬 사랑을 생생하게 포착한 밀도 있는 연출과 아름다운 영상, 간절한 마음을 담은 배우들의 세심한 연기가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메타크리틱: 85 / 로튼토마토: 95% / IMDb: 8.0

<그리고 베를린에서>

데버라 펠드만의 회고록에 영감을 받은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뉴욕의 유대교 하시디즘 공동체를 탈출한 에스티의 여정을 따라간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유를 가져본 적 없는 에스티가 엄격한 규율과 답답한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어머니가 있는 베를린으로 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1세기라고 믿기 힘든 악습으로 가득한 하시디즘 공동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과거와 현재를 병렬하는 구조를 취해 에스티가 느꼈을 절망과 분노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시라 하스는 매 순간 마음을 사로잡는 세심한 연기로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내는 에스티의 여정을 응원하도록 이끈다.


아웃사이더(The Outsider)

메타크리틱: 69 / 로튼토마토: 82% / IMDb: 7.9

<아웃사이더>

한 사람이 도플갱어처럼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 2018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각색한 <아웃사이더>는 평범한 수사극처럼 포문을 열고 점차 초자연 스릴러로 확장하는 독특한 범죄 드라마다. 교사이자 야구단 코치인 남성이 11살 소년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검거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가 드러나면서 기묘한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범행을 부인하는 용의자는 진실을 호소하는 걸까, 교묘한 연극을 하는 걸까. 벤 멘델존이 법의학과 오랜 신념을 토대로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 역을, 신시아 에리보가 어떠한 편견 없이 진실을 찾으려는 괴짜 사설탐정 역을 맡아 불가해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한다. 전개는 느릿하지만 흡인력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특히 신시아 에리보의 존재감이 탁월하다.


에그테일 에디터 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