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실연으로 폐인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 상사와 새로 입사한 경력직 여자 직원 사이에 술이 주된 매개체가 되어 연애가 시작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요. 보통의 연애담 외에도 일상에서 소소하게 발생하는 형사적인 문제도 잘 그리고 있어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선영(공효진)은 TV광고 쪽에서 일을 하다가 광고 등의 기획을 하는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한 첫 출근날 아침에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전 애인 동화(지일주)의 차를 타고 회사 주차장에 내려요. 선영은 동화에게 네가 안타면 소리 지른다고 해서 네 차를 탔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합니다. 자동차에 협박을 해서 강제로 태우면 일반적으로 감금죄가 문제 되는데, 차에 태우기 위한 단순협박이라면 감금의 수단으로 보아 따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에요. 최근에 과거 또는 현재 애인을 차에 강제로 태운 행위에 대해 감금죄로 본 판례들이 있는데요. 영화에서는 동화가 선영한테 차에 안 타면 소리 지르겠다고 했지만 회사 주차장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선영이 동화의 말에 공포심을 느꼈다기보다는 더 이상의 귀찮음을 방지하지 위해서 차에 탄 것으로 보이므로 동화한테 협박죄나 감금죄는 성립되기 어려울 것 같네요.
하지만 동화가 아침 출근시간에 회사 주차장에서 선영의 뒤에 대고 큰 소리로 ’맞바람 피웠으면 퉁친거 아냐’라고 소리친 건 위험한 행동입니다. 맞바람 피웠다는 것이 명예훼손이 되냐 여부는 맞바람에 대한 사회일반의 평가에 따라 달라져요. 만약 동화가 선영한테 ‘이 상간녀야’라고 소리쳤다면 상간녀에 대한 사회일반의 평가에 비춰보건대 명예훼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근시간 대의 회사 주차장은 공연성도 당연히 인정됩니다{실제로 영화에서 선영의 상사인 재훈(김래원)이 출근하다가 주차장에서 동화의 이야기를 듣게 되죠}. 그날 밤 퇴근한 선영이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 잔뜩 어질러진 집 내부를 목격하고 CCTV를 통해 범인이 동화라는 것을 확인해요. 아침에는 동화가 명예훼손 행위를 했는지 여부가 애매했지만 지금 이 행동은 주거침입이 명백합니다. 사귈 때 알려준 비밀번호를 이용해서 헤어진 연인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면 당연히 그 연인의 의사에 반해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주거침입죄가 되고, 만약 집안을 어지르는 과정에서 고의로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었다면 재물손괴죄도 됩니다.
동화 때문에 선영이 맞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한 재훈은 밥을 먹으면서 회사 동료 병철(강기영)한테 이 사실을 무심하게 말해버리죠. 선영도 여자 직원들한테 재훈의 실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엄마(성병숙)와 통화를 하면서 회사에 파혼당한 남자가 있다고 재훈을 언급합니다. 선영과 재훈은 서로 소문을 낸 행위에 대해 상대방을 탓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사람의 행동은 법적으로 평가가 같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훈은 명예훼손의 위험이 있는 행동이고 선영의 행동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맞바람’에 대한 사회일반의 평가에 따라서 죄가 되는지 여부가 달라질뿐 재훈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회사 동료한테 말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입니다. 회사 동료라는 관계는 소문을 퍼 나르지 않을 관계가 아니라 단 1명에게 말했어도 전파 가능성이 아주 높은 관계죠. 그러나 엄마는 달라요. 엄마나 가족한테 회사 사람 이야기를 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죄가 될 거예요. 가족한테 말한 행위는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봐서 문제 되지 않으므로, 결국 동료한테 말한 행위와 엄마한테 말한 건 다르지 않냐는 선영의 말이 맞아요.
선영은 춘천으로 외근을 다녀온 후 사무실에 늦게 복귀했다가 마지못해 재훈, 병철과 함께 술을 마시러 술집에 가게 됩니다. 이미 취기가 상당히 있던 병철은 술집에서 큰 소리를 내고 주변으로부터 조용히 해달라는 말까지 듣는데, 급기야 밖에 있는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먼저 용변을 보던 여자의 용변소리를 들었다면서 그 여자한테 옷이 잡혀서 술집 내부에 끌려 들어오는 사태가 발생해요. 그러나 여자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화장실 구조가 원래부터 남녀공용이라면 여자가 먼저 사용 중이던 용변칸의 순서를 기다리는 남자의 행위가 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술집에 끌려 들어와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운 것은 자칫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어요. 만약 업주가 영업에 방해가 되니 나가서 싸우라고 하는데도 업장 내에서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의자가 부서지거나 사람이 다치면 재물손괴, 폭행, 과실치상(또는 상해)까지 줄줄이 문제 되는 흔한 모습입니다. 영화에서 병철은 재훈이 말려서 곧바로 실랑이는 중지되어 업장에서 끌려 나왔으므로 업무방해죄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선영이 이전 직장에서 상사를 꼬드겨 불륜을 저질렀다는 내용과 선영의 신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결국 이직한 회사에도 소문이 퍼지는데, 직원 윤주(졍혜린)가 선영을 제외한 회사 단체 카카오톡방(단톡방)에 인터넷에 퍼진 글을 올린다는 것이 실수로 선영이 있는 단톡방에 글을 올리면서 선영은 소문이 퍼진 것을 알게 돼요. 퍼온 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허위여부와 상관없이 윤주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고 실제로는 허위사실이기 때문에 가중처벌돼요. 그리고 이런 내용은 직원 경은(이채은)이 선영의 전 직장에 SNS로 캐묻고 다녀서 알려졌는데 만약 경은이 이 내용을 말하고 다녀서 소문이 났다면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되고, 회사 단톡방에 올렸다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 되어 형법보다 더 엄하게 처벌됩니다. 인터넷의 강한 전파력, 광범위한 피해범위, 피해회복의 어려움 때문에 구두로 말하는 것보다 가중처벌하는 것이죠.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일상에서 명예훼손 행위가 얼마나 다양하게 발생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회사는 선영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상호간에 뒷담화로 보이는 타인의 사생활을 주고받는 것을 보여주는데 일상의 행동이 자칫 명예훼손이 될 수 있어요.
글 |고봉주 변호사